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고 지식만 흡수하면 100% 걸리는 병, 지식 당뇨
AI 시대 현대인이 걸리기 가장 쉬운 No.1 질병은?
움직이지 않고 지식만 흡수하면 100% 걸리는 병, 지식 당뇨
당뇨는 필요 이상으로 과식하고 필요 이하로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질병이다. 에너지가 혈중에 쉬고 있을 때 주로 당뇨가 생긴다고 한다. 에너지가 흐르게 하면 그만큼 당뇨에 걸릴 확률을 낮추는 것이다. 방법은 음식을 먹은 만큼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즉 당뇨를 예방하는 강력한 방법은 먹은 만큼 무조건 움직여서 에너지가 혈중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AI 시대가 급격하게 생활속으로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너무 쉽게 흡수한 정보나 지식을 소화시키기도 전에 또 다른 메시지나 이미지에 노출된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빠른 속도로 다량의 메시지나 이미지를 후두엽으로 받아들인 다음 전두엽으로 보내서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그 의미를 따져볼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또 다른 자극적인 메시지나 이미지에 노출된다. 몸을 많이 움직인 만큼 당뇨에 걸리지 않듯이 흡수한 정보를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충분한 사색의 시간과 직접 적용하고 실천하면서 그 의미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먹히는지를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을수록 지식당뇨에 걸리지 않는다. 당뇨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질병이듯이 필요 이상의 지식을 다량으로 흡수, 그것도 너무 쉽고 빨리 흡수한 다음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따져 묻거나 실제 몸을 던져 적용하면서 체화시키지 않을수록 지식 당뇨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분노를 유발하는 조악한 디지털 콘텐츠에 접속할수록 뇌는 썩는다
AI가 실생활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스스로 머리를 써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어렵고 힘들며 위험한 문제일수록 인지적 부담감을 AI에게 하역시킨 다음 사람은 편안하게 쉬는 시간이 많아진다. 몸은 물론이고 직접 겪어보는 정신노동의 강도는 폭발적으로 줄어들면서 인지적 부담감은 현격하게 감소되고 있다. 편리함을 쫓을수록 지성이 사라지고 불편함을 견뎌야 지혜의 꽃이 핀다. 문제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AI에 의존하는 문제풀이가 가속화될수록 사람들은 점차 편리함과 안락함에 무의식적으로 의탁하는 관성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뇌 속으로 입력되는 정보가 몸을 쓰는 직접 경험이나 고단한 정신노동을 통해서 일어나지 않고 손가락 클릭과 접속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몸에 입력되는 정보나 지식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나지만 그걸 몸을 움직여 실천하고 적용하면서 겪어보는 경험은 현격하게 줄어든다. 바로 이런 순간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지식 당뇨에 걸리기 시작한다. 지식 당뇨는 필요 이상으로 지식을 흡수한 다음 필요 이하로 지식을 실천적으로 적용하면서 의미를 반추해보고 경험적 통찰력으로 재구성해보는 노력이 줄어들 때 걸리는 질병이다.
너무 많은 디지털 콘텐츠를 소화시킬 시간도 없이 흡수하다 뇌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반복되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점에 주목해서 옥스퍼드는 2024년도 뇌썪음(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바 있다. 2025년 옥스포는 올해의 단어로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일컫는 ‘분노 미끼(rage bait)’를 선정했다. 캐스퍼 그래스볼 옥스포드 사전 대표는 작년에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뇌 썩음(brain rot)’과 ‘분노 미끼’를 함께 묶어 “두 가지가 합쳐져 분노가 참여를 촉발하고, 알고리즘이 이를 증폭시키며, 지속적인 노출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강력한 악순환을 형성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미국 사전 메리엄-웹스터, 호주 매쿼리 사전이 모두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인공지능(AI)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슬롭(Slop)’을 선정했다. ‘슬롭’은 AI를 활용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저품질 디지털 콘텐츠를 뜻한다. 본래 오물이나 쓰레기, 가치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제품을 의미하는 슬롭이 최근 AI로 별다른 노력과 창의력 없이 대량으로 만들어져 유포되는 조악한 디지털 콘텐츠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된 뇌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면서 사색의 시간을 통해 내가 지금 무엇을 왜 하는지,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묻지 않은 채 범람하는 조악한 AI 디지털 콘텐츠(slop)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뇌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썩어간다(brain rot). 썩어가는 뇌는 또 다른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하는 콘텐츠(rage bait)에 수시로 접속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가 쓰나마처럼 뇌속으로 입력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에 걸린다. 이럴수록 생각의 주도권을 잡고 주체적으로 사유하면서 직접 몸을 던져 겪어보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가상에서 이루어지는 간접 경험이 직접 접촉 경험을 대신하면서 오감각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감각적 지각능력도 점차 퇴화되기 시작한다. 몸으로 감지하는 지각 능력은 퇴화되고 오로지 뇌로 입력되는 메시지나 이미지를 인식하는 능력도 개발되기 전에 조악한 디지털 컨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뇌기능 역시 퇴화되기 시작한다.
