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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지름길로 안내하는
‘비법’은 모두 ‘편법’이다

당신이 천박해지는 이유는 실천하지 않고 다짐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지름길로 안내하는 비법은 모두 편법이다

당신이 천박해지는 이유는 실천하지 않고 다짐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복종하는 첫 철자들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중의 한 명인 비판철학자 테어도르 아도르노의 말이다. 내 이름은 유영만(劉永晩)이다. 길(永)이 늦게(晩) 트인다는 말이 이름에 들어 있다. 그렇다고 대기만성(大器晩成)으로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에 담긴 주름(pli)이 다양한(multiple) 마주침의 경험을 통해 인간 유영만의 정체성(multiplicity)이 생긴 결과가 바로 이름값에 부여된 의미다. 빨리 도착하건 늦게 하건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갈 때 내가 살아가는 의미와 살아내는 의무, 그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당위와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사중주 연주를 시작한다. 이름값대로 살아야 자기다움의 꽃이 피고, 아름다움의 열매가 열리고, 색다름의 향기가 짙은 잔향으로 남는다. 이름값대로 살기 위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지름길을 찾기보다 늦게 도착해도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을 즐기며 사색의 오솔길을 걸어가고 싶다. 빠른 사람보다 이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과정의 고뇌가 실종되거나 탈색된 비법이나 묘약보다 내가 겪어보는 가운데 내 몸을 관통하고 남은 흔적을 축적해서 목적지에 이르고 싶다. 빠른 사람은 남의 비법을 찾아 헤매지만 이른 사람은 자기만의 비방을 찾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모색한다.



깊이가 없으면 기피대상의 언어와 이론이 나온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 책이 없다면, 바로 당신이 그 책을 써야 합니다." 흑인 여성 첫 노벨문학상(1993)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이 한 말이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번역하고 쓰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쓴 책 중에서 가장 끌리는 책은 다음에 나올 책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다. 모든 작품은 미완성이다. 완성을 향한 지루한 실천이 반복되지만 영원히 완성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완성을 향해 오늘도 진지한 실천을 반복할 뿐이다. 남의 이야기에 현혹되어 성공처방전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어설프지만 저마다의 고유한 삶을 대체불가능한 서사로 만들어 삶의 중심을 잡게 만들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세상의 좋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지만 내가 겪어본 이야기로 나만의 서사를 쓸 필요도 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환경과 상황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여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아무나 그런 삶의 족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생각을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하지 않는다. 타성에 젖은 언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생각의 틀에 박혀 살아간다.


생각의 틀에 박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로 남의 사유에 기대어 자기 생각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내 생각은 내가 살아온 삶의 깊이와 넓이만큼 생긴다. “사유가 먼저 있고, 그 도달한 사유에 맞춰 거꾸로 체험을 구성할 경우 작품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유로부터 경험이 도출되는 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몸에 옷을 맞춘 것처럼 어색하다. 몸에 옷을 맞춰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듯, 경험에 사유가 뒤쫓아가 그 경험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의 원리다”(228쪽).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이론도 다른 사람의 사유가 담긴 개념어로 나의 체험을 번역할 경우 체험하는 과정에서 겪은 나만의 문제의식을 담아낼 수 없다. 경험이 바뀌어도 언어가 바뀌지 않으면 경험은 어제와 다른 깨달음의 경전으로 구축되지 않는다. 경험이 어제와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가 생겨나고, 자기만의 언어가 풍부해질수록 자기만의 이론을 구축하는 개념이 새롭게 창조된다. 결국 자기만의 언어와 자기만의 이론도 내가 겪어본 삶의 깊이와 넓이만큼 심화되고 확장된다. 깊이 파고든 경험과 성찰이 따르지 않으면 남을 따르게 만드는 언어와 이론을 만들 수 없다. 깊이 없는 삶이 기피 대상의 언어와 이론만 만들 뿐이다. 나를 발견하는 경이로운 기적은 주로 계획된 일을 일정한 절차에 따라 수행할 때보다 예기치 못한 일에 우연히 마주칠 때 불법 침입하는 사유가 만들어낸다.



