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기 계발은 자기 변신이 아니라
자아 탕진이다

내가 원하는 답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자기 계발은 자기 변신이 아니라 자아탕진이다:

내가 원하는 답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어디서나 통용되는 성공 방정식은 없다


삶은 하나의 원인으로 어떤 결과를 설명할 수 없는 복수의 인연이 만들어가는 복잡한 관계망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단순하게’ 보기를 좋아한다. 우연한 사건조차 필연적인 원인을 찾아 결론을 단정하고 싶어한다. 원인을 찾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황이 불안할수록 이런 단순한 결론 내기는 위력을 발휘한다. 


단선적 인과관계론으로 사람을 선동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누군가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 사람은 이러한 성공을 단순화하여 하나의 법칙이나 방정식으로 만들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다. 이런 책이나 영상이 넘쳐난다. 특수한 자기 경험이 보편적인 법칙으로 둔갑하여 유포된다. 그런데 성공에 이르는 마법의 공식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 누구나 따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념과 논리의 근거는 무엇일까? 



자기 계발의 역사적 변천 과정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성공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창기 1세대 자기 계발서는 자기반성과 현실을 직시하면서 `정신 차려!`라고 ‘책망’하는 책이 장식해 왔다. 1989년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95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2001년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시대다. 내가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치즈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안주하는 사람과 과감하게 지금 여기서 저기로 모험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대별해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자기반성과 현실직시를 강조하면서 성찰과 각성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면 안락사당할 수 있다는 위협적 메시지를 던진다. 한 마디로 너 이 대로 살다 죽을래?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변화를 추진하라는 강압적 주장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내용이 이 시대를 주류적 자기 계발 메시지였다.


2세대는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성공한 사람들이 `나 이렇게 해서 성공했어!`라는 ‘야망’을 부추기며 성공담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주종을 이뤘다. 순간의 만족에 빠져 있지 말고 긴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마시멜로 이야기》는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꿈꾼다면 지금 당장의 편안하고 달콤한 유혹에서 빠져나와 진정으로 꿈꾸는 미래를 위해 절치부심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가 있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시크릿》은  자신의 생각을 선택하고 강력하게 끌어당기면 당신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 자기 계발서들은 도전과 용기를 북돋우고 몰입과 열정을 통해 너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3세대 자기 계발서는 2세대 자기 계발서대로 행동해 봤는데 실제로 안 되는 좌절감을 맛본 청춘들에게 `괜찮아`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책들이 대세를 이룬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이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자기 계발서다. “너만 힘든 게 아냐”라고 위로의 메시지를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춘들에게 괜찮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자기 계발서가 주류를 형성했던 시기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지금, 이 시대 청춘에게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라고 관심과 애정으로 따듯한 위로를 전하는 자기 계발서가 주류를 형성했던 시기다.


4세대 자기 계발서는 성공과 성과, 속도와 효율보다 느림과 여유, 비움과 나눔을 화두로 삼아 힘을 빼고 남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유와 공감을 강조한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독식과 승리를 위한 지나친 경쟁보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미덕과 덕망을 강조하는 책들이 주종을 이룬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자기 계발서다. 평소 다양한 채널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한 소통법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네 스님' 혜민 스님의 관계, 사랑, 마음과 인생을 비롯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론 잘 안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상은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잘 먹고 잘 사는 독야청청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공유와 공감이 덕망임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이 시기의 자기 계발서의 핵심 주장이다.



5세대 자기 계발서는 2015년 《미움받을 용기》, 2017년 《언어의 온도》, 2018년 《모든 순간이 너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2019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2020년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등의 자기 계발서다. 이런 책들은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서구식 자기 계발서의 낭만적 유혹에 지친 독자들에게 너무 열심히 노력하느라 탕진당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나 하면서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기 계발서는 잠시 침체기를 겪다가 2021년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세상 물정은 변하지 않고 갈수록 미래는 불확실해지고 경기침체는 가속화되는 사회실상이 반복되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후 자기계발서는 일시적으로 침체기를 겪다가 최근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다시 인기를 얻는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자력갱생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한다. 파이어족, 재태크 등에 이목이 쏠리며 이를 이룬 사람들의 책들이 유튜브 영상과 함께 자기계발 도서를 주도하고 있다.



