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는
짧은 문장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언어채굴광부, 마침내 문장건축노동자가 되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짧은 문장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언어채굴광부, 마침내 문장건축노동자가 되다


고독의 임계점에서 기다리던 햇빛의 야속함, 대출받은 언어로 문장에 비장함을 담아 외로움의 촉수를 받아적습니다. 바람의 여행자가 배경의 몸부림에 끌려가다 언어 채굴 광부를 만나 허공의 펀치를 날리는 바람의 용기에게 묻습니다. 반딧불의 절망이 달빛의 비애와 낙엽의 고뇌를 듣다가 절망의 그림자에서 슬픔의 편지지를 찾고 있습니다. 발자취의 깊이가 감정의 정화조에 몸을 기댄 채 서글픈 잔디의 하소연과 가슴시린 맞장구를 볼펜의 몸부림으로 받아냅니다. 벼이삭의 안간힘에 못 견뎌 행간에서 아우성이 솟아오르다 소나기의 돌팔매질을 만난 짧은 문장 건축 노동자, 찰나적 다정함으로 긴 시름을 읊조립니다. 책 속에 갇힌 단어들의 힘겨움, 세월의 무게에 눌린 시름의 얼룩, 전경의 슬픔으로 물든 허공의 침묵, 그 속에서 채굴되는 언어을 이끌고 새상 밖으로 나옵니다. 주어도 못 찾고 술어만 자꾸 찾아드는 서글픈 답답함을 못이기는 듯 참고 견디다 벼락같이 급습하는 찰나의 영감을 오늘도 받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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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듯, 찰나의 의미를 포착, 의미를 심장에 아로새겨 짧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의 수만큼 짧은 문장이 있다고 믿고, 오늘 밤은 그중에 한 문장을 마시고 싶은 사람입니다. 오늘밤은 누구랑 어떤 문장을 마실까요? 아무리 마셔도 의미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문장은 애꿎은 심장만 파고듭니다. 어느 새 밤의 적막과 심장을 파고들던 열정을 안주삼아 마셔버린 짧은 문장에 취해버렸습니다. 취(醉)하지 않으면 취(取)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정 사실로 믿는 사람입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무슨 의미인지 즉시 답을 주지 않아도 묵묵무답이 내가 찾고 있는 뜻밖의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원래를 부정하고 당연함을 의심하며 물론을 거부한 채 호기심의 창문을 365일 열어놓고 이유없이 무조건 다정한 마음으로 타자의 마음을 상상합니다. 조건없이 다가서는 다정함에서 평상시에는 볼 수 없었던 걸 상상하면서 짧은 문장은 창조됩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며 위로 한 마디 건네는 문장, 첫사랑의 감미로움을 흔들어 깨우는 추억의 한 문장, 한꺼번에 다 읽지 못하고 두고두고 곱씹어 먹으며 의미를 반추하게 만드는 문장, 당연한 생각에 도끼질을 해대며 통렬한 앎의 상처를 남기는 문장,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지며 갑가지 눈물을 쏟게 만드는 문장, 결핍을 건드리고 용건을 해결하며 지갑을 열게 만드는 유혹의 한 문장,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머뭇거릴 때 결단의 칼과 용기있는 출발을 선물로 주는 문장, 타성에 젖어 습관의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다가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 문장,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어둠의 뒷골목 진실을 뼈아프게 드러내는 한 문장, 바삐 걸어가던 길을 멈춰 서서 조용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한 문장에 한 사람을 한평생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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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서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경이로운 순간, 멍하니 바라보다 하는 수 없이 주저앉은 서글픈 풍경,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다가온 장면, 마지못해 앉아있다 어쩔 수 없이 일어서서 만난 뜻밖의 스치는 바람, 지름길로 달리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 만난 여백과 여유를 와락 끌어안습니다. 지시와 넌지시, 값 싼과 값비싼, 자기와 갑자기, 다르다와 색다르다, 무리와 마무리와 같은 간발의 차이가 기발한 의미와 재미를 뒤섞어 한 문장으로 직조됩니다. 경계를 한계나 넘어설 수 없는 장벽으로 보지 않고 경험으로 경지에 이르는 건널목으로 해석합니다. 걸림돌에서 디딤돌의 지혜를 배우고, 역경을 뒤집어 경력으로 만드는 반전의 마력을 몸으로 깨우치는 동안, 몸에 박힌 사건과 사고(事故)의 흔적과 얼룩으로 사고(思考)의 무늬를 직조합니다.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에 적확한 단어를 배치해서 평범하지만 비범한 언어의 묘미가 살아나도록 의미를 디자인합니다. 