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다.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다.    

 

“나는 대지의 속삭임과 입놀림 그리고 미동까지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하늘과 땅이 저 시원의 시간, 

마치 인간 남녀처럼 짝을 짓고 자식들을 낳던 때처럼 

교합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해안을 덮쳐 핥아 

갈증을 달래는 바닷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97-98쪽).   

   

반복되는 하루도 어제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조르바는 

일상에서 언제나 비상하는 상상력을 잉태시킨다. 

자연과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움직임에서도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읽어내는 조르바에게 

일상은 배움의 천국이다.      



책상에서 머리로 공부하기보다 

일상에서 몸으로 깨닫는 공부로 일생을 살아간 조르바에게 

니체처럼 몸이 커다란 이성이고 

머리는 작은 이성이다. 


몸의 욕망은 머리의 이성을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몸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머리로 생각하는 논리적 이성을 통제한다. 

그의 판단에는 관념이 들어갈 틈이 없다.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몸을 움직여 행동하고 실천한다. 

그리고 몸이 깨달은 바를 머리로 정리한다.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옭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322쪽).     


세상은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보다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 바꾸어 나간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것이 왜 발생했는지를 따져 물어보고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지만 

직접 문제의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문제 재발방지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끈을 자를 수도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끈을 놓쳐버리면 

머리라는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끈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429쪽).      



행동하기 전에 행동하는 위험함을 계산하고

행동으로 변화되는 영향력과 효과가 가져올 파장을 예측해보느라

머리는 바쁘고 손발은 한가해진다.

안 해도 되는 이유 10가지를 찾아서 

자기 합리화로 정당화시키며 끝을 맺는다.

세상은 그래서 여전히 어제 그대로 반복된다.     


그래서 조르바는 

“인생이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99쪽). 읊조리고 다닌다. 

조르바는 한 끼의 밥을 먹을 때도 

그 속에서 경이로운 기적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99쪽).     


조르바는 음식학 개론서에서 익힌 

관념적 지식으로 음식을 평가하지 않는다. 

실제로 자신이 먹은 음식으로 미각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평소에 즐겨 먹는 음식이 

내가 창조하는 지식의 유형과 성격을 좌우한다. 

거기에 즐겨 마시는 포도주는 

먹은 음식의 소화를 촉진하는 촉매제일 뿐만 아니라 

막히고 꼬인 생각을 풀어주는 영혼의 원료다.    

 


복잡한 생각, 걱정하는 마음, 

따져보는 머리를 잠재우기 위해

조용히 앉아 만년필을 들고 필사를 이어갔다.

조르바가 마음속으로 들어와 요동을 친다.

그리스 쪽빛 바다가 출렁이고 

햇살이 전두엽까지 강렬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만약 책을 읽지 않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