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에서 띄우는 편지

몬세라트에서 띄우는 편지

화난 바위 위를 걸으며 사색에 잠긴 달빛

폭풍우가 지나가며 남긴 나뭇가지 사이의 빈 행간

과거를 버리되 현재로 재해석해야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역설은

몬세라트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에 전해주는 역사적 지혜의 경전이다.


정말 하늘의 정원사가 거대한 톱을 겨눈 걸까.

구름조차 잠시 숨을 고르는 저 잿빛 바위숲은

카탈루냐의 피, 눈물이 엉겨 붙어

마침내 세워진 카탈루냐 정신의 마지막 보루.

역사의 뼈대를 품고, 결코 꺾이지 않는 자존심으로 우뚝 섰네.


검은 성모의 자비로운 눈길 아래

무적의 나폴레옹의 포화도,

독재의 싸늘한 칼날과 횡포도

이 바위틈을 뚫고 스며든 믿음만은 꺾지 못했지.


칼바람도 견뎌낸 채 회색빛 바위의 침묵

지나가던 바람도 구름위에 숨은 달빛도

멈춰서서 듣는 아찔한 절규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몬세라트의

참을 수 없는 희망 변주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변방의 변주곡이다.


바위틈 난간에 헐벗은체 작곡하는 고목의 겨울 연가

절벽에 터를 잡고 어금니 깨물며 살아가는 천년 적송(赤松)

갈 길을 잃고도 망설이지 않고

정처를 찾으려는 신랄한 자기반성이

오늘의 도도한 역사적 물결을 만들어간다.


절벽에도 거침없이 뛰어내리는 폭포처럼

지식인의 고뇌는

이곳에선 한 줌의 먼지로 흩어지고 산산조각이 나도

한사코 발길 가로막아도

지나간 원수까지 포용하는

눈부신 비명 소리를 내며

톱니로 울퉁불퉁 이어지며 웅변하듯 속삭인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가 종종걸음을 치며 지나온 길들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그 위를 채웠던 수만 번의 고민은

산들바람 틈새로 스르르 흩어진다.


나직이 번진 미소는

모진 풍파를 견뎌낸 이에게 새겨지는 작은 훈장이고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길에 대한 설렘이 깃든다.


이제 우리는 묵직한 고요 속 이 봉우리에서

천 년의 풍화가 새겨진 자국을 조용히 더듬으며

내일을 향한 새로운 지평선을 그릴 시간에 머물렀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별들의 향연이 멀리서 어둠을 비집고

푸른 새벽빛으로 천천히 번져오니

그 빛은 지난 상처를 감싸고

서글픔을 녹여 내며 떨리는

화해와 용서의 수건이자

자기 몸을 떨며 추위를 막아주는 문풍지다.


사람이 세운 담장은 언젠가 무너지겠지만

이 자연이 다듬은 지혜의 성채만은 오래도록 남으리라.

우리도 저 바위처럼 단단히 서로를 버티며,

톱니처럼 맞물려 갈등과 충돌을 조화시켜 내일로 나아가자.


노을보다 깊은 사색의 시간이 흐르는 이 자리,

몬세라트의 처연한 역사가 주는

교훈을 심장에 아로새기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마음으로 내일을 꿈꾼다.


저녁 어스름이 깃들면 수도원 불빛이 하나둘 깨어나듯

지나온 시간의 조각들이 우리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거친 바위산이 하늘을 찌르듯 솟구치듯이

우리 삶도 단단한 오늘을 딛고

가장 높디높은 내일을 향해

조용히, 묵묵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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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6일, 몬세라트 성당 일출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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