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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생각을 잉태한 개념사전(辭典), 생각사전(思典)

위험한 생각을 잉태한 개념사전(辭典), 생각사전(思典)


“이 사전 하나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제까지 없었던 내용과 방식으로 사전 발간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전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출발이다. 왜냐하면 이 사전은 다른 사전과 다르게 첫 번 째 항목이 ‘신’이 아니라 알파벳 순서를 따라 atmosphere(대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사전이 위험한 이유는 지식의 항목을 권위에 따라 배열하지 않고 평등하게 알파벳 순서대로 나열하겠다는 발상이다(허연, 2018).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만 해도 지식의 주도권을 생산자나 유포자가 아닌 사용자가 쥘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전을 통해 위험한 생각을 유포한 주인공이 바로 백과전서의 편집장이자 편찬의 주요 역할을 맡았던 드니 디드로다. 그러나 오늘날 사전은 이제 골동품이 되어가고 있다. 늘 손에 들고 살던 영한사전이나 한영사전, 누구나 책상에 꽂혀 있는 국어사전은 사전(死前)에 보기 어려울 정도로 더 이상 개정판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개정판 사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 사람들이 국어사전을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고 싶은 단어의 의미를 익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사전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종이사전의 위기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그 후 우리나라 국어사전 시장은 거의 죽어버렸다. [태평로]라는 조선일보 칼럼에 ‘국어사전 개정판을 낸다는 것’이란 글을 쓰는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에 따르면 국어사전의 차이가 국가 간 지력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어사전 자체가 판매되지 않으니 출판사의 사전출간팀도 해체되었다. 이제 국어사전을 출간한 출판사는 없어진 셈이다. 한 마디로 “언어는 성장사업이지만 사전은 사양산업(27쪽)”이라서 그럴까.



더욱 심각한 사실은 국민 세금으로 만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1999년 초판 발행 이후 한 번도 개정판을 낸 적이 없다고 한다. 편찬 인원도 99년 당시 90여 명에서 2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지식에 대한 지식’을 정리한 사전은 학문의 기초를 이루는 벽돌이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믿고 이용하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분수대]라는 칼럼에서 ‘좋은 사전을 갖고 싶다’라는 칼럼을 쓴 중아일보 박정호 논설위원의 말이다. 사전 편찬이 돈이 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로 지속적인 개정판을 내지 않는다면 국가적으로 언어의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종이사전을 찾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사전 출판사들은 문을 닫았고 사전 편찬자들은 하나둘씩 맥이 끊기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2017년 사전 편찬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관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어학사전 기획자인 정철이 사전 편찬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전 편찬 세계에 숨은 뒷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콘셉트는 “말의 뒤를 따라 걷는 가장 느리고 성실한 기술자들, 사전 편찬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두고 있다.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통해 몰락하는 국내의 종이사전의 현실을 지적했던 저자는 한국어사전을 비롯 각종 백과사전과 외국어 사전을 편찬했던 사전 편찬자 5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전 편찬의 산역사였다. 저자는 "사전 편찬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이미 많이 지워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 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사전 편찬을 통해 한 나라의 말과 언어를 되살리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2016년 10월 한글날에 맞춰 ‘우리말샘’(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방식을 따라서 분야별 다양한 전문가 의견도 수렴했다고 한다. 99년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이 보유하고 있는 50만 어휘에 신어·방언·전문용어 50만 단어가 추가된다고 하니 표제어 100만의 방대한 ‘낱말 창고’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언어도 시대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생어(生語)가 되는가 하면 죽어 사장되는 사어(死語)가 되기도 한다. 언어는 진공관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한 사회에서 특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정한 약속을 해서 합의한 상징체계이자 기호다. 그런데 언어는 기호로서의 의미를 넘어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체계를 담고 있는 신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부를 것인지 ‘노동자’로 부를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 사회는 갈등을 빚는다. ‘노동자’라는 말을 쓰면 왠지 종북이나 친북을 지향하는 불순한 사고를 지닌 사람을 오해해서 ‘근로자’라고 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자’라는 말을 써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용어 하나에 대한 의미부여가 다른 이유는 특정 어휘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박일환, 2018). 이처럼 언어는 당대의 사회가 요구하는 역사적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같은 단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로 각색되어 전용되기도 한다. 사전을 지속적으로 개정해야 되는 이유는 기존 단어의 의미 변화를 반영해야 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신어(新語)들을 적절히 해석해서 모두가 합의하는 보편적인 의미로 재정의하는 노력을 부단히 전개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전은 완성된 바로 그 순간 낡기 시작”(38쪽)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은 디지털로 사전 검색 서비스가 존재해도 사전 편찬은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전 출판사 중의 하나인 이와나미(岩波) 출판사가 2018년 초에 일본어 사전 '고지엔(広辞苑)' 7판을 내는 걸 보고 한국과 다른 사전 강국임을 실감했다. 일본은 분야별 마니아층이 두터운 나라인데 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사전(辭典) 만 1만 종 넘는 '사전 왕국'이다. 다른 책과는 다르게 사전은 한 사람의 저자가 외롭게 공부해서 편집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사전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고 저마다의 분야에서 깊은 애정을 갖고 오랫동안 단어와 사투를 벌이며 의미를 정련하는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전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이 요구하는 단어, 기존의 단어에 대한 의미 변화를 재정의하는 부단한 노력의 반복만이 좋은 사전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종이사전이 점차 팔리지 않고 있다. '고지엔'도 1998년 5판은 100만 부나 팔렸지만, 2008년 6판은 50만 부로 급격히 떨어지고, 급기야  7판은 상반기까지의 판매 목표를 20만 부로 잡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놀라운 사실은 인터넷으로 단어 검색이 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값비산 종이사전을 사기 위해 아직도 약 2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1만 5000엔(보급판 9000엔)을 투자한다는 점이다. 고지엔은 일본 사람의 일상적 삶과 더불어 통용되고 있는 단어를 담고 있다. 단어는 당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반영한다. 사전(辭典)은 그래서 사전(思典)이다.