1. 지식 당뇨를 유발하는 습관에 물들다
AI 시대의 편리함과 정보의 홍수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지식 당뇨’에 취약해지는 생활 습관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무한 스크롤, 그리고 숏폼 콘텐츠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드는 요즘의 풍경은, 지식 당뇨를 더욱 깊게 파는 덫과도 같다. 자극적인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습관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로 넘기고, 순간을 채우는 짧은 영상을 소비한다. 그저 표면만 쓱 스치듯 지나가면서, 깊이 들여다보고 맥락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점점 멀어진다. 단맛처럼 빠르고 강한 정보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사색의 인내심이 사라진다. 생각하는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또 다른 독이 있다. 수집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분석은 건너뛰는, 이른바 ‘나중에 볼 거야’ 리스트 쌓기다. 수많은 기사며 영상, 뉴스레터 등을 저장하고 구독 목록만 잔뜩 늘리지만, 정작 그 내용을 곱씹으며 내 관점으로 소화하는 시간은 좀처럼 갖지 않는다. 갈증처럼 정보를 찾으면서도, 그 흐름은 내면의 깊은 지혜로 이어지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그러니 정보만 쌓일 뿐, 내 안에 남는 건 없다.
또 한 가지, 멀티태스킹과 주의 산만도 지식 당뇨를 부른다. 스마트폰과 PC, 태블릿을 한 손에 끼고, 한 가지 일에 몰입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과 자극에 집중이 계속 분산된다. 머릿속에 동시에 많은 것이 들어오면, 오히려 생각의 퍼즐 조각들은 산산이 흩어진다. 결국 집중력은 떨어지고, 그럴듯한 지식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채 금세 희미해질 뿐이다. 더 나아가, 정답만을 빠르게 찾으려는 습관도 문제다. AI에게 “정답”이나 “요약”을 잠깐 묻고, 그 과정이나 맥락을 탐구하는 수고를 외면할수록 지식 당뇨는 깊어진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다양하게 문제를 풀어보려는 힘은 시들어 버린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마지막으로 깊이 있게 사유하려는 노력 대신, 자극만 좇게 되는 경향도 벗어나기 쉽지 않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한 개념은 애써 피하고, 재미있고 보기 좋은 영상이나, 흥겨운 음악에만 점점 더 마음이 끌린다. 철학적 질문이나 비판적 성찰은 피로의 대상이 되고, 오로지 즉각적인 재미만을 좇으며 생각의 근육은 점점 퇴화된다. 결국 사유의 샘은 메말라가고, 지식은 촉촉하게 스며들지 못한다.
2. 지식 당뇨를 사유하는 5가지 은유
몸의 당뇨가 영양의 과잉과 활동의 부족에서 오듯, 지식 당뇨는 정보의 과잉 흡수와 사색 및 실천의 부족에서 오는 지적 불균형에서 찾아온다. AI가 쏟아내는 방대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빨리 지식을 흡수한다. 마치 달콤한 간식처럼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만, 소화되지 않은 지식은 혈액 속 당분처럼 우리 의식의 흐름에 정체되고 침전된다. 후두엽으로 받아들인 자극이 전두엽에서 충분히 분석되고 의미화될 틈도 없이, 다음 자극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인지적 패턴은 지식 당뇨의 발병률을 높이는 주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을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 정신은 분명 병들 것이다. 지식 당뇨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도록 다섯 가지 은유로 사유하면 더욱 이해가 촉진될 것이다.
