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샹(Longchamp)의 분수에서 묻는 지식생태학

중앙 분수에서 쏟아지는 저 찬란한 물줄기는

목마른 도시를 살려낸 혁명의 기억인지,

인공의 기술이 자연의 생명을 길들인 오만인가,

혹은 멈출 줄 모르는 소비의 전조인지

아니면 공생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는가


눈이 즐거워하는 대리석의 차가운 피부는

가슴은 알아듣지 못하고

귀가 즐거워하는 폭포 소리는

과거의 영광을 증언하나

머리가 생각한 한마디

그것은 이미 휘발된 지식,

생명력을 잃고 박제된 텍스트의 무덤인가.


새벽 공기가 밤새 뒤척거리던 몸을 일깨우며.

언어가 달려가 첫 느낌을 물어보지만 침묵으로

항변하며 번역을 거부하는 롱샹의 분수는

어제 덮고 잔 이불과 이별하며

어둠을 밝히며 한 낮의 빛으로 뛰어내린다.


투명한 한 가지 정답만 요구하는 수학과

여러 가지 해답이 존재하는 문학이 합작,

아래로 흐르며 생명을 잉태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밤새 흘러내려온 강물은

위로 쌓으며 권위의 신전을 짓는

인간의 오만한 몰락을 꾸짖는다.


뒤랑스 강의 맥박을

도심의 혈관으로 이식했던

이 거대한 아치 아래서,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나

시간의 흐름에 항거하던

대리석 벽면을 어루만지는 지식생태학자는

지나가는 것과 지나치는 것 사이의

불안한 맥박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공기중에 숨죽이고 기다리던 언어들은

흩날리는 바람에 떨면서 겁 없이 낙하하던

물줄기에게 안부를 묻고

떨어진 물 위의 글자들은

두려움을 뚫고 머리를 쳐들지만

가려는 물길의 향방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지식생태학자의 첫 눈에 비친 이 물의 신전은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출근하며

사투를 벌인 흔적으로 얼룩진

박제된 과거에서 박물관의 의미를 찾는게 아니라

흐르는 정보의 물줄기가

어떻게 지혜의 근육으로 바뀌는지를 묻는

거대한 역사적 사유의 실험실이다.


책상 위에서 숱한 나날을 고민하다

함께 살아갈 생존을 위해 강물을 끌어왔으나

이제 우리는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먹구름속으로 휘말리다 데이터의 홍수로 변해버려

정작 인생이 꼬이고 갈증이 나도 답을 줄 수 없는

한 바가지의 참된 앎을 잃어간다.


각본대로 풀리지 않고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불안한 세상에서

우연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암담한 미래를 점쳐보지만

기술과 디지털 지능이 인간의 고뇌를 대신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향해 어디로 나아갈지 조차 어둡기만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 정담을 주고받아도

새벽같이 달려와 이데아를 설파하던 플라톤도

이상(Ideal)의 깃발처럼 선글라스 너머로 비치는

푸른 목도리는 목에 감겨 있으나

숱한 짓밟음으로 견뎌온 발밑의 보도블록은

무거운 현실의 중압감으로 나를 붙잡는다.


칸트를 읽다가 길을 잃고 카페에 들려 냉수를 마셔도

스피노자를 읽다가 휘둘리는 감정에 몸을 던져도

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은 생태적 빈곤이

과거가 세운 이 웅장한 아치 아래서

던지는 질문이라는 마중물의 의미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니체를 읽다가 욕망의 사다리를 타다가

한가로운 벤치에 앉아 침묵을 유지하며

차가운 대리석이 앙갚음으로 들려주는

뜨거운 심장 소리를 들을 때까지,

흐르는 물에 정신의 닻을 내리고

두려운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내일의 갈증을 미리 견뎌야 한다.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시간은 정거장에 멈추지도 않는 것처럼

빛의 속도로 명멸하는 정보들은 강물처럼 흐르되

누구의 갈증도 축이지 못한 채 바다로 흩어지고,

수직으로 상승하지 못한 수증기는

참을 수 없는 데이터의 홍수로 전락한다.


관념은 와인 잔 속에 담긴 시인의 배고픔을 읽지 못하고

소주 한 잔에 담긴 노동자의 비애를 느끼지 못하며,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갱신하는 부단한 야생의 몸부림을

박제된 기념비 속에 가둘 뿐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물줄기의 절망조차

가을 비바람에 힘없이 고개 숙인

벼 이삭의 나약한 결단으로 읽어낸다.


과정의 고뇌는 증발되고

무심한 결론만 난무하는 정보의 폭포수 앞에서

오히려 사유의 빈곤만 깊어지는 역설의 시대,

나는 이 물의 신전에서 다시금 근원적인 질문을 긷는다.

미래는 빠른 계산으로 무장한

지능적 기술의 정교함과

노골적인 정보의 현란한 유혹보다

파편화된 지식과 신념을 잃고 방황하는 이념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으로 직조해나갈 때 비로소 도래한다.


롱샹의 물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속도가 앗아간 박제된 진리의

불편한 진실을 아로새기며

관념의 파편이 증축한 이념의 터전에서

불편한 다짐이 기다리는

새벽의 안타까움과 함께

나의 고뇌도 멈추지 않고

다시 흐르기 시작할 ‘살아있는 앎’을 위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


롱샹 분수.jpg


2026.2.1.일 프랑스 마르세유에 위치한 롱샹 궁(Palais Longchamp)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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