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보도 위로 흐르는 침묵의 시간
젖은 보도 위로 흐르는 침묵의 시간
화려한 색채를 잠시 내려놓은 광장,
세상은 검고 흰 선률로 다시 쓰여지고
파라솔 끝에 매달린 빗방울의 안타까움,
어제의 힘겨운 소란을 털어내고
낮은 곳으로 가어가 한 문장을 남긴다.
낯선 이들의 웅성거림은 배경음악이 되고
타일 위에 새겨진 고대의 태양은
의미의 자궁속에서 건축하는
불멸의 어휘를 지나가는 빗줄기 속에 감추고 있다.
저마다의 명분을 갖고
바쁨의 향연에 빠져버린 발걸음
식어버린 커피 한 잔 속에서
끊이지 않는 변명으로 묵묵히 빛난다.
멈춰 선 등 뒤로 먹구름이 품은 빗줄기
같음의 반복이 만드는 지옥을 애써 외면하며
흐릿한 현실을 직시하려는 시선을 만나
날 것의 기억이 편집된 추억으로 발효된다.
스쳐 지나간 시적인 순간을 붙잡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우두커니 서 있는
시칠리아의 젖은 공기가 커피 잔향을 타고
관념의 망토에 휩쌓여 자라는 고정관념을 파고든다.
한 문장으로 번역되지 못하는 삶의 언어들
언제나 재생중인 세상의 소음도
감각의 촉수를 만나는 순간
폐허가 된 앎의 현장은 복구되기 시작한다
팔레르모 대성당 종소리가
정적을 깨며 구름 사이로 스며들다
관성에 물든 개념들의 먼지 쌓인 책장에서
정처없이 갈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2026.1.29.일 팔레르모 대성당 앞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