지식 당뇨는 정보의 비만(肥滿)에서 온다
지식 당뇨는 첫째, 정보 비만(肥滿)에서 온다. 마치 몸이 과하게 음식을 섭취해 살이 찌고 무거워지는 것처럼, 정신 역시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지식과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느새 둔감하고 비활성화된 상태에 빠지곤 한다. 겉으로 보기엔 풍요롭고 충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적 기민함과 유연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른바 ‘지식 당뇨’의 시작은 지식의 폭주, 그리고 너무나 쉬운 접근성이라는 함정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종 정보는 눈과 귀로 쉼 없이 밀려온다. 지금처럼 AI 시대에선 마치 무한리필 뷔페에 앉은 듯, 클릭 한 번, 스크롤 몇 번이면 방대한 지식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유튜브에서 자동으로 이어지는 영상, 무한하게 펼쳐지는 SNS 피드, AI가 요약해 보여주는 보고서와 챗봇의 즉각적인 답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뇌에 고열량 지식을 끊임없이 붓는다. 마치 단맛에 길든 혀가 자극적인 가공식품만을 찾듯, 우리의 정신도 깊은 탐구 대신 쉽고 빠른 휘발성 정보에 점점 탐닉하게 마련이다.
이런 ‘과식’은 잠깐은 지적 만족감을 주는 듯하지만, 실은 불필요한 정보가 정신의 혈관을 떠돌며 생각을 흐리게 만든다. 마치 위장이 음식으로 꽉 차 더부룩해지듯, 머릿속도 무수한 지식 조각으로 가득 차지만, 그것들은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 뿐이다. 사색이라는 지적 운동이 빠져버리면, 이른바 지식 당뇨의 근원이 된다. 진짜 문제는 단순히 너무 많은 정보를 먹었다는 데 있지 않다. 받아들인 것을 곱씹고, 진짜 내 것이 되게끔 소화하고 체화하는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식에서는 그 역할을 사색, 비판적 분석, 숙고, 그리고 실천이 맡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급하게 받아들이느라, 그것이 진짜인지—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기존 생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나아가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찬찬히 따져볼 기회 자체를 잃어버린다. 씹지도 않고 삼켜버린 음식이 속을 더부룩하게 하듯, 소화되지 못한 지식도 자기 정신의 혈관을 둥둥 떠다니며 지식 당분만 늘려간다. 그 결과, 뇌는 과도한 정보 처리로 금방 지치고, 점점 깊이 있는 사고에서 달아나려는 방어 본능까지 동원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의 지성도 겉으로는 지식이라는 군살로 비대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안을 들여다보면 영양실조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된다. 머릿속에는 온갖 데이터가 가득해도, 자기만의 통찰로 엮어내거나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신진대사—지적 생명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정보의 비만’은 인간의 정신에 무게만 더할 뿐, 민첩함과 유연함, 창의성 모두를 앗아간다. 마치 몸이 살찌면 만사가 둔해지고 만성 피로에 시달리듯, 생각도 활력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좀처럼 밀려드는 자극에는 쉽게 지치고, 복잡한 문제 앞에선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머릿속은 항상 무엇인가로 빼곡한 듯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순간엔 선명한 사고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깊은 딜레마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게 되는 것이다.