“내가 말하는 단어들은 나의 행동과 생각의 〈잔여물〉이다.” 《단어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쓴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말이다.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삶 속에 숙성된 사고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고 세계를 이전과 다르게 보거나 느낄 수 없다. 설혹 보거나 느낀다고 해도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없다면 그 경험은 몸안으로 축적될 뿐 언어화되지 못한다. 아무리 위대한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면 생각과 느낌은 어떻게 밖으로 표출될 수 있을까. 언어 없이 생각도 느낌도 없다. 모든 생각과 느낌은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생각과 느낌은 죽은 생각과 느낌이다. 언어가 없으면 나와 다른 사람은 물론 세계와 연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는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다”(윤세진, 2013, 355쪽). 언어를 풍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다리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그만큼 이전과 다르게 볼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열린다. 문제는 그 다리로서의 언어를 한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규정하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단어라고 할지라도 다른 의미로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전에 나와있는 동일한 단어라고 할지라도 시대와 상황,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국어사전은 위험하지 않지만 국어사전의 단어를 재개념화 시켜 다시 정의한 사전은 위험한 생각을 품은 사전이다. 기존 단어를 다시 정의한 사전이 위험한 이유는 그 사전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의도적으로 반영된 사전(思典)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언어에 반영되기도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언어가 현실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로 이루어진 한 공동체 내에서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에 따라서 개개인의 사고방식은 물론 한 공동체의 집단적 사고나 규범이 결정된다. 언어는 나와 다른 사람은 물론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를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삶의 양식이다. 언어는 한 공동체 내부에서 약속한 기호에 불과하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어떻게 다시 정의하는지에 따라서 그 정의된 단어의 의미대로 우리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생각의 혁명을 일으키는 DNA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전과 다른 언어를 갖는 게 중요한 이유는 언어가 달라지면 사고가 달라지고 사고가 달라지면 그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와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어를 재정의하는 생각사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모든 책도 개정판이 있듯이 사전도 주기적으로 개정 증보해서 시대에 맞는 언어를 정리해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한 개인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며 매일 하는 일은 언어가 매개하는 사고 활동이라고 볼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반추해보고 나의 체험적 느낌과 깨달음으로 재정의 해보는 노력은 생각의 혁명을 일으키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가는 자국민의 언어생활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어사전을 지속적으로 개정하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은 한 나라의 사상적 기반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개념적 기반을 제공해준다. 모든 사상적 기반은 언어를 기반으로 축조된다. 정제된 언어가 풍부할수록 사상적 기반도 튼실하게 구축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의 말과 언어생활에 참고가 되는 표준 국어사전뿐만 아니라 비슷한 말 사전, 우리말 속 뜻 사전, 우리말 어원사전을 비롯해 다양한 관점에서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으로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거나 다시 정의하는 사전은 언어생활은 물론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예를 들면 김소연의 《마음사전》에 보면 “감정이 한 칸의 방이라면, 기분은 한 채의 집이며, 느낌은 한 도시 전체라 할 수 있다(45쪽)”고 정의하는 글이 나온다. 감정과 기분과 느낌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이런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없다. 이런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하면 국어사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의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단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나는 순간, 세상은 새롭게 정의된 개념대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개념에 자신의 신념을 섞어 재정의하는 순간 세상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정의가 바뀌는 순간이 바로 위험한 생각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전이 있다. 가장 많은 국어사전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사전이 우리가 말을 배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사전은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거나 동일한 개념이라고 해도 색다른 사유를 잉태시키는 위험한 사전으로 등극하지는 못했다. 이런 사전은 그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의 일반적 뜻풀이가 기록되어 있는 참고서일 뿐이다. 나침반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항공, 항해 따위에 쓰는 지리적인 방향 지시계기. 자침(磁針)이 남북을 가리키는 특성을 이용하여 만든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침반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속성을 기술한 정의다. 이런 정의를 읽고 나침반에 대해 위험한 생각을 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침반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순간 나침반의 존재 이유나 나침반이 인간을 위해 발휘하는 역할의 본질을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나침반에 대한 틀에 박힌 생각이나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침반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버리고 자기 나름의 색다른 정의를 내렸다고 생각해보자. “나침반은 “여러 가지 핑계를 앞세워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탈하려는 나를 일깨워 줄 멘토(배철현, 2018, 235쪽)”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침반이 멘토라는 정의는 세계 최초의 정의다. 세계 최초의 정의라고 해서 무조건 색다른 생각을 잉태시킬 위험한 사전은 아니다. 틀에 박힌 일반적 정의를 이전과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 DNA를 품고 있는 정의로 바꿔서 의미를 부여하는 사전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위험한 사전이다.