무궁무진한 무의미로 질주하던 무딘 감각의 껍질을 깨부수고, ‘습관’이 뒤집혀 ‘관습’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관례’에서 낯선 생각이 머뭇거리는 ‘사례’를 찾아 나섭니다. 사례 속에 가려진 사연에서 낯선 사유를 헤아리며 뜨거운 심장의 언어로 번역, 뇌리로 열기를 식혀가며, 백지 위에 무지를 깨우치며 앎의 상처를 아로새깁니다. 잠꼬대를 하다가 깨어도, 하소연을 하다가 하품을 해도, 찰나에 흐르는 의미가 휘발되기 전에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는 문장의 그물을 쳐놓고 거미처럼 긴 기다림에 희망을 겁니다. 그물에 걸린 한 문장이 한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며 용기를 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건한 신념으로 마음 속에 아로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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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한 순간에 스치는 의미를 낚아채려고 오늘도 물음표를 닮은 낚시 바늘을 활자의 바다에 던져 놓고 긴 기다림을 즐깁니다. 한 눈에 반하게 만드는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을 연료로 문장건축 노동을 자발적으로 즐겁게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보는(see) 사람이 아니라 바라보고(look), 관심과 애정으로 응시하며(watch) 지름길보다 에움길을 택해 에둘러 걸어가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짧은 문장을 쓰는 영감을 찾으러 오늘도 사색의 여행을 떠납니다. 허공에 깃든 우렁찬 침묵에게도 말을 걸어보고, 삭품에 온몸을 떨며 시도때도 없이 흔들리는 문풍지의 그리움에게도 소식을 전합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우울한 햇살이 전하는 한 마디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람결에 스쳐지나간 사이, 새벽녘은 날이 새지 않고 어둠 속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조차도 긴 한 숨보다 찰나의 영감을 고대하며 기대합니다.


틀에 박힌 생각에 파문을 일으키는 한 문장을 건져 올리기 위해 오늘도 애쓰기를 무기로 무지의 세계에서 끝없는 방황을 거듭합니다. 스치는 생각도 스미는 마음으로 번역하려고 익숙한 단어의 낯선 조합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설교나 설명보다 설득을, 선전이나 지시보다 선동이나 넌지시를 사랑합니다. 아침에는 재정의를, 점심에는 재해석을, 저녁에는 재음미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으며 원래, 물론, 당연으로 포장된 고정관념이나 기정사실의 세계를 파고들어 앎의 상처를 남기는 한 문장을 남깁니다. 그렇게 앎이 암이 되기 전에 생긴 앎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으며 내 몸에 각인된 감각적 파편들이 조립되어 짧지만 긴 호흡을 요구하는 짧은 문장이 세상에 얼굴을 내밉니다. 애간장을 원료로 하고 안간힘을 양념으로 탄생된 짧은 문장은 인간보다 오래 사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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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에 한 평생을 걸고 오늘도 활자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한 사람의 속수무책이 이 책 속에 있습니다. 보험이 모험을 먹고 자라듯, 문장은 파란만장한 삶을 먹고 태어납니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삶이 구구절절(句句節節) 감동을 품은 문장을 잉태하고,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이 파란을 일으키는 문장을 건축하기 때문입니다. 틀에 박힌 일상은 틀 밖의 짧은 문장을 제조하는 사상 최대의 상상력 공장입니다. 하찮은 일상에서도 사소한 발견에 체중을 실어 부단히 기록합니다. 누구나 봤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생각해니지 못하는 삶의 이면에서 잠자는 평범한 사실의 비범한 의미를 채굴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하기 싫은 그럴듯한 속사정이 있을지라도 속 깊은 심정으로 헤아리고 가까스로 살아내며 짧은 문장으로 건축하는 뜻깊은 노동을 사랑합니다. 방구석에서 이슬이 생기지 않듯, 짧은 문장도 격전의 현장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짧은 순간에 저절로 써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한 문장을 만나러 힘든 밥벌이를 위해 밖으로 나서는 모든 사람에게 짧은 문장으로 힘을 실어드립니다. 책장 속에 갇힌 짧은 문장이 불현 듯 한 사람의 삶에 파란을 일으키는 한 문장으로 살아남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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