‘자기 계발’이 계속될수록 자기는 계발되지 않고 오히려 자아가 탕진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핵심 원리를 소개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성공에 있어 ‘열정’과 ‘끈기’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 Grit》은 자기 계발서가 다시 붐을 타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책들이다. 지금까지 시대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기 계발서 트렌드를 분석해 보았다. 저자의 주장은 다르지만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동일하다. 지금 이대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지금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서 성공하면 지금보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공의 뒤안길에는 무수한 인연들이 우리도 모르는 복잡한 상호작용과 영향력의 관계 속에서 얽혀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이 보장된다는 자기 계발서들은 우연성의 변수를 철저히 제거한 채 필연적인 원인이 자신이 원하고 실천했던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변수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제와 다르게 생성되는 불확실한 세계다. 논리적 설명만으로 해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측가능한 모든 과학적 법칙과 원리들을 동원해도 자연과학처럼 합리적으로 풀리는 단면도로 드러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의 덫》을 쓴 미키 맥기에 따르면 사람이 자신을 혼자서 스스로 가꾸고 실현할 수 있다는 관념은 근본적으로 오해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근본인 원래의 사회적 위치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발전을 도와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소원하게 만드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게 한다고 비판한다.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어제와 다른 세상이 시시각각 등장하면서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변화담론이 나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경쟁에서 잠시라도 뒤떨어지면 영원히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심각한 위협적 발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경쟁가도에 내몰리고 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높은 스펙을 쌓고 있지만 여전히 미래는 암담하고 불확실하며 불안감만 엄습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은 이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는 마인드로 마침내 성공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잠을 자려던 나를 흔들어 깨운다.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성공이라는 지름길에 이르는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성공방정식을 매일 풀어내고 있지만 나에게 속 시원한 해결대안을 제시하면서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여유로운 산책길로 안내하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고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리라는 무한경쟁 시대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담론만이 나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



‘자기 계발’이 가속화될수록 ‘자기’는 ‘계발’되지 않고 오히려 ‘자아’가 ‘탕진’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과연 누가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일까? 자기 계발을 통해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치명적인 한계나 문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않는다면 자기 계발은 자아실현의 선순환 고리가 아니라 자아탕진이나 자기 파괴의 늪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자기 계발은 자기 혼자만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성공을 거머쥐는 개인차원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한 개인의 성공의 뒤안길에는 그 사람이 성공할 수밖에 없도록 선순환적으로 작용했던 수많은 변수들의 합작품이다. 사회적 분위기나 가치관, 한 사회를 움직이는 제도나 시스템,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신념이 지배하는 시대적 조건이나 상황,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인간관계로 작용하는 역동적인 영향력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서 생긴 산물이 자기 계발을 통해 이루어진 성공이나 성과다. 하지만 사람들을 유혹하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이러한 모든 변수를 성공이라는 종속변수에 일방향적으로 작용하는 단선적 독립변수로 상정, 한 사람이 성공하는 데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자기 계발서가 제공하는 성공방정식은 한 마디로 탈맥락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모든 법칙이나 원리와 이론은 그것이 탄생된 사연과 배경,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이 목적의식을 만나 생긴 성취결과다. 아무리 성공적인 자기 계발 법칙이라고 해도 그것이 탄생된 문제 상황과 함께 이해하지 않는다면 허무맹랑한 주장에 불과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유혹하는 감언이설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서있는 상황은 그 어떤 상황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고유하고 구체적인 문제 상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을 보장하는 자기 계발 담론은 그 사람이 특수한 문제 상황에서 사투를 벌이며 만들어낸 한 사람의 성공 방정식일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성공 법칙은 아니다. 나의 문제 상황에 비추어 이미 성공한 자기 계발 법칙을 재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간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그동안 자기 계발서를 읽고 따라 해 본 사람들의 체험적 증거다. 오히려 따라 하면 할수록 자아는 상실되거나 파괴되고 불안감은 가중되면서 미레에 대한 헛된 자화상만 허상으로 그려질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자기 계발 활동을 계속할수록 결핍욕구는 더 강렬하게 자극되어 이전보다 더 강력한 대안을 찾아 또 다른 자기 계발서 찾아 삼만리를 여행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성공 스토리는 시공간을 초월에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 아니다


