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드 언덕, 서글픈 지식의 지층을 읽다

가르드 언덕, 서글픈 지식의 지층을 읽다


해발 백오십사 미터,

가르드 언덕에 서면 휘몰아치는 바람은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 아니라

천 년의 시간을 실어 나르는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울먹거리는

서글픔의 떨림들이 전하는 아우성이다.


푸른 지중해가 건네는 유구한 질문 앞에

가르드 언덕의 마른 바람은 서성이고

머뭇거리지 않고 내리쬐는 햇빛은

추락하기 싫은 몸짓으로 주변을 머뭇거리다

아래로 서서히 흐르는 회한의 눈물들로 돌변하며

마르세유의 구항구(Vieux-Port)를 굽어본다.


정처없이 떠도는 빗방울을 맨몸으로 맞으면서도

우산도 쓰지 않고 버티며 바라보는

마르세유 바다는 단순히 물의 집합이 아니라

천 년의 비명과 환희가 뒤섞인 거대한 문장,

항해사들의 간절한 기도가 모자이크로 굳은 성당에서

박제된 자본증식의 정보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경험의 뿌리를 되묻는다.


맞바람을 타고 날아든 알 수 없는 항거와

엉뚱한 의미의 무자비한 파편들을 모아

질퍽한 오후 흐릿한 기억속을 뚫고

어떻게 깊게 뿌리 내린 지혜의 숲을 가꿀 것인가.


여전히 멈추지 않는 바람에 멱살을 잡힌 현재의 시간은

서로를 은밀히 용서하다 뒤흔들리는

성당 외벽에 남은 처절한 안간힘의 얼룩들

단절된 과거의 흔적 위로 새로운 통찰의 싹을 틔우는 일,

그 고단한 성찰이 파도 위에 윤슬로 부서진다.


황금 성모의 시선이 머무는 저 먼 수평선 너머

허망한 사연들과 끝을 모르고 타들어 가는 목마름

낡은 지식과 타성에 젖은 역사적 인식은 심해로 침잠하고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 새로운 지형의 이정표를 세울 때,

지식생태학자의 고뇌는 비로소 한 권의 풍경이 된다.


인식의 포기를 재촉하고

희석된 문제의식의 날선 칼날을 무디게 하지만

그래도 붙잡는 집요한 지식인의 소명과 전망은

성스러움 아래 숨겨진 16세기 요새의 단단한 벽과

1944년의 비명이 박힌 외벽의 총탄 자국을 들여다본다.


요새(Fortress)이자 성소(Sanctuary)였던

이곳의 모순은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의 얼룩들

파괴와 창조, 충돌과 평화가 공존하는

적막을 깨고 하늘로 퍼지는 산만한 그리움 조각들이

얽히고 설키는 지식의 야생성과 닮았다.


늦은 겨울밤 보름달에 스며든 구름 한 점,

밤을 끌고 가다가 소리 없는 절창에 한눈팔다

머물던 이곳은 항해나 여정의 끝이 아니라,

낯선 세계로 지혜를 찾아 몸을 던지던

접속의 항구자 또 다른 출발을 다지는 전초기지였다.


황금 성모의 시선이 머무는 저 구항구의 물결 위로

빗줄기에 가로막혀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끄러운 고요함의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들

과거의 상흔과 미래의 설렘이 교차하며 흐른다.


초저녁 성당의 창문에 얼룩으로 그려 낸

춥고 배고픈 어두운 빛의 그림자들이 지어낸

지표면의 아픈 문장을 읽고

흐릿해진 시간의 지층을 파고들어 의미를 채굴하는 일,

그 고독한 성찰 끝에 한 송이 사유의 꽃을 피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역사의 파도 앞에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의 닻을 잠시 내린다.




2026.2.1.일 남부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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