지식 당뇨는 사유의 정체(停滯)에서 온다
둘째, 지식 당뇨는 사유의 정체(停滯)에서 온다. 마치 혈액이 끈적해져 혈관 곳곳에 흐르지 못하고 머무르게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도 너무 많은 지식과 아이디어가 소화되지 못한 채 쌓여 생각의 물길을 막아버리는 순간이 있다. 이때 창조적인 연결고리는 끊기고, 생각의 흐름은 멈춰 선다. 저마다 머릿속은 각종 정보로 가득하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이 오면 명료한 판단이나 깊은 통찰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정신이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해두는 창고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지적 에너지가 흘러드는 생명의 통로다. 아이디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며, 통찰이 샘솟는 강물 같은 것이다. 이 강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와 내면에서 우러난 성찰이 만나고 섞이면서 ‘사유’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건강한 혈액이 온몸 구석구석을 돌며 산소와 영양분을 퍼뜨리듯, 생기 넘치는 사유의 흐름은 우리의 모든 지적 활동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이 흐름이 살아 있으면 지식도 생명력을 얻고, 의미는 점점 확장되며, 창의성 역시 꽃을 피운다. 하지만 AI 시대의 우리에겐 이 사유의 강이 한곳에 고여 썩어 가는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강이 흐르지 못하면 물이 썩어가고, 찌꺼기가 가득 차서 결국 흐름이 완전히 막혀버리듯, 우리의 생각도 정체라는 위험에 노출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받아들인다. 앞서 말한 정보 비만처럼, 과도한 지식의 유입은 사유의 강에 너무 많은 부유물과 찌꺼기―파편적인 정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조각들―을 쏟아붓는다. 강물이 깨끗할 때 유연하게 흐르듯, 사유 역시 맑고 명료해야 한다. 그런데 불필요한 정보들이 자꾸만 쌓이면서 흐름을 방해한다. 지식을 단순히 흡수하는 데 그칠 뿐, 비교하고 분석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엮어내거나,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지적 운동은 점점 줄어든다.
혈액도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순환해야만 건강을 유지하듯, 뇌에 담긴 지적 에너지도 움직여야 사유의 흐름이 살아난다. 아이디어를 잇고, 가설을 세우고, 반박을 더하며, 의미를 찾아 나서는 그 과정이 멈추는 순간, 정신은 서서히 굳어간다. 결국엔 지적 무감각에 빠지고, 생각의 생기마저 흐려져 버린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듯, 정체된 사유 끝에는 지적 활력만이 아니라 섬세함, 민감함도 사라져 버린다. 지식이 파편처럼 흩어져 서로 이어지지 않고, 그 속에 깊은 의미와 통찰도 점점 사라진다. 수많은 단어를 알지만 정작 문장이 담으려는 진짜 뜻에는 다가가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지식의 이해에만 급급할 뿐, 그게 내 삶과 세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곱씹어보는 성찰은 점점 희미해진다. 사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지식들이 만나 충돌하거나 융합될 때 비로소 탄생한다. 하지만 생각이 정체되면 이런 활발한 연결과 융합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창의성은 점점 말라버린다.
머릿속은 정보로 가득한데,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답답함은 점점 짙어진다. 생각의 흐름이 멈추는 곳에선, 중요한 문제 앞에서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기 어렵고, 뚜렷한 관점 하나 세우지 못한 채, 자꾸만 외부 정보에 기대고 싶어진다. 지식으로 배만 부른 정신은, 정작 결단이 필요한 때 아무 힘을 쓰지 못하는 연약하고 흐린 존재가 되어 버린다. 사유의 정체란 단순히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하게 쏟아진 지식을, 내 안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흘려 보내지 못할 때 생기는 지적 혼란이다.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만큼이나, 그 정보를 움직이고 조합해내는 힘도 중요하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잃을 때, 우리는 어느새 영혼까지 메말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식 당뇨는 의미의 영양실조(營養失調)에서 온다
셋째, 지식 당뇨는 의미의 영양실조(營養失調)에서 온다. 우리에겐 필요한 영양소는 턱없이 부족한데, 열량만 높은 정크푸드를 계속 집어넣는 셈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쏟아부어도, 그게 내 안에서 진짜 의미와 본질로 우러나지 않으면, 괜히 속만 허전하고, 지적인 허기에 시달릴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지식을 잔뜩 쌓아 올렸을지 모르지만, 정작 깊은 성찰과 내면의 성장은 부족하다. 우리의 정신도 마치 몸이 음식으로 생명을 이어가듯, 정보와 지식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이때 정보가 단순히 양만 많으면 소용없다. 우리의 생각을 뒤흔들고, 통찰을 안겨주며, 때론 인생의 방향까지 틔워 주는 '정신의 영양분’이 되어야 한다. 잘 차려진 한 끼 식사가 몸에 힘을 불어넣고 건강을 지켜주듯, 깊이 있는 지식 한 줌, 짙은 성찰 한 모금이 우리의 지적 본질을 두텁게 만든다. 결국 지식은 그저 숫자나 데이터의 나열이 아닌, 의미라는 숨결이 살아 있어야 비로소 내면 깊숙이 스며들고, 내 삶과 맞닿은 지혜가 된다.
