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나는 새는 왜 멀리 볼 수 없을까요?
높이 나는 새는 왜 멀리 볼 수 없을까요?
모든 확신은 부패한다. 질문은 (확신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다
나에게 질문은 벽도 문으로 바꾸는 전대미문의 마법의 열쇠이자
낯선 관문을 열어가는 탐문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창문
호기심을 자극하는 탐문이자 시야도 넓혀주는 견문
고정관념도 파괴하는 파문
왜 마스터리(mastery)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미스터리(mystery)일까요
경지에 이른 사람의 노하우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쉽게 밝힐 수 없다는 점은 다른 연관된 질문을 계속 제기하게 만듭니다.
경지에 이른 사람의 비법은 왜 다 나에게는 편법으로 다가올까요?
왜 경지에 이르는 맥락(context)은 언어적로 표현(text)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까요?
왜 경지에 이르게 만든 모든 Practices를 Process로 처방할 수 없을까요?
왜 처방된 Process대로 현장에서 Practices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왜 다른 사람의 Insight는 나에게 Instant 자극으로 다가올까요?
왜 Manual에 처방된 대로 Manner가 나오지 않을까요?
왜 김치 담그는 손맛의 차이를 좁히는 방법을 매뉴얼로 만들 수 없을까요?
경지에 이르는 방법은 배우는 게 아니라 익히는 것이다-배움과 익힘의 차이
다른 사람의 성공 스토리나 비법, 다른 사람의 성공지도에는 나의 성장지도가 없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준 책이 마이클 폴라니의 《개인적 지식(Personal Knowledge)》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등장하는 《코나투스》로 책을 저술한 근원적인 동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체득하는 암묵적 지식은 체험이 아니라 경험,
정보가 아니라 나만의 내러티브를 축적할 때 자연스럽게 육화되는 설명 불가능한 지식입니다
경지에 이른 사람은 궁지에 몰렸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긍지를 갖고 자기 분야의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도
한 때는 궁지에 몰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한 방법개발전문가입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 스토리나 비법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자기만의 언어로 경험을 벼리는 가운데 자기만의 일생이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원본으로 뒤흔들 것인가, 복사본으로 휩쓸릴 것인가-코나투스대로 살아가며
욕망과 노력이 만나 능력이라는 자식을 낳으면 일어나는 명랑하고 행복한 삶
코나투스대로 살아가는 2025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KY_UuLmxuw&t=75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