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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낙엽을 품은 흙입니다

제자의 실수마저도 받아들여 자양분으로 바꾸어주는 대지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낙엽을 품은 흙입니다

제자의 실수마저도 받아들여 자양분으로 바꾸어주는 대지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지식을

관념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고

겪어본 경험을 근간으로

방향을 온몸으로 가리키며

먼저 걸어간 족적과 거울에 비추어

제자가 걸어갈 길을

몸소 보여주신

스승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깊이 새깁니다.


아직도 스승처럼 스승이 되지 못하고

알량한 앎으로 삶을 재단하고 평가하며

진부한 입장을 담아

거만하게 주장하기에 바빴던

지나온 선생의 길을 회고하고

앞으로 걸어갈 삶을 전망해 보는

반성문을 올립니다.


①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환하게 빛을 비춰주고, 나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어둠 속을 같이 헤매는 배우는 학생에 불과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변함없이 길을 안내해 주는 일관된 가르침도 여전히 또 다른 정문일침으로 배우고 있는 부족한 배우에 불과합니다.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 잃은 배에게 손짓하는 밤하늘의 별 하나가 되지 못하고 또 다른 별에 가려져 어둠을 배경으로 아직도 빛이 될 그날을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거친 파도와 비바람, 그리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허망한 바닷가에서 오늘도 언제 찾아올지 모를 제자들의 발걸음에 귀를 기울이고 미진한 빛이나마 비치는 등대가 되도록 어제보다 더 노력할 따름입니다.


②비옥한 땅에서 싹을 틔우는 ‘햇살’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제자 안에 숨겨진 잠재력이라는 씨앗을 발견하는 과정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도 못했고, 간신히 찾아낸 씨앗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도록 따뜻한 햇살처럼, 혹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비옥한 땅처럼 영양분을 주는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씨앗이 발아될 수 있는 토양개조 과정에 있으며 따듯한 손길을 내밀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자신 안의 씨앗, 스승이 뿌린 햇살 받아 마침내 싹 틔우는 과정을 북돋우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씨앗에 이르는 햇살이 되지 못해도 내일은 더 분발을 거듭해서 조금이라도 따스한 기운이 내비칠 수 있도록 몸을 던져 불태워보겠습니다.


③원석을 다듬는 ‘장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제자의 재능과 인격이라는 보석을 발견하고, 끈기 있게 다듬어서 세상에 빛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존재로 거듭나게 만드는데 아직은 역부족입니다. 헌신적으로 몸을 던져 원석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수준을 넘어 고생하며 고뇌해야 하는데 여전히 몸보다 머리가 앞섭니다. 길가의 하찮은 돌멩이라도 저마다의 존재이유가 있어서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의 눈길 닿는 곳마다 보석으로 빛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누구나 잠재적 씨앗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걸 찾아내고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고 실험하는 여정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겠습니다.


④강을 건너게 돕는 ‘징검다리’나 ‘나룻배’가 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힘으로 건너기 어려운 삶의 강이나 배움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딛고 나아갈 발판이 되어주거나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나룻배가 되는데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지금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험난한 물살을 건너 우리가 함께 꿈꾸는 목적지에 이르는 길에서 우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습니다. 막막한 저 강 앞에서, 제자들의 무조건적인 징검다리가 되어 어려운 상황이나 배움의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풍우에 떠내려가도 다시 정신을 가다듬도 내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빛내고 위해 설 자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⑤오래된 ‘지혜의 샘’이나 깊은 ‘우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르지 않는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 목마를 때 찾아가면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스승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현실적 요구에 대응하기 바쁘고, 깊은 경험적 통찰과 사유체계를 구축, 깨달음의 심연에서 갈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의 샘이 되기에는 여전히 닦아야 할 학문적 내공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느끼는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샘물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이곳저곳을 파헤치며 샘물의 수원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언제 발견될지 모르고 어떤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 부단히 수련하고 연마하는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책상지식으로 복잡한 삶을 재단하지 않고 눈물과 땀으로 일궈낸 몸의 깨달음으로 삶을 구조해 보겠습니다.