필요 이상으로 쏟아지는 정크푸드 같은 정보들—의미 없이 양만 많은 데이터에 파묻혀 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의미의 영양실조'에 빠진다. 지금 이 시대, 온갖 정보가 끝없이 밀려오지만, 정말 소중한 영양소, 즉 깊은 이해와 맥락, 사유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마치 칼로리만 높고 비타민이나 단백질, 미네랄은 거의 없는 음식물처럼, 우리 주변에는 깊이 없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휘발성 강한 숏폼 콘텐츠, 과하게 자극적인 헤드라인, 핵심만 뚝 잘라서 알려주는 불친절한 메시지, 또는 알고리즘이 미리 걸러낸 편협한 정보들, 어느덧 그것들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채운다.
이런 정보들은 그저 즉각적인 만족감을 준다. '알고 있다'는 착각도 들게 한다. 마치 설탕과 나트륨이 듬뿍 든 스낵이 잠시 배고픔을 달래듯 말이다. 하지만 그게 남기는 건 공허함이고, 진짜 영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머릿속에 지식이라는 이름의 것들이 입력되는 것 같아도, 그것이 왜 중요한지,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맥락을 잃어버린 죽은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의 위장 속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겉돌 뿐이다. 이런 상태가 점점 심해질수록, 우리 지성은 성장을 멈추고, 활력도 잃어간다. 몸이 영양실조에 걸리면 겉으론 포만감이 있어 보여도 사실은 만성 피로와 무기력, 성장 부진, 밀려드는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삼켜도, 그 안에서 의미라는 영양분을 길어내지 못하면 내면은 점점 텅 빈다.
의미 없는 지식은 새로운 통찰을 키우지 못하고, 문제를 풀 힘도 주지 않는다. 머릿속 정보더미는 멋대로 불어나지만, 진짜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력은 오히려 줄어든다. 지식이 의미를 품을 때 비로소 우리 지적 생명력의 엔진처럼 동기를 심고, 마음을 움직인다. 의미 없는 지식은 흥미도 못 끌고, 결국 생각하는 힘도 말라버린다. 그저 게을러지고, 창의력도 바닥난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내 자리를 찾으며, 내 기준을 세운다. 하지만 의미 없는 파편들 속에 떠돌다 보면,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정체성까지 혼란스러워진다. 이렇듯 의미의 영양실조는 단순히 아는 게 없어서가 아니다. 어설프게 안다고 착각한 그 순간, 가장 중요한 지식의 본질—의미—를 놓칠 때 깊은 지적 결핍이 시작된다. 뇌에 정보는 가득 쌓여 있어도, 정작 지적 영혼은 끊임없이 진짜 의미의 양식을 갈구하며 허기에 몸부림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비극적 자화상이다.
지식 당뇨는 인지적 과포화(過飽和)에서 발생한다
넷째, 지식 당뇨는 인지적 과포화(過飽和)에서 발생한다. 더 이상 물을 머금을 수 없는, 한계까지 흡수한 스펀지. 그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표면에서 또르르 맴돌다 결국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뇌도 마찬가지다. 넘치는 정보가 쏟아질 땐,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거나 기존 지식을 꺼내 쓰는 능력이 굳어버린다. 학습의 유연함은 점점 사라지고, 자극에 반응하던 뇌는 이제 둔감해지거나 오히려 쉽게 피로를 호소한다. 무한할 것 같지만 사실 분명한 한계를 가진 뇌의 흡수력. 이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정말이지, 우리의 뇌는 참으로 놀라운 스펀지와 비슷하다. 처음엔 맑고 건조한 스펀지처럼 새로운 지식이며 정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흡수한다. 빠르고 힘차게 의미를 추출하고, 때론 그 속에서 새로운 통찰까지 짜낸다. 마치 세상 모든 지식을 두 팔 벌려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정보가 넘쳐흐르는 세상에서, 뇌가 한계에 닿는 그 순간이 찾아온다. 아무리 좋은 스펀지라도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듯, 우리의 뇌도 곧 문을 닫아버린다.