아무리 빅데이터가 말하는 평균의 통찰이 중요하다고 해도 빅데이터는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주로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는 《아침형 인간》이 한 때 자기 계발 시장을 석권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성공요인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 일과 더불어 다른 다양한 조건들이 성공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아침형 인간은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빅데이터 기반 지나친 일반화를 시켜 성공 방정식을 만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정확히 심야 올빼미로 약 10년간 새벽 5시에 잠을 자고 9시에 일어나는 공부 패턴을 유지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에 입사해서 다시 거꾸로 5시에 일어나 일찍 출근하고 늦어도 12시 전에는 잠을 자는 아침형 직장인으로 일하다 다시 학교로 와서 예전의 패턴을 고수하다 얼마 전부터는 아침형도 아니고 심야형도 아닌 중간형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근무방식이나 업무 형태, 개인의 생활습관과 삶의 리듬, 주어진 프로젝트 과제 유형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추진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시켜 보편적인 성공 방정식을 강요하는 게 문제다.


누군가 제시한 성공방정식에 즉흥적으로 반응,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조건 따라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려는 성향은 한 마디로 자기중심을 잡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이 실종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모든 성공의 원인과 실패도 자신으로 귀결시켜 생각하는 자기 계발은 복잡한 사회구조적 관계망을 지나치게 개인화시키는 단순화의 오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이유가 말해주는 삶의 목적과 소명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남의 성공 이야기를 나의 성공철학이나 법칙으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기 계발이 계속될수록 자기 정체성은 더욱더 혼란에 빠지고 자아는 피폐되고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기 계발’을 넘어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자아를 재창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의 자기 계발서가 제시하는 단순한 성공법칙을 무조건 따라가는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자기 변신과 창조는 내가 일상적으로 매일 경험하는 세계를 내 삶의 경전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언어로 번역하는 가운데 나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반영된 자기만의 이론을 건축할 때 비로소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비교 기준을 밖에 두고 남과 경쟁하는 게임을 그만두고 시선을 안으로 돌려 진정한 자기다움은 무엇인지, 자기다움을 갖추기 위해서는 나의 독특한 경험을 어떤 언어로 번역해서 나만의 컬러와 스타일을 반영하는 세계관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남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나로서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어떤 질문과 실험, 모색과 도전을 통해서 자기다움에 이르게 될 것인지, 그 과정에서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공부를 통해 자기만의 언어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지, 자기만의 언어로 나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녹아드는 인두 같은 문장은 어떻게 만드는지, 인두 같은 문장으로 나를 세상의 중심에 세우는 자기만의 이론은 어떻게 개발하는지를 치밀하면서도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정련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 누군가 성공했다는 남들의 위장된 주장에 현혹되지 않고 지금 당장의 물질적 쾌락보다 나다움을 발견하는 고단한 과정이 오히려 진정한 행복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기반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몰입》의 전자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사람은 어제보다 난이도가 약간 높은 과제를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몰입하면서 해결해 나갈 때 어제와 다른 행복한 성취감을 맛본다.   


진짜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성공을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남의 이야기에 현혹되어 자기 계발을 할수록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목표를 달성했지만 성취감은 상실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루 종일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이야기를 말하며 남의 이야기대로 살아가는 종속된 시간에서 벗어나 내 경험을 경전으로 만드는 자기만의 언어를 채굴하고 그것으로 세상의 격류에 흔들리지만 자기중심을 잡고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자기만의 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삶은 필연적 법칙으로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미 누군가 성공한 방식대로 풀리는 알고리듬도 아니다. 남들의 성공담은 하나의 참조자료일 뿐, 시공을 초월해서 절대적인 선으로 작용하는 보편적인 법칙도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왜 삶의 부도를 맞아 도산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자기 경험으로 일궈낸 자기 계발 법칙은 그 당시의 시대역사적 상황과 모든 사회적 관계가 서로의 자리에서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낸 사회적 합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성공법칙이 만들어진 상황적 맥락이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지금의 삶의 무대와는 결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관점(觀點)이나 세계관(世界觀) 보다 감점())이나 세계감(世界感)이 필요한 시기다