사랑하면 질문이 쏟아지고 불가능에 도전하며 삶의 혁명이 시작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계를 향해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뛰어드는 순간 우리는 이 세계가 온갖 우연이라는 만남에서 ‘나’를 발견해 내어 새로운 ‘시작’이 태어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쩜 이 세계란 이토록 경이로울까. 저는 ‘시작’을 앞에 두고 사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우연과 운명을 통해서 타자와 함께 하는 시작으로 가득한 세계를 사랑합니다”(265쪽).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의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에 나오는 말이다.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두렵지만 설레는 행동만이 평생 만나보지 못했던 우발적 마주침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나는 경이로운 출발점은 언제나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과 동반하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가 품고 있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심장을 뛰게 만든다. 내가 걸어갈 길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그 세계를 가보기도 전에 여기서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면 그 길로 향하는 발걸음은 전혀 설레지 않는다. 성공에 이르는 길이나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나 영상을 보면 심장이 뛰지 않는 이유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또 다른 낯선 상황과의 우발적 마주침이 선물로 기다리는 세계로 몸을 던져 뛰어들어야 깨우침의 선물을 가득 안고 기다리는 타자와 만날 수 있다. 더 이상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세상은 준비와 계획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준비한 계획대로 삶은 움직이지 않는다. 우선 목적지를 구상했으면 몸을 던져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게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고 내 삶을 사랑하는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하다 보니까 삶의 습관으로 고착화된 일을 반복하는 삶은 노예의 인생, 손님의 인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배로 늘려야 하는 일은 대부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관련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할 게 없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뭔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어제와 다른 생각과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 바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진짜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꿈꾸던 일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바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사랑하려면 내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앞으로 살아갈 남은 인생은 내 삶의 주인으로 재탄생하는 인생 후반전이다. 사랑이 추상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 내가 취하는 모든 동작은 내가 상대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시작되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상대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랑하는 관계는 선물을 주고받고 싶은 관계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나에게 인생 후반전의 삶을 이전과 다른 삶으로 선물을 주려고 한다. 사랑은 상대를 전제로 출발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주체인 나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순간 나에게 뭔가 뜻깊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남의 인생을 살아온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지금부터라도 나의 인생을 살아갈 나에게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선물로 주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는 이유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손가락이 아니라 이다

     

자기만의 이론은 어제와 다른 우연과 운명을 마주치는 나에게 말문이 막힐 정도로 전율하는 자기만의 언어로 내가 겪는 경이로운 경험적 얼룩과 무늬를 해석하며 깨단하는 깨우침으로 어루만져주는 애무다. 자기만의 이론은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애정과 관심의 산물이다. 자기만의 이론을 구축하겠다는 사람은 어제와 다르게 내 삶을 사랑하겠다는 사람이다. 모든 사랑은 지금과 다르게 살겠다는 결단과 결행이다. 사랑이 시작되면 어제와 다른 질문이 쏟아진다. 사랑은 질문과 동격이다. 메리 올리버가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이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했지만 사실, 사랑과 질문은 한 가지다. 사랑하면 질문이 생기는 기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질문이 많아지고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운명을 바꾸는 혁명을 감행한다. 사랑은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곳, 해보지 못했던 일의 세계로 저절로 심화되고 확장되는 마법이다. 내 삶을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방법을 찾아 한계에 도전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손가락이 아니라 손이다.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는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믿을만한 보험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급전환되면서 손발을 움직여 땀 흘리는 경험적 깨달음보다 손가락을 움직여 디지털 세계에 잠입, 흐르는 정보에 넋을 잃고 바라보며 침 흘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디기투스(digit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디지털 문화가 발전할수록 사람은 손을 움직이기기보다 손가락 끝으로 클릭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까닭도 디지털의 어원을 알게 되는 순간 자연스러운 움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으로 클릭해서 디지털 세계에 빠져들어갈수록 빠져나오기 어렵다. 각종 성공 명언과 부자 되는 법칙이 달콤한 초콜릿 봉지에 포장되어 끊임없이 구매를 자극하며 구애를 요청한다. 자기 계발은 자기 계발 서적이나 유튜브 영상을 손가락으로 클릭하면서 얻는 인사이트, 즉 통찰을 통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인사이트는 아웃사이트가 바뀌어야 생긴다고 이미 본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통찰은 고뇌 끝에 탄생하는 정신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어제와 다른 행동을 통해서 탄생하는 육체노동의 산물이다. 