⑥스스로 설 수 있도록 놓아주는 ‘바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항상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주는 것을 넘어, 이제는 제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거나 멀리서 응원하며 놓아줄 줄 아는 바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마다의 개성과 스타일이 다름이 되어 다양한 가능성과 바람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진정한 성장을 지지해주지 못하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비상하는 꿈을 품고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미력하나마 바람이 되어 보겠습니다. 새가 둥지를 떠나듯, 이제 스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스승의 품을 떠나 스스로 세상에 나아갈 때 느끼는 보람과 감동이 우리들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더 추진하겠습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연주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보며 바람을 넣어주는 연주되지 않은 음표가 되기 위해 침묵의 가르침을 더욱더 연마하도록 하겠습니다.


⑦함께 웃고 울어주는 ‘듬직한 어깨’가 되지 못했습니다


배움의 과정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힘들고 좌절할 때 말없이 어깨를 내어주며 위로와 지지를 보내주는 따뜻한 존재가 되기에는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심장보다 머리가 앞서고 몸보다 생각이 지배하는 동감이 공감을 지배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인격적인 교감으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나누기에는 닦아야 할 인격의 높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기쁠 때 웃음 나누고, 아플 때 눈물 닦아준 그 어깨의 무게,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지지해 주는 따뜻한 마음에 대한 소중한 감사를 위해 희비쌍곡선의 의미를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공부를 더 해야 되겠습니다.


⑧지도보다는 ‘나침반’이 되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 걸어간 선배들의 족적을 따라가는 지름길을 지도를 참고하여 안내하려는 욕망의 물줄기가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새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변함없는 나침반이 되어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제자 스스로 생각하고 본질을 파고들며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 애정 어린 질문을 던져주는 멘토가 되기에는 내공을 더 닦아야 하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던 제자에게 별처럼 박히는 희망과 용기의 질문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아가게 만드는 날카로운 질문술사가 되어보겠습니다. 정답보다 해답을 찾아나가며 주체적인 문제의식으로 당연함을 부정하는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를 기르는데 전력투구하겠습니다.


⑨평생을 따라가고 싶은 ‘발자국’이 되지 못했습니다


말과 글뿐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통해 제자에게 귀감이 되고, 인격적으로 존경받아 평생을 본받고 따르고 싶은 삶의 롤모델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치열한 삶보다 치밀한 말과 특히 논리적 글을 강조함으로써 앎과 삶과 글이 일치되는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듯, 제자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선각자의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시류에 흔들리되 뿌리까지 뽑히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숱한 세상의 변화가 밀려와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면서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중심을 잡아주는 바위 같은 존재로서 묵묵히 걸어가면 발자국을 남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트렌드를 쫓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⑩사랑이라는 이름의 ‘채찍과 당근’이 되지 못했습니다


무조건적인 칭찬이나 격려뿐만 아니라, 때로는 제자의 잘못된 부분을 엄하게 꾸짖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 채찍과 당근의 이중주를 연주했어야 하는데 여전히 당근보다 채찍으로 몰아가고 있음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쓴 약 같던 그대 꾸지람이 결국에는 달콤한 약이 될 수 있음을 몸으로 증명해주지 못했고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중에 도움이 되는 따끔한 가르침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데 여전히 실패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잊고 지냈지만, 나를 비춰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먼지 쌓인 거울처럼 사랑을 매개로 일어나는 칭찬과 질책의 양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건강에 좋은 당근의 성분과 채찍의 가혹한 꾸지람 모두 성장과 성숙에 필수적인 영양소임을 몸소 깨우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스승은 자신을 깎이면서도, 누군가의 생각과 길을 기록해 주는 낡은 연필입니다.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빛나게 만드는 불타는 양초처럼 말과 글에 앞서 삶으로 세상의 길이 되는 공부를 몸으로 겪어내는 솔선수범의 산 증인이 바로 스승입니다. 스승은 이야기를 다 써주지 않고, 무조건 시작하게 만들어서 시도 창작하게 만드는 것처럼 언제나 나머지를 다시 스스로 쓰고 싶게 만드는 첫 문장입니다. 스승은 서투른 시작이지만 시행착오 속에서 판단착오를 줄여나가는 우여곡절의 삶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스승은 언제나 자신의 시선이나 관점의 정당성을 편향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세상을 자기만의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틈을 열어주는 창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같은 스승의 날에는

스승이라는 단어의 어깨에 기대에

스승의 ‘옆’에 있다가 ‘곁’으로 다가가

넋두리라도 부담 없이

늘어놓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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