이 AI 시대, 우리는 그 한계를 잊은 채, 마치 마르지 않는 물을 스펀지 위에 연신 쏟아붓는 듯 뇌에 정보를 들이붓는다. 소셜 미디어 알림, 무한히 내려가는 뉴스 피드, 알고리즘이 고른 콘텐츠, 일과 중 수시로 도착하는 각종 알림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든다. 뇌는 모든 걸 처리하느라 마치 끓어오르는 엔진처럼 지쳐간다. 결국, 우리의 뇌도 과포화 상태에 이른다. 이때가 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흡수할 수 없는 과포화 스펀지처럼, 뇌 역시 새로운 정보를 품지 못한다. 스펀지 위에 흐르는 물처럼, 지식이며 정보는 뇌 밖을 맴돌다 빨리 사그라진다. 뇌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들어온다 해도 금세 휘발되어 흔적도 남지 않는다. 결국엔 지적 무감각에 빠지고, 만성적인 피로와 생각의 경직성이 뒤따른다.
인지적 과포화는 우리에게 참으로 잔인한 대가를 안긴다. 수많은 자극에 하루 종일 노출되면, 처음엔 예민하던 감각조차 무뎌진다. 뇌도 다르지 않다. 너무 많은 정보를 받다가 보면, 점점 새로운 것에 둔감해지고, 신선한 아이디어조차 마음에 닿지 않는다. 물에 잠겨 허우적대느라, 정작 무엇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뇌는 잠시도 쉴 틈이 없고, 지속되는 과부하로 집중력은 흐려지며 기억력은 자주 끊긴다. 학습도 더 이상 쉽지 않다. 머릿 속 CPU가 과열되어 버벅거리거나 갑자기 멈춰버리는 컴퓨터처럼, 뇌도 번아웃에 빠진다. 이렇게 한계에 다다른 뇌는, 어려운 문제에는 등을 돌리고, 늘 해오던 익숙한 방식에만 집착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변화, 다른 관점을 한사코 거부한다. 생각은 굳어지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간다. 결국,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던 뇌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멈춰선다.
지식 당뇨는 경험의 퇴화(退化)가 주원인이다
다섯째, 지식 당뇨는 경험의 퇴화(退化)가 주원인이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서서히 힘을 잃고 퇴화하듯,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어도 그것을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체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 지식은 점차 힘을 잃고 만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언젠가 걷는 법조차 까먹듯, 책이나 강의에서 얻은 지식도 실전에 나서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이론은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정작 현실에 부딪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장롱면허’ 같은 지적 무력감이 몰려온다. 지식을 행동으로 옮겨 지혜로 탈바꿈시키는 실천의 힘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몸이 움직임을 통해 튼튼한 근육을 만든다면, 우리의 정신은 살아 있는 경험이라는 움직임을 통해서야 비로소 지식을 지혜로 다듬고 키울 수 있다. 지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쌓는 게 아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오감을 이용해 느끼며, 실전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때야말로 살아 있는 지혜가 움튼다. 이렇게 길러진 ‘경험 근육’은 현실 속에서 지식을 적용하고, 그 결과를 통해 새로운 피드백을 받아들이며, 나아가 지식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원동력이다.
쓰지 않는 근육이 차츰 쇠퇴해가듯, 현실에 적용하지 않는 지식 역시 점점 효용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AI 시대’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AI는 우리의 생각을 대신해주겠노라 유혹한다. 복잡한 계산, 자료 조사, 아이디어 구상까지, AI가 손쉽게 가능하게 만들어주니 우리는 점점 경험 근육을 움직일 기회를 잃게 된다. 몸으로 겪고 체험하며 부딪혀야 할 순간들을 AI가 대체해버리면, 결국 우리 내면의 경험 근육은 점점 약해지다 못해 언젠가는 퇴화해버릴지 모른다. 오랫동안 누워 지내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 걷기 힘들 듯, 지식을 얻고도 그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무뎌지고 만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이론이 맴돌고 있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문제 앞에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마는 이상한 무력감만 남는다. 그 많은 지식은 결국 머릿속에만 박제되어, 삶의 무대 위에서는 빛을 잃고 만다.
