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먹구름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다
오스만이 닦아놓은 파리의 매끄러운 대로를 따라
산책하며 완성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처럼
나는 여기, 지중해의 비릿한 욕망이 들끓고
담배 연기가 하염없이 하늘을 날며
타들어 가는 담배꽁초가 끝을 보이는
마르세유의 낡은 보도 위를 서성이며
일몰의 사라짐 속에 간직한 파편화된 지식의 무덤을 생각한다.
벤야민이 아케이드의 유리 지붕 아래서
자본의 판타스마고리아(환상)를 보았다면,
나는 이 항구의 부서진 돌 틈 사이에서
밀려오는 어둠의 서글픔을 잊어버리고
뿌리째 뽑혀버린 성찰적 각성의 허망함을 내다본다.
자본과 생산성으로 박제된 근대의 꿈은 어디로 갔는가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아름다운 벨 에포크(La Belle Epoque)의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치장 대신
노천카페의 일그러진 그림자들이
가슴속에 묻어 둔 잿더미에 불을 붙이며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문장처럼 바닥을 뒹군다.
산책자(Flâneur)의 서성거리며 한눈을 팔던 시선은
데이터의 속도와 노골적인 정보에 밀려 유령처럼 떠도는데
며칠째 나뭇가지 옆에 외로움이 우두커니 서 있고
지식의 생태계는 거대한 사막이 되어
오직 목표달성에 도움이 되는
쓸모라는 이름의 신전만이 곳곳에 거품처럼 번성한다.
구 항구(비외 포르, Vieux Port)의 흐느끼는 돛대들
하늘을 향해 찌르는 날카로운 물음표들의 항거에
대응하지도 못한 채 그리움에 지쳐 나도 모르게
느낌표 대신 마침표를 찍다가 마주친
말없음표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길가에 엎드려 있다.
세상이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시궁창이어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쉬지도 못하고 밤새 내리는
처절한 이슬방울과 서릿발을 벗삼아
나는 아케이드의 잔해를 들고
자본 속에서 숨 죽이며 살아가는
마르세유를 하염없이 걷는다.
상처라는 용광로 속에서 자신을 잃은 단어들이
이슬방울에 세수하며 앞날을 기약하듯이
과거의 폐허에서 미래의 섬광을 찾는
이 고독한 산책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낡은 개념들이 별빛에 몸을 씻으며
부서진 문장들이 서로의 의미를 뒤섞어
다시 푸른 숲을 이루는 지식의 새벽을 믿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걸었던 파리의 아케이드가
근대의 화려한 겉모습(판타스마고리아)을 상징하는 무대였다면
마르세유의 거친 거리는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면서도
자본의 허상과 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고독한 각성의 경작지다.
산책자가 지혜의 경전을 건축하고 싶은 마르세유는
편견의 가로등에 비추어 선입견을 덜어내고
마침내 의미의 정점에서 농축된 진실을
한 문장에 담아 도도한 사유의 물결이 흐르게 만드는
시리고도 뜨거운 성찰의 망명지다.
해저무는 가운데 정적이 감도는 백지 위에서
여전히 문장의 뒤안길을 걸으며
마지막까지 사유의 깊이를 파고드는 산책자.
의미의 주체를 찾아 헤매다가 의도를 먼저 만났지만
아직도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언어의 먹구름 속에서 끝없는 방황을 거듭하는 까닭은
파편화된 기억과 자본에 저당잡힌 지식을 모아
내일의 지식 생태학적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다.
2026.2.1일 프랑스 마르세유 골목길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