생각사전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사전은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다. 위험한 생각은 평범한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원래 그렇고, 물론 그렇다는 생각과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세계에 물음표를 던져 시비를 거는 생각을 품고 있다. 위험한 생각은 늘 사용하는 단어나 개념을 이전과 다른 의미로 다시 정의하는 순간 잉태되고 창조된다. 사전(死前)에 꼭 한 번은 위험한 생각을 품은 사전(辭典)을 써보고 싶다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강렬한 욕망으로 바뀌면서 이 책을 탄생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똑같이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인데 누군가는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해서 사용한다. 단어가 품고 있는 본래의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연과 문제의식, 그리고 색다른 의도가 들어있다. 그 순간 단어는 누구나 사용하는 언어를 넘어 자신만의 신념이 담긴 개념으로 거듭난다.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기존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세상을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느끼며 바라보기 시작한다. 관점의 전환은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에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재개념화시거나 정의를 바꾸는 순간 시작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면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생각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윌리엄 랠프 윙에 따르면 “아이디어는 흔히 기존의 것의 새로운 조합”이라고 한다. 이런 정의는 아이디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긴 하지만 아이디어의 진면목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악당의 명언》을 쓴 손호성 작가에 따르면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누군가의 아이디어는 망친다(194-195쪽)”고 하면서 “아이디어란 남의 것 대부분에 내 것 약간”(188-189쪽)이라고 정의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아이디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줄 때 나온다. 모든 창조가 참조해서 이루어지듯 모든 아이디어는 남의 것 대부분에 내 것 약간을 추가하면 된다는 발상이 아이디어에 대한 관점을 비틀고 있지 않은가.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 사전’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어용 사전》이 있다. 이 책을 쓴 박남일 작가에 따르면 “전문가는 자기 분야를 농락할 줄 아는 사람(136쪽)”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전문가에 대한 정의와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전문가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축적한 경험과 식견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용 사전》은 전문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비판적으로 관찰한 다음 내린 위험한 정의다. 예를 들면 “전산 전문가는 정보를 농락하고, 법률 전문가는 권리를 농락하고, 의료 전문가는 신체를 농락하고, 회계 전문가는 세금을 농락하고, 증권 전문가는 주식을 농락하고(136쪽)”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10대 눈높이로 교육 현실을 풍자하는 낱말풀이 사전인 《학교 대사전》에 따르면 ‘가치전도현상’이란 “개념을 익히려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개념을 익히는 현상(10쪽)”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을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면 그때부터 개념이 위험한 생각을 품기 시작한다.