이렇게 지적 자산은 점점 과장되지만, 정작 실천은 빈약해지는 불균형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경험이 자리를 잃고, 결국에는 머리만 큰 ‘지식 당뇨’의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맴돌 때, 우리는 자칫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천이 없는 지식은 허상에 불과하다. 이론과 현실의 간극이 커질수록 자기 능력을 더 과장하게 되고, 진짜 배움의 기회는 멀어져만 간다. 경험 속에서 지식에 의미와 깊이를 새기는 과정마저 사라지면, 그 지식은 결국 데이터 조각으로 전락하고 만다. 무엇을 아는지는 알지만, 그 가치와 무게, 실전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공허감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 문제를 몸으로 직접 부딪혀본 경험이 부족하면, 실패 앞에서 더 쉽게 주저앉게 되고,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도 덩달아 약해진다. 지식은 아름답게만 빛날지언정, 마치 유리 상자 안의 나비처럼 바람 한 점에도 쉽게 흔들릴 뿐, 날아오를 힘은 갖지 못한다.
3. 지식 당뇨 유발 원인과 예방 및 치료 대책
그렇다면, 이렇게 불어난 지식 당뇨를 예방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지식 당뇨에 자주 빠져드는 근원적인 이유들을 곱씹으며, 이를 막고 극복하는 해법을 진지하게 찾아야 한다.
생활습관이 지식 당뇨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다
지식 당뇨를 유발하는 첫 번째 원인으로, 초연결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보의 폭주를 들 수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매일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웹 검색, 소셜 미디어, 끝없는 뉴스 피드 속에서 끊임없이 정보의 파도에 잠긴다. 스마트폰 알림이 한 번 울릴 때마다 우리의 주의력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머릿속은 온종일 산만해진다.
두 번째로는 즉각적인 만족을 향한 욕구, 그리고 피상적으로 정보를 소비하려는 습관이 문제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쉬운 정보들에 길들여져, 우리는 깊이 사유하거나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순간을 자꾸만 잊는다. ‘빨리빨리’가 미덕인 사회에서, 좀 더 천천히 읽고 오래 생각하기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안의 사유는 점점 얕아지고 만다.
세 번째로는 뇌의 인지적 부담과 방어 기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쏟아지는 정보에 짓눌려 뇌는 더이상 깊이 있게 생각하기를 주저한다. 그저 효율성을 좇아 파편화된 정보만을 빠르게 훑고, 의미를 통합하는 과정을 건너뛸 뿐이다. 결국 깊은 이해 대신 단편적인 비교와 암기만이 남는다.
네 번째 원인은 실천의 부재다. 얻은 지식을 실제 삶이나 일상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드물다 보니, 머릿속에 새겨진 정보가 좀처럼 살아 움직이지 못한다. 직접 행동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생략하면, 결국 지식은 살아있는 힘이 아니라 그저 쌓여가는 무기력한 데이터가 되어버릴 뿐이다.
마지막으로, 정체성의 혼란과 비판적 사고의 결여를 들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가치 있는지 판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자신만의 관점이나 입장을 세우기보다는 남의 의견이나 여론에 쉽게 휩쓸리게 되고, 결국 주체적인 지식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생활습관을 바꿔야 지식 당료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
이렇듯 지식 당뇨의 근본 원인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천천히 돌아보고, 각자의 삶 속에서 사색과 실천,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비판적 시선을 키우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이런 원인을 곱씹어 보면, 지식 당뇨를 예방하고 치료하려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지식 소식’의 지혜와 정보 선별법을 익혀야 한다. 쏟아지는 모든 정보를 무턱대고 받아들이기보단, 내 삶과 목표에 정말 필요한 지식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습관이 중요하다. 정보의 출처를 제한하고, 한 가지 주제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슬로우 미디어'나 책 같은 매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보자.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맞춤형 정보에 기계적으로 기대기보다는, 나만의 비판적 필터로 직접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을 키우는 게 핵심이다. 모든 정보를 죄다 흡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내 관심과 목표에 맞는 신뢰할 만한 몇몇 정보원만 골라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태도다. 하루 중 일부 시간을 정보 소비에만 쓰고, 그 외엔 불필요한 정보 자극을 차단하는 '정보 단식'을 실천해 뇌에 여백을 허락하는 것도 필요하다. 적게, 깊게 나아가는 것—이것이 진짜 핵심이다.