이 책은 성공은 맥락에 관계없이 일반화시킬 수 있는 한 개인의 외로운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환경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이 함께 개입되면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 생기는 사회적 합작품임을 강조한다. 남의 성공 방정식은 그 사람의 성공 스토리일 뿐, 전혀 다른 삶의 무대에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힘든 사투를 벌이며 연기하는 내 삶의 무대에는 통용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이 책은 출발한다. 성공은 단선적 인과관계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 


특히 성공은 자연과학적 설명논리를 기반으로 인과법칙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성공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삶의 세계는 의도와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예측 불허의 난반사가 곳곳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격변의 현장이다. 그것에 몸을 던져 온몸으로 시련과 역경, 위기와 난국을 극복해보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은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되지 않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모색하고 실험하며 도전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몸에 아로새겨지는 진한 감각적 얼룩과 무늬가 논리적 앎을 생성하는 기반자료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라 세계감(世界感)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이문재 시인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말이다. 몸으로 느끼는 감점(感點)이 없는 관점은 맹점(盲點)이고, 관점이 없는 감점(感點)은 결점(缺點)이다. 감점이 관점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규제한다. 몸으로 느끼는 감점이 시점(視點)의 강도와 각도를 결정하고 관점의 깊이와 넓이를 통제한다. 내 몸으로 느끼는 감점 없이 남의 관점에 오염된 기존의 자기 계발서가 제시하는 남의 세계관에 종속된 나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몸으로 내 삶을 이끌어갈 존재이유와 소명의식을 몸으로 느껴보는 일이 필요하다. 


세계관은 세계감의 산물이다. 모든 관점에는 논리적 주장이전에 감각적 느낌이 끼어들어 있다. 느낌이 없이 관념적인 주장을 펼치는 논리적 이해만으로는 내 몸을 던져 미지의 세계로 이끌지 못한다. 느낌은 내가 해보지 않고서는 생기지 않는 성공예감이다. 많이 겪어본 경험이 많을수록 성공으로 가는 문과 길이 어디 있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앎은 느낌 위에서 발효되는 부산물일 뿐이다. 남의 성공스토리는 내 몸이 겪어보지 않은 다른 사람의 논리적 주장으로 편집된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의 이야기는 챗 GPT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책상에서 편집해서 만들어낼 수 없다. 챗 GPT는 남의 글을 편집해서 순식간에 자기주장이라고 내놓지만 나는 몸이 시간을 내서 특정 공간에서 흘린 눈물, 땀으로 뒤범벅된 열정적 깨달음으로 문장을 만든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내 몸이 개입되지 않고 편집되는 문장은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는 데이터로 만들어진다. 그런 데이터는 삶의 터전에 뿌리박은 체험적 지혜를 능가하기 어렵다.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둘러싼 열정, 즉 불타는 도화선을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섬세한 유혹자들은 젊은이들에게 폭발의 전망을 보여주어 그 일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줄 안다. 이유를 가지고는 이 화약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109쪽).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말이다. 


감각적 체험은 논리적 이해에 선행한다. 내 몸을 관통한 깨달음은 앎의 소중한 원천이 된다. 몰입의 순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군가 쓴 연애 이론을 분석해서 얻은 감정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대상에서 느껴지는 직관적 감각에서 오는지 우리는 안다. 이성적 판단 이전에 몸이 먼저 감각한다. 이성은 오히려 이러한 감각을 숨기려는 데 동원될 뿐이다. 


진정한 자기계발은 이러한 우리 존재의 속성을 감안해야 한다. 남의 성공담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기보다, 내 몸에 축적된 느낌의 얼룩과 무늬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랬을 때 결국 자기 철학과 신념이 담긴 이론을 구축해나갈 수 있다. 



