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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은 절반으로 줄이고,
탄성은 두 배로 늘린다

행복은 감탄사 개수에 정비례한다

타성은 절반으로 줄이고탄성은 두 배로 늘린다

     


타성에 젖어 끌려가면 한심한 인생을 살게 된다


타성은 웬만한 타격으로는 깨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져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좋지 못한 습성이다. 사람의 뇌는 새로운 자극이 입력되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타성에 젖어버리고 기존하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버릇이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움직임의 반경이 좁아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버리기 쉽다. 고3 때부터 피던 담배도 처음에는 어른 흉내를 내려고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버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흡연하는 타성에 젖어버렸다. 거의 20년을 타성에 젖어 피던 담배를 끊어버리기로 결단한 건 풀코스 마라톤을 뛸 때마다 유독 가쁘게 쉬는 숨과 내가 생각해도 흡연으로 찌든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 때문이다. 타성에 젖어 사는 습관은 남들도 하니까 나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다가 생긴 나쁜 습성이자 관성이다.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삶은 타락한 삶이며, 세상과 타협해서 살아가려는 안이한 태도의 역사적 산물이다.


타성은 누가 봐도 타당성이 없는 삶의 습성이다. 타성은 하던 대로 반복하거나 살아왔던 방식대로 그때로 따라갈 때 생기는 답답한 습관이다. 행복은 시작하기 전에 설레는 일이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할 때 다가오는 삶의 충만감이다. 타성에 젖어 살아가면 매 순간순간을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때운다고 생각하거나 늘 해왔던 일이니가 어제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기 어렵다.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추진하면서 주인의식을 갖기보다 누군가 정해놓은 가치판단 기준을 기계적으로 따라가거나 끌려가는 사람이다. 끌려가는 삶은 남을 위한 답답한 삶이지만 끌리는 삶은 자신을 위한 가슴 뛰는 삶이다. 끌리는 삶을 살아야 남에게 끌려가지 않고 남을 끌고 갈 수 있다. 끌려가는 인생을 살지 말고 끌리는 삶을 살자. 



검도에는 중단 겨눔이란 게 있다.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음 공격을 위한 치열한 준비동작이다. 멈춰있어도 그냥 멈춰 서 있는 게 아니다. 중단 겨눔 속에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돈다. 멈춰 있으면서도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고 공격하면서도 순간순간 멈추지 않으면 공격은 실패로 끝난다. 중단의 겨눔이 있어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어디를 공격할지 포착할 수 있다. 중단의 겨눔은 급소를 포착하는 치열한 준비의 시간이다. 끌려가는 인생을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고 불행이 시작된다. 모든 것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내일 달릴 수 없다.


중년 이후의 삶은 철저하게 끌림이 있는 삶을 살아가자. 끌림이 있고 감탄사가 연발되어야 뭔가에 마음이 홀려서 대책 없이 빠질 수 있다. 흠뻑 뭔가에 빠져야 완전히 그 분야를 알 수 있다. 빠지지 않으면 자빠진다. 스스로 깊이 빠져 몰입하고 열정을 불태워야 경지에도 오를 수 있다. 떨림이 있는 삶, 끌림이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삶이라야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다가오는 삶도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타성에 젖어 끌려가는 인생을 살수록 열심보다 한심, 감탄보다 한심한 시간이 반복되면서 불행한 삶으로 달려가는 급행열차를 타게 된다.



감탄이 나올 만큼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 


여행은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올 때의 또 다른 나’가 만나 돌아오는 동행이다. 익숙한 지금 여기를 떠나 낯선 내일의 저기로 가야 어제와 다른 환경과 마주칠 수 있다. 행복(happiness)은 생각지도 못한 해프닝(happening)이 일어날 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중년 이후에는 지금까지 내 삶의 무대였던 여기를 떠나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자주 해야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는 탄성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2014년도 크로아티아 여행하면서 몸으로 느낀 행복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을 멀리서 내다보거나 내려다보는 관망이 아니라 내 몸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관능임을 깨달았다. 추상적인 행복보다 지금 여기서 느끼는 구체적인 일상, 그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이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행복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는 지중해의 쪽빛 칼라와 파도와 함께 다가오는 바람, 그리고 하늘과 바다와 만나는 저 수평선의 끝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포옹을 내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다. 지금 내 눈썹을 휘날리게 하며 귓전을 스쳐 지나가는 가고 머리를 흔들어 깨우며 몸과 맘을 환기시키는 아드리 해의 바닷바람은 지금 내 신체가 여기 있기에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내가 하루 여행을 통해 무엇을 먹고 어디를 거닐었으며, 거기서 나의 신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감각적으로 느꼈는지, 그리고 어디서 잠을 잤으며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느꼈는지 이런 사소한 하루 일과의 연속에서 내 오감을 열어놓고 신체가 반응하는 과정을 관능적으로 느끼다 보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체적인 차이를 실감한다. 흔히 중요한 것은 남의 가치 판단기준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의 그 중요한 기준으로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 삶과 나의 이야기는 실종되고 남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종일 소비하는 삶을 소비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 중요한 것보다 정말 소중한 것은 신체가 존재하는 동안 신체와 더불어 일어나는 내 삶의 일상이다. 신체가 갈망하고 욕망하는 일상적 삶에서 신체와 더불어 부딪히는 모든 체험적 일상이 내 삶의 일상이고 내 행복의 원천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체가 건강하고 사지가 멀쩡할 때 미래의 언젠가 향유할 행복을 담보로 가정법 인생을 산다. 그렇게 고생 끝에 달콤한 미래가 온다는 고진감래를 믿고 전력투구 했지만 마지막으로 내 신체에 남는 것은 신경통과 관절염, 연골파괴와 디스크 등 온몸에 남기는 병뿐이다. 여행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경이로운 신천지의 체험을 내 신체로 온전히 겪어보는 감동의 연속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언제 이 느낌을 다시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에 행복했다는 말은 지금도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며 앞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말 역시 지금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행복은 두 발로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며 두 손으로 만져보고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미래의 언젠가에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추상도 일상에서 비롯되지만 추상화된 명사가 다시 일상으로 내랴와 보통사람들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버무려지고 그들의 삶과 뒤섞이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잉태된 추상일지라도 일상과 가까이할 수 없는,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래서 현실에서 붕 떠 있는 관념의 파편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여행은 익숙한 세계를 떠나 낯선 세계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과정이다. 여행은 또한 익숙한 세계에서 늘 봤던 익숙한 것을 이전과 다르게 보며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빈도와 강도가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를 결정하는 지표다. 두브로브니크의 절벽 카페에서 일몰을 감상하며 마신 맥주 맛, 그 맛에 젖어 저녁노을을 벗 삼아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아직도 내 몸에 강렬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여행이 특별하고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소한 것이 더 이상 사소해 보이지 않으며 익숙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고 원래 있었던 익숙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계를 향해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뛰어드는 순간 우리는 이 세계가 온갖 우연이라는 만남에서 ‘나’를 발견해 내어 새로운 ‘시작’이 태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265쪽).
 -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의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중에서 -


https://youtu.be/zEbat_e50sw?si=cdoLaPKNdgXs6Hl0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197551

예스 24 https://www.yes24.com/eWorld/EventWorld/Event?eventno=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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