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등뒤에 숨어 있는 등대입니다
당신은 찰나적 다정함으로 하얀 밤을 지새우는 문풍지입니다
당신은 등 뒤가 보이지 않아도
세상의 어둠을 등지고
한숨으로 얼룩진 누군가에게 등대며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정신에게
하염없이 내뱉는 하소연입니다.
당신은 발 밑 격랑의 물결을 보고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먼산을 바라보며
외나무다리의 외로움과 고독을 벗 삼아
지나가는 바람에도 의지하지 않는
물가의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당신은 끝없이 밀려오는 폭우 소리에 묻혀
침묵의 향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켜버린 마음을 휘어잡고
기약 없이 기다리는 긴장감 사이로
몸을 던지는 하얀 폭포입니다
당신은 내리막길에서도 한숨 쉬지 않고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버티는 횡격막의 발작이며
정처 없어 떠돌다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 한 점이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뇌까리는 알 수 없는 세월의 무게입니다
당신은 모래알이 품은 그리움을 긁어내
새벽 먼동의 기적이 품은 비밀을 밝혀내며
처절함과 처연함 사이에서
처참함으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언어채굴 광부입니다.
당신은 삭풍과 파도가 괴롭히는 방파제 뒤에서
세월의 주름을 타고 날아온 바람의 엽서에
힘겨운 한숨소리 그리움에 묻혀 담아내다
낯선 생각을 품고 방황하다 만난
우여곡절의 물음표입니다.
당신은 석양이 품은 하품을 온종일 해석해서
관념으로 넘어진 벼의 아픔을 이해하려다
한파에 땅에 동사한 낙엽의 사연을 생각하며
창문을 두드려 과거의 서글픔을 날려버리려는
소리 없이 휘두르는 허공의 펀치입니다.
당신은 꺼져가는 불길 위에서
정적을 깨며 달려오는 한 밤의 공허가
뜬눈으로 지새운 어젯밤의 그리움을 만나
살갗을 파고들며 안타깝게 식어가는
잊을 수 없는 차가운 마주침입니다.
당신은 적막을 뚫고 달리는
비애 한 페이지의 아픈 추억이
반딧불에 부딪혀 주변을 서성이다
잠복근무 중이던 냇물 위의 별들을 만나
안간힘으로 버티며 눈물을 희석시키는
걷잡을 수 없는 새벽의 먹구름입니다.
당신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재치기가
한 많은 세월의 숨결을 움켜잡고
새벽 찬이슬의 서슬 퍼런 다짐과 느닷없이 만나
오도 가도 못하는 딜레마에서
한숨만 반복하며 어쩔 줄 모르는
어설픈 희망의 발걸음입니다.
당신은 달빛에 가려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의 그림자가
느긋하게 기다리는 새벽의 깨우침을 만나
애처로운 눈길에 한없이 떨기만 하다
찰나적 다정함으로 하얀 밤을 지새우는 문풍지입니다.
당신은 달력 속에 이력을 담아내려고
버티기 힘겨운 자기 반경을 그리며
시간의 족적을 따라가는 그리움 악보에
춤추는 곡선의 질문으로
스치는 바람에도 머리카락 휘날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풍향계입니다.
당신은 외딴집 양철 지붕 위로 쏟아지는 소낙비가
숨죽이며 기다리던 매미의 울음소리에 잦아들다
어슬렁거리다 삐딱하게 다가오는 게으름을 안아주는
어디론가 흩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새벽안개입니다.
당신은 나비의 급습으로 꽃가루를 빼앗기는 순간
느닷없는 공격으로 쩔쩔매는 난처함이
거처를 찾아 헤맬 때 한심한 상투성을 거부하고
낯선 마주침을 즐기는 비바람입니다.
당신은 꺼져가는 불꽃 사이로 내쉬는
불안한 마지막 숨이 한 생애를 거두며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순간
여전히 피어오르려는 불씨의 몸부림으로
세상과 결별을 선언하는 고독한 방랑객입니다.
당신은 새벽의 절망이 어둠을 밀어내고
적막한 고독을 붙잡으려 아등바등하는 순간
갈대에 걸린 아스라한 이슬방울을 훔쳐보며
철 지난 눈길로 세상의 고달픔을 알아보려는
순진무구한 동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당신은 기지개를 켜려던 질경이의 시치미에
마음을 휘젓는 시금석 같은 시 한 구절로
시나브로 맞장구쳐보려는 불판 위의 삼겹살이며
장대비가 허공을 뚫고 궤적을 만들어도
삶의 얼룩을 무늬로 직조하는
한적한 골목길의 현수막입니다.
당신은 서릿발 강추위에도 내장은 감추고
살아온 생의 모든 순간을 벼랑길에 몰아세워
단풍잎에 새겨진 그림으로 추억하며
찢어진 화폭에도 울지 않고 먼 하늘을 직시하는
아픔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눈시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