우리는 언제 감동을 느끼는가? 우리 사회는 점차 감동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동 없는 삶이 우리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다. 감동은 새로움에서 온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 때 우리는 권태를 느낀다. 비슷비슷한 공산품 같은 선택지 앞에서는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 감동은 고유함에서 온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차이를 가진 예술 작품에 감탄하는 이유다. 고유한 개성을 지닌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작은 커피집에서 만난 행복은 지점마다 맛의 차이가 거의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실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뻔히 결말이 보일 때, 비슷한 일이 반복되리라는 예측이 확실할 때, 사람은 감동받지 않는다. 박제화된 타인의 경험에는 심장을 뛰게 하는 예측 불허의 가능성이 없다.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몰입과 집중의 순간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감탄하지만 감동하지 않는 이유다. 감동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독특한 경험을 금시초문(今始初聞)의 언어로 벼리는 가운데 찾아온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깨달음의 교훈을 온몸으로 느낄 때 찾아오는 파토스다. 내 육신으로 건져 올린 깨달음을 고뇌를 거듭하며 벼린 언어로 번역할 때 일생이론이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감동을 선사한다. 


자기만의 일생이론은 다른 사람의 이론을 아무리 많이 읽고 생각해도 탄생되지 않는다. 나만의 고유한 색깔과 스타일이 반영된 일생이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흔히 노력이라고 번역되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는 ‘노력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omor’에서 유래된 명사다. 하지만 코나투스는 단순한 노력을 넘어선다. 코나투스는 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는 관성이자 욕망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이때 노력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마주침은 증대시키고, 슬픔을 주는 마주침은 가능한 줄이려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을 통해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증대시키려는 힘은 끈질기게 유지하고, 나의 역량을 감퇴시키려는 힘은 끊어보려는 본능적 힘을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코나투스는 네 가지 의미로 다시 정리해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소극적’인 의미로는 자기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본래적 성향 또는 수동적 관성이다. 둘째, ‘적극적’인 의미로는 존재 자체를 지속시키려는 관성을 넘어 자기 자신을 확장해서 완성하려는 능동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셋째, 이런 코나투스는 모든 존재는 ‘공통적’으로 다 갖고 있지만 그걸 발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넷째, ‘본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모든 존재는 무조건 자신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필연적이고 본성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코나투스대로 살아가지 않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당신은 타자의 욕망을 ‘추종’하면서 변덕스럽게 뒤흔들리는 삶에 ‘사로잡혀’ 있을까?

아니면 나를 휘어잡는 본질적 욕망의 물줄기를 ‘잡고’ 코나투스를 ‘추구’하고 있을까?


당신은 지금 침을 흘리며 변덕스럽게 흔들리는 추종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땀을 흘리는 변화를 통해 세상을 흔드는 추월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당신은 지금 남의 인사이트(Insight)에 중독되어 

              인스턴트(Instant)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의 인사이트(Insight)를 개발하려고

어제와 다른 마주침을 얻기 위한 아웃사이트(Outsight)를 추구하고 있을까?


당신은 지금 남의 성공 비법에서 편법을 찾고 있을까?

아니면 땀 흘리며 창조한 나의 성공 비법으로 고유한 방법을 개발하고 있을까?


당신은 지금 대체가능한 소모품인 남다른 상품개발에 한 눈 팔고 있을까?

아니면 대체불가능한    소장품인 색다른 작품개발에 몰두하고 있을까?


세상의 욕망에 ‘변덕’스럽게 흔들리며 

대체 가능한 상품을 개발하는 우울한 삶에서 벗어나

나의 본능적 욕망을 따라 ‘변화’를 추구하는 명랑한 코나투스

삶의 주도권을 지켜내는 자기만의 고유한 일생이론을 개발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만의 고유한 작품, 자기만의 일생이론은

뜨거운 다짐과 대단한 결심,

완벽한 준비와 철저한 계획,

적극적인 검토와 깊은 숙고로 개발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만의 일생이론은

과감한 실천과 지루한 반복으로 마침내 반전을 일으키며

세상을 바꾸고 나를 바꾸는 여정에서 비로소 탄생된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지만

저마다의 다른 방식으로 발휘되는 코나투스를 기반으로 

습관성 자기계발 시대를 종식시키고,

삶의 주도권을 지켜내는 일생이론을 개발여정에 당신을 초대하려고 한다.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329693


알라딘

http://aladin.kr/p/UR0mc



매거진의 이전글 ‘웃자람’은 ‘헛자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