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침묵이 묻다 — 콜로세움 앞에서

돌의 침묵이 묻다 — 콜로세움 앞에서


거대한 돌의 골격 앞에 서서

지나치지 않고 서성거리는 까닭은

겹겹이 쌓인 세월의 주름과

신음의 무게감이 역사적 소음으로 들려서다.


눈보라와 비바람 맞고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아직도 세상을 맞이하는 장벽,

너무 오래 새월의 무게에 짓눌려

시간이 이빨로 물어뜯은

상처 난 아치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비바람이 먹구름의 징검다리를 만나

비구름을 건너는 사이

로마의 푸른 하늘은 무심하게 걸려 있고,

풍화된 벽돌 틈새로 제국의 낡은 숨결이

우렁차게 침묵을 유지한다.


삭풍에 온몸을 떨고 있는 낙엽 한 장 처럼

광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역사의 울림을 듣고

지금 이 붉은 흙먼지 위에 위태롭게 서서

너무 오래 질퍽한 땅 위에서

귀를 막아도 환청처럼 밀려오는 소리를 받아

시를 쓴다.


오만 명의 군중이 내지르는 광기의 함성,

삶과 죽음이 한낮의 유희로 전락하던 순간,

하얀 거품 가슴에 품고

오늘도 동의 없이 허공에 메아리 친다.


바위와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문명이라는 찬란한 가면 밑에서

가장 적나라한 사자의 야만이

포효를 거듭할수록

멍든 가슴만 움켜쥐고 울부짖는다.


벼락을 맞아도 상처받지 않는 대담함인가,

폭풍에 항거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담벼락인가

그 옛날 창공을 찌르던 기세는 온데 간데 없고

돌은 무너져 장엄한 폐허가 되었으나

인간의 욕망은 저 아치처럼 여전히 멈출줄을 모른다.


기다려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고통의 글자들,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영감,

한 글자 한 문장이 잔뜩 머금은 검은 눈물과

도처에 산재하는 피 냄새만 지워졌을 뿐,

욕망의 구조는 변함없이 변하지 않는가.


콜로세움은 무너지 벽을 추스르고

세월의 아픔을 안으로 삭히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더 크고 견고한 원형 경기장에 갇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있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자본의 검투사들에게

새벽하늘을 지키며 글썽이던 눈물,

바라보아도 다가오지 않는 외로움,

지은 죄가 많아 가슴 졸이는 초승달도

경쟁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건조한 감정 자본의 한 가지 종류일 뿐이다.


손에 쥘수록 가벼워지는 노골적 정보,

안간힘을 쓰며 몸에 새긴 무거운 지혜도 속수무책,

길거리 옆에 핀 질경이의 몸부림 하나도

경이로운 존재로 보지 못하며

스마트폰의 차가운 스크린 안으로 빠져들어

타인의 몰락을 스낵처럼 소비하며

무감각하게 환호하다 유혹의 미늘에 걸려든다.


이해하려 애써도 감을 잡을 수 없는 허망한 깨달음,

너무 오래 원형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신념,

어둠 속에소 길을 잃고 하늘 길을 방황하는 별들 행방

하루 종일 서서 앞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있어도

자본으로 얼룩진 지식의 무게란 이토록 서글픈 것.


모든 영광은 결국 역사적 먼지가 된다는 진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자의 서글픈 고뇌여.


갈 길을 모르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불안감이 엄습해도 떨고 있는 단풍잎처럼

무너진 황제의 관람석 옆에서

나는 길 잃은 순례자처럼 하염없이 서성인다.


밤잠을 설친 찬 새벽 안개

흐르는 강물에 위태롭게 떠 있을 때

이 거대한 역사의 골격과 전운(戰雲)이,

창백한 성취감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심장을 겨누며 묻는다.


“그대의 미래는 안녕한가,

그대의 지성은 지능을 인도하고 있는가

그대의 삶은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


콜로세움.jpg


2026.1.30일 콜로세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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