의지(意志)’를 드높일수록 의지(依支)’하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다짐과 결심, 의지와 용기, 준비와 계획은 절대로 나를 포함해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변화를 일으키는 실질적인 힘은 마인드나 생각이 아니라 그걸 실천하는 고달픈 움직임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만 반복해서 읽고 수많은 명언과 조언으로 자기 암시를 반복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이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것처럼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깊은 자괴감에 빠져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 자기 계발 서적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수많은 조언이나 명언을 뇌리 속에 아로새기면서 다짐을 반복하는 사람이 가장 변화를 거부하는 게으른 사람이다. 명언이나 확언 중독증에 걸려 조언을 밥먹듯이 먹지만 먹고 소화를 시키지 않거나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은 약발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하면 다른 자기 계발서를 반복해서 읽고 다시 심리적 위안이나 자기 위로를 받으며 안심에 젖어든다. 다짐을 반복해서 하고 의지(意志)를 드높이며 준비하고 계획을 세울수록 우리는 남에게 의지(依支)하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자기 계발은 의지를 드높이는 게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는 가운데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실천은 하지 않고 실천을 좀 더 쉽게 하는 방법을 찾아 삼만리를 헤매지만 그런 성공 처방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시작하지 않고 시작하는 방법도 없다. 시작하지 않고 시작하는 수많은 책을 보고 영상을 보면서 시작하는 비법을 배우지만 정작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하는 방법에 관한 수많은 처방전은 추방시켜야 할 강력한 최음제에 불과하다. 시작하는 방법을 아는 방법은 오로지 시작해 보면 알 수 있다. 시작을 해봐야 시작하지 않고 걱정했던 일, 불안감에 떨었던 사안, 안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화두가 기우(杞憂)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시작하면 복잡한 생각으로 꼬였던 뇌리(腦裏)도 순리(順理)대로 풀리면서 특정한 상황마다 독특한 효력을 지니는 일리(一理)를 창안해 낼 수 있다. 판단착오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어제와 다른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방법이다. 어제와 다른 시행착오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잉태하고 출산하면서 체화되는 나만의 신념도 생긴다. 세상은 넓고 복잡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체적이다. 이런 모든 상황에 일괄적으로 통용되는 만병통치약 같은 성공처방전은 없다. 나의 성공처방전은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낼 수 없다. 지루한 일상이지만 비상하는 상상력으로 일궈내는 텃밭에서 한 여름 땡빛도 맞고 비바람과 천둥번개에 놀라기도 하면서 여물어가는 벼이삭처럼, 힘겨운 노동이지만 지루한 실천을 진지하게 반복하는 길만이 어제와 다른 경지로 데려다줄 것이다.



성공의 지름길로 안내하는 비법은 없다


성공에 이르는 편리한 길 또는 빠르게 성공으로 안내해 주는 지름길을 절대로 없다. 성공에 이르는 편리한 약을 반복해서 먹을수록 편안할지 모르지만 그런 방법은 나도 모르게 안락사로 가는 급행열차로 안내해 주는 마약이나 다름없다. 편리는 편견이 첨가된 진리다. 편리로 오염된 진리는 결국 나를 불리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리나 법칙은 편리라는 약을 먹고 탄생한 심리적 처방전이 아니라 나에게 불편하거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지름길로 가는 빠른 길을 택하지 않고 돌아가는 우회도로에서 절치부심과 파란만장한 경험으로 얼룩진 우여곡절의 부산물이자 신체적 위기극복의 결과다. 실천에 옮기는 더 쉬운 방법은 없다. 실천은 마인드나 생각이 하는 게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야 뭔가가 실천되고 실천이 되어야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만약 이런 실천과정을 쉽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대충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실천하고 실행에 옮겨야 실력도 생긴다. 실행력이 생기기 시작하면 실력도 덩달아서 부산물로 생긴다. 책상에 앉아서 더 손쉽게 다이어트하는 비법이나 한 달 만에 주식부자 되는 묘안을 알려주는 책이나 영상은 안 보는 게 낫다. 보고 나면 더욱 허전해지고 더 나에게 와닿는 특급 처방전을 찾아 다른 책이나 영상을 찾아서 본다. 경지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지루하고 힘든 실천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습관뿐이다. 


그렇다고 실천한다고 내가 생각한 결과가 모두 바람직한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조건과 환경을 등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히 반복한다면 누구나 자기처럼 될 수 있다는 주장하는 사람이 책은 일단 의심부터 해보 의문의 물음표를 던져봐야 한다. 대체로 노력하고 실천만 하면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책이나 영상은 모두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멋지게 포장된 유혹제에 불과하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노력한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일어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성과나 성취는 나의 노력을 포함해서 노력과 실천이 일어나는 과정에 관여되거나 개입되는 환경이나 시스템, 제도나 다양한 조건, 당시의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했던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사회적 합작품이다. 