흔히 사람들은 공부는 기술이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악마의 백과사전》에 따르면 공부는 “부모님이 낳아준 대로 살기엔 자신에게 너무 허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반드시 도전하게 되는 처세술의 방법”(43쪽)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실 공부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안간힘이자 애쓰기다. 그런데 공부는 어느 순간부터 시험성적을 잘 받기 위한 괴로운 정신노동이나 출세를 위한 처세술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논어에 나오는 두 가지 공부, 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의 공부보다 나를 발견하며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를 해야 공부가 곧 앎이자 삶을 통합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수행 여정이 될 수 있다(유영만, 2016). 



불온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생각을 잉태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불법 사전》이 있다. 이 사전에 따르면 열정을 정열의 동의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처음엔 정열이라는 단어였는데, 뒤에 위치한 열이 뜨거운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과속을 하며 정을 추월해 앞으로 달려 가버린 상태. 그러나 교통경찰도 단속 대신 박수를 쳐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뜨겁고 아름다운 단어”(166쪽). 열정을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 사전적 정의보다 한결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처럼 일상적으로 쓰는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는 순간,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이전과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추기도 하지만, 삶을 비틀기도 한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한다. 한韓국어가 언어의 표준을 자임할 때, 표준에서 배제된 언어는 한恨국어가 된다. 한韓국이 국민의 표준을 지정할 때, 표준에 끼지 못한 사람은 한恨국에 산다”(7쪽). 한국어(韓國語) 사전에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같은 단어라고 해도 특정 단어에 담긴 사연이나 뉘앙스가 달라지면 그 순간부터 다른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으로 변화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자기만의 신념이 반영된 개념으로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두 가지 단어를 생각날 때마다 간헐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사용하는 많은 단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해서 색다른 개념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의 저자인 코리 스탬퍼는 사전 편찬자가 되기 위한 공식적인 요건은 두 가지뿐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공인 4년제 칼리지나 대학 학위와 영어 원어민 화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사전 편찬자에게 요구되는 비공식적 요건이지만 공식적 요건보다 더 중요한 첫 번째 요건은 결코 가질 수 없고 오로지 사로잡힐 수만 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다. 두 번째 사전 편찬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거의 완벽한 침묵 속에서 전적으로 혼자서 일하는 기질이다. 세 번째는 거의 기벽 요건이다. 폭풍 속에 던져진 수플레처럼 우주가 푹 꺼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같은 책을 놓고 같은 임무를 계속하는 능력이다. 우리 모두는 비공식적인 사전 편찬자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체험적 깨달음과 주관적 신념을 담아 새롭게 정의하는 노력이 남다른 언어감각을 키워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자기만의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적 깨달음의 결과를 외롭게 정의하는 고독한 과정이다.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 속애서 새로운 개념이 탄생되는 과정이 바로 위험한 생각이 잉태되는 과정이다. 



“일을 하다 보면 단어의 잡초 밭에 발이 감겨서 책상 위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뼈가 으스러지도록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한 항목을 며칠 째 들여다보고 있지만 어디서 실마리를 잡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고, 어느 순간 제정신을 유지해주는 필라멘트가 쉬익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고 만다. 갑자기 마음 한가운데서 당신이 이 항목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명백해진다”(29쪽).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단어 하나를 붙잡고 그 의미의 뒤안길을 헤매면서 정의 내리려는 사전 편찬자의 노력이 우리들의 개념 사용력을 높여주었다. 이 정도의 노력은 못 기울이더라도 가끔은 내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몇 개를 붙잡고 그것이 나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반추해가면서 나만의 생각이 담긴 정의를 다시 내리려는 끈질긴 노력이 이어질 때, 사고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생각으로 거듭나는 사고 혁명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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