둘째로 사색과 반추의 시간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마치 소가 천천히 여물을 되새기듯, 머릿속을 천천히 뒤척이며 이미 들어온 정보를 곱씹고 내면화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독서를 마치고 직접 글을 써보거나, 명상을 하거나, 산책길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이미 자리 잡은 궁금증, 생각들과 연결하고, 스스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그런 깊은 사유의 과정이 중요하다. 단순히 알기만 하는 상태에서, ‘생각하는 존재’가 되는 전환점이 여기 있다. 읽고 들은 것을 머리에만 담지 말고, 내 언어로 정리해서 요약하고, "진짜 그럴까?" 하고 비판적으로 질문도 던져보자. 기존의 지식과 연결해 새로운 길을 열어보는 시간을 꼭 마련하자. 디지털이든 손글씨든, 책에서 감동받은 문장이나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인상 깊은 강연을 차곡차곡 기록해두는 ‘지식 저널링’이 바로 그런 사유를 아로새기는 훌륭한 도구다.
셋째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지식을 체화하는 실천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게 된 지식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현장 속에서 실행함으로써, 그 의미를 내 방식대로 검증해보는 용기가 중요하다. 바로 이 과정에서 지식은, 그저 머리에 머무는 정보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지혜로 거듭난다. 예를 들면 새로 배운 기술을 직접 코딩해보거나,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것, 혹은 남에게 배운 내용을 내 언어로 설명하며 가르쳐보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몸을 아끼지 않고 시도해보는 과정, 바로 그것이 지식 당뇨를 예방하는 가장 든든한 백신이다. 새로운 생각이나 정보를 얻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내 삶이나 일 속에 적용해보고 실험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에만 있는 이론을 현실의 문제와 맞부딪혀보는 경험을 통해 지식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고,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 속에서 더 깊은 교훈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체득하는 경험이야말로 지식 당뇨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처방이 될 것이다.
넷째, 이제는 디지털 단식과 뇌를 위한 진짜 휴식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처럼 늘 곁에 두던 디지털 기기에서 의도적으로 물러나, 일상의 정보 홍수를 잠시 끊어보는 것이다. 쏟아지는 정보의 파도에서 벗어나면, 과부하에 시달리던 내 머릿속에도 조용한 틈이 찾아온다. 이 고요 속에서 내면 깊숙이 숨은 목소리가 비로소 들려오고, 무의식적으로 흩어졌던 조각들 역시 하나 둘씩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든다. 때로는 짧게 몇 시간, 때로는 며칠 동안 완전히 디지털과 거리를 두며, 나 자신과 세상, 혹은 사람에게 다시 ‘접속’하는 법을 연습해보자. 자연 속을 산책하거나, 종이 위에 힘껏 선을 긋거나, 낯선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얼굴을 마주한 채 누군가와 대화하는 그런 시간 말이다. 뇌는 이럴 때 비로소 숨을 돌리고, 우리의 감각은 비좁은 화면 너머 다채로운 세상을 새롭게 만난다. 결국 이런 틈과 여유가, 자칫 메마르기 쉬운 디지털 시대의 일상에 신선한 영감과 통찰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다섯째, 질문하고 토론하는 힘을 키우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을 하나둘 담아두는 데서 멈추지 말고, 스스로 ‘왜?’라고 묻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며 의미를 더해보자. 자신만의 언어로 이해한 것을 설명해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에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서 생각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인공지능의 답변이 아무리 빠르고 그럴싸해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과 직접 논쟁하는 경험만큼 나를 성장하게 하는 과정은 없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지식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관련 주제로 토론에 뛰어드는 것, 혹은 손수 글로 정리해보는 습관이 바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결론적으로 가장 훌륭한 배움은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경험 속에서 생기니, 그 과정에서 남은 빈틈과 의문을 채우기 위해 다시 공부하게 되고, 결국 내 지식은 더욱 또렷하게 다져진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전에 없던 ‘지식의 홍수’를 안겨줬지만, 동시에 어떻게 배부르게 채운 지식을 소화할지라는 커다란 과제를 던졌다. 어쩌면 ‘지식 당뇨’라는 진단과 그에 맞는 처방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지적으로 건강해지는 길에 작은 등불이 되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