자기 혼자 노력해서 성공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는 방법을 넘어 비법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과정에 개입된 수많은 변수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운 좋게 당시의 상황이 나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 와중에 나의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낸 덕분에 나의 성취결과가 다른 사람 보기에 만족스러울 뿐이다. 이런 점에서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나 당신만 모르는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영상을 아무리 많이 봐도 그 비법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남의 방법이나 비법은 그 사람이 처한 독특한 환경적 조건이 낳은 사회적 합작품이다. 그런 방법이나 비법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상황적 맥락(context)을 읽지 않고 각종 아름다운 말이나 통계적 숫자로 포장된 메시지(text)만 받아들여 그걸 내 삶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동일한 효과가 나올 리 만무다. 방법은 법대로 안 될 때 내 몸이 움직이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나의 비법으로 체화된다. 내 몸으로 직접 겪어보면서 특정한 상황에서 다양한 조건들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탄생되는 방법이라야 나의 신념과 철학이 스며드는 대체불가능한 비법이 탄생한다. 책상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만든 좋은 처방적 비법을 읽거나 보고 메모한다고 그것이 곧 나의 비법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자기 계발서들이 진실을 밝히지 않고 성공이나 부자로 살아가는 행복한 방법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는 성공과 실패의 주된 책임을 개인에게 묻기 위해서다. 진실을 밝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자기 계발서들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서들이 감추고 있는 가장 큰 진실은 모든 성공이나 성취결과는 한 개인의 외로운 노력으로 나타난 산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공에 관여된 수많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과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이나 네트워크가 함께 만들어낸 사회적 합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슈퍼 개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자기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실을 밝히는 순간 자기 계발서가 주장하는 비법이나 효용가치가 높다고 주장하는 각종 처방전은 쓰레기라는 아픈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에 끝까지 진실을 위장한 허위 과장 광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노력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환경은 그 사람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진공관이 아니다. 수많은 조건과 환경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다양한 변수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매 순간 특정한 사건들이 어제와 다르게 일어나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성공과 부자가 탄생되는 게 진실이다. 자기 계발서는 이런 진실을 감추고 허황된 정보를 개인차원으로 좁혀서 비법을 제시한다. 



세상은 마음대로 흐르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간다


자기 계발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내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꾸준히 노력만 하면 복잡한 환경적 변수와 무관하게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허망한 미래의 자아상을 반복해서 제시한다. 자기 계발서를 읽을수록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사람이 쏟아져 나와야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서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진실은 언제나 아프고 힘든 과정에서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탄생되는 시련과 역경의 산물이다. 자기 계발서는 진실을 감추고 노력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누구나 다 성공에 이를 수 있고 부자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특급 처방전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런 특급 처방전에 들어 있는 성공과 부자에 이르는 지름길은 숱한 과정을 생략한 책 결과적으로 생각해 낸 조잡한 프로세스(process)에 불과하다. 세상은 누군가 만들어낸 프로세스대로 일어나지 않고 프랙티스(practices)가 낳은 부산물이 이끌어간다. 프랙티스는 모든 것이 통제된 실험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자신도 예측하기 어려운 생각지도 못한 사고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삶의 터전에서 일어난다. 내 힘으로 통제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현실에서 성공과 부자가 되는 진실된 자기만의 서사가 탄생되는 것이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마음대로 흐르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간다. 여기서 내가 세상의 온갖 좋은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중심을 잡는 방법은 힘들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는 경험을 어제와 다른 언어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개발하고 나의 신념과 철학이 반영된 자기만의 성공이론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수많은 자기 계발서나 성공과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파하는 유튜브 영상에 중독되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다. 자기만의 언어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나의 문제의식으로 건져 올린 육박전의 산물이며, 자기만의 이론은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된 구체적인 삶의 얼룩과 무늬를 씨줄과 날줄로 직조해서 구축한 내 삶의 좌표이자 나침반이다. 옛말에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이라는 말이 있다. 강물은 강물이 흐르는 환경에 따라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급류에 휘말려 소용돌이를 치다가도 천길 폭포로 떨어지면 바다로 쉬지 않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며 흐른다. 하지만 물속에 비치는 달은 강물이 흐름을 바꾸거나 요란한 소리를 낼 때마다 동요하지 않고 언제나 항상 자기중심을 잡고 다른 사람의 소음에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달빛은 어둠을 벗 삼아 묵묵히 자기 갈길을 걸어간다. 가는 길이 어둡고 험난해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묵묵히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걸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경험이 자기만의 언어로 번역되어 궁극적으로 자기만의 성공이론을 구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dilige et quod vis fac).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을 위한 논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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