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는 교육, 문제가 시작되는 교육
‘질문’을 바꾸면 ‘파문’이 일어난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이 낸 문제에 답을 찾는 교육을 받아왔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해도 보다 빠른 시간 안에 정답을 찾는 사람이 우수한 학생 대접을 받아왔다. 주어진 문제에 답을 찾는 능력과 이제까지 그 누구도 던지지 않는 문제를 내는 능력은 다르다. 문제를 낸다는 것은 어떤 답을 기대할 것인지를 마음속에 그리는 일과 같다. 결국 좋은 문제를 내는 능력은 이전에는 없었던 색다른 답을 요구하는 능력과 같다. 하지만 문제를 내본 적이 없는 우리는 어떤 문제가 좋은 문제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질문으로부터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현명한 답으로부터 배운다. 영화배우 이소룡의 말이다. 현명한 답을 통해 배우는 어리석은 사람과 어리석은 질문으로부터 배우는 현명한 사람의 차이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도 ”현명한 사람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명한 사람은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정답을 제시해서 생각을 멈추게 하기보다 질문을 던져 색다른 생각을 꿈틀거리게 만든다. 문제는 질문보다 머리를 써서 빠르게 정답을 찾는 능력에만 교육이 기여를 해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평생 뭘 배워야 하는지 듣기만 했잖아. 하지만 오늘은 입장이 바뀔 거야.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볼 거라고!” 영화 억셉티드(Accepted)에 나오는 대사 중의 하나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누군가 출제한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는 교육이 주류를 이루어왔다. 이제 그 누구도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져 답을 찾아 나서는 교육이 시작될 때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인공지능이 쉽게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있다. 바로 호기심을 기반으로 질문하는 능력이다. 기계도 질문할 수 있지만 알고리듬에 질문할 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동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원래 또는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도 물음표를 던질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타성이나 통념에도 시비를 걸며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 “기계는 답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질문을 위해 존재한다.” 미국의 저술가 케빈 켈리(Kevin Kelly)의 말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지나가다가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를 보고 ‘저렇게 나무를 찍어대는 딱따구리는 왜 두통에 걸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호기심을 기반으로 생기는 질문은 예측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떤 질문이 생길지는 본인 자신도 모른다. 단체 사진을 찍는데 도대체 몇 장을 찍으면 눈 안 감는 사람이 나올까? 곰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곰에게 물려 죽지 않고 가까이서 곰을 행복하게 관찰하는 방법을 없을까? 이런 호기심 어린 질문은 모두 이그노벨(IgNovel)상을 탄 사람이 던진 질문이다. 이그노벨상은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져 놓고 상상하면서 그 답을 찾아 나선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다. 이그노벨상의 핵심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지만 깨달음의 웃음 속에서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그노벨상이 추구하는 가치는 재미와 즐거움 속에서 호기심의 물음표를 품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낳는 발견과 발명의 기쁨이다. 호기심의 물음표는 어떻게 해야 많이 생기는 것일까? 호기심의 물음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면서 질문을 던진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휘파람 부는 사람》을 쓴 미국의 작가, 메리 올리버(Mary Olive)가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사실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두 가지 다른 능력일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질문이 많아지고 어떤 일을 사랑하면 그 일을 잘 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진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결국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같은 능력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질문이 많다가 사랑이 식기 시작하면 질문도 같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랑의 끝은 질문이 없어진 상태”라고 정희진 작가는 어떤 메모라는 한겨레 신문 연재 기사에서 주장했다. 내가 하는 공부도 마찬가지다. 지금 하는 공부를 사랑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공부를 조금 더 잘하는 방법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파고든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새로운 앎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사랑하지 않으면 질문도 없어지고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공부는 호기심의 물음표를 던져 감동의 느낌표를 만나는 여정이다. 감동의 느낌표도 호기심의 물음표가 낳은 자식이다. 내가 던지는 물음표의 성격과 방향이 내가 얻을 수 있는 느낌표의 방향과 성격을 결정한다. “하느님, 기도하는 도중에 담배 피워도 됩니까?” 당연히 하느님은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혹시 하느님 그러면 담배 피우는 도중에 기도해도 됩니까?” 드디어 하느님은 된다고 대답했다. 질문이 바뀌니까 내가 얻을 수 있는 답이 바뀐 것이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대사 중의 하나다. 틀린 답은 문제 삼으면서 틀린 질문을 문제 삼지 않는 교육이 진짜 문제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파고들면 생각지도 못하게 새로운 문이 열린다.
이처럼 색다른 질문은 관문(關門)을 바꾸고 추가로 던진 반문(反問)이 마침내 반전(反轉)을 일으킨다. 질문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꽉 막혔던 난관 속에서도 갑자기 혜안을 떠오르게 하고 전대미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런 점에서 “대답은 과거에 머물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p.126).”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나오는 말이다. 질문을 통해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관문을 만난다. 질문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약한 우리들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질문은 익숙한 집단의 소속감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진입하려는 용기 있는 결단이다. 기존 지식과 경험이 주는 안락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적 깨달음과 인식 지평을 열어주는 촉진제는 질문이다. 낯선 질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인간은 낯선 생각을 잉태하기 시작한다. 색다른 질문을 받으면 습관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했던 일상에서 갑자기 비상하는 상상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질주하는 사람을 멈추게 하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느 날 개미가 바쁘게 걸어가는 지네에게 물어보았다. “지네야, 너는 그렇게 많은 다리 중에서 첫발을 내딛을 때 어떤 발부터 내딛는지 말해줄 수 있어?”순간 지네는 깜짝 놀라서 잠시 멈칫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지네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다녔을 뿐인데 난생 처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나는 이 많은 발 중에서 어떤 발을 가장 먼저 내딛는지를. 인간을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난생 처음 듣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훌륭한 질문은 위대한 대답보다 더 위대하다.”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의 말이다. 훌륭한 질문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문제의식을 품고 당연한 일상에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원래 그렇고 물론 그렇다고 생각했던 타성과 통념에 호기심의 물음표를 품고 집요하게 파고들어가야 한다. “신기한 것들에 한 눈 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P.151).” 시인 이성복의 《무한화서》에 나오는 말이다. 시인은 오늘도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들에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눈을 키워준다.
“왜 문명 발전의 속도가 대륙마다 달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며 답을 제시한 책이 바로 미국의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의 《총 균 쇠》다.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지구를 정복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인류의 문명 발전 역사를 파헤치진 책이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교수의 《사피엔스》다. “왜 어떤 기업은 망하고 어떤 기업은 초일류 기업이 되어 지속적으로 성장할까?”라는 물음표를 찾아 전 세계 기업을 연구한 책이 바로 미국의 짐 콜린스(James C. Collins)라는 작가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작품은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한 가지 질문이 해결되면 그걸 발판으로 더 깊은 질문을 던져놓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간다. 질문은 평온했던 생각에 파란을 일으켜 탐구욕을 자극한다. 알고 싶다는 충동을 넘어 욕망의 불길이 생긴다. 말릴 수 없는 열정이 심장을 뛰게 한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답 없는 질문은 두렵지 않지만, 질문 없는 답은 너무나도 두렵다”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질문 없는 답을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왔다. 공부하는 삶으로 불길을 당기는 원천은 이전과 다른 질문이 내 가슴에 일으키는 파문이다. 파문이 일어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온몸으로 퍼지는 파문은 수많은 질문을 양산한다. 질문이 질문에 꼬리를 물면서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우연히 파란을 일으키는 통찰을 만나기도 한다. 질문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와 다른 세계로 이끄는 자석과 같다. 이질적인 질문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낯선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러다 만나는 뜻밖의 깨우침이 낯선 자극이나 지식과의 마주침을 통해서 생긴다. 질문은 마주침을 통해 깨우침을 얻게 만드는 마중물이다.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다.”미국의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Rita Mae Brown)의 말이다. 이 말을 질문으로 바꿔서 다시 써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다른 답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다.” 다른 답을 얻으려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질문을 던져놓고 다른 답을 기대한다. 질문을 바꾸지 않고 다른 답을 기대하는 우리들이야말로 정신착란이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9쪽).” 일본의 작가, 우치다 다쯔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정답을 찾거나 정답에 주목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그 누구도 던지지 않는 질문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도 쉽게 할 수 없는 질문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직접 출제하고 스스로 낸 문제에 대해 답을 쓰는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본인이 받고 싶은 학점을 쓴 다음 왜 이 학점을 받아야 하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 세 가지를 추가로 쓰게 하였다. 이런 연습을 통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문제가 색다르면 답도 색다르다는 점이다. 문제가 틀에 박혀 있으면 그 학생의 답을 볼 필요가 없다. 답도 틀에 박혀 있다. 문제를 스스로 던져 놓고 그 답을 찾아 나서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어제와 다른 물음을 던질 때 물음의 그물에 어제와 다른 답이 걸린다. 이런 점에서 “물음은 삶의 본질을 건지려는 그물질”이다. 김기연의 《마음을 두드리는 감성 언어, 단어의 귓속말》에 나오는 말이다. 삶의 본질은 어제와 다르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그물질에 걸린다.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의 그물을 바꾸지 않으면 그물에 걸리는 답도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