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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지식 아닌 지혜 쌓자

AI시대, 지식 아닌 지혜 쌓자


인간지능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복잡한 기능을 인공지능은 아주 쉽게 처리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쉬운 과제를 인공지능은 애를 먹으며 진땀을 흘린다. 인간의 지능으로 축적한 지식을 인공지능은 잠도 안자고 빠른 속도로 학습해서 잊어먹지도 않는다. 인간지능으로 축적한 인간의 지식은 인공지능도 딥러닝을 통해 습득한다. 인간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지식은 인간의 고유한 경쟁력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지능을 넘어 지성, 지식을 능가하는 지혜를 개발하는 길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언어를 매개로 가르칠 수 없다. 지혜는 오로지 당사자가 다양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온몸으로 체험하는 가운데 체득된다. 지식의 단순한 누적이 지혜를 낳지 않는다.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패러다임을 지혜를 깨우치는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과감한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지능 및 지식과 지성 및 지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슈퍼제너럴리스트’의 저자 다카시 히로시는 ‘지능’이란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대해 재빨리 정확한 답을 내놓는 능력이지만 ‘지성’이란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해 그 물음을 계속 되묻는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누군가 던진 질문에 정답을 찾는 능력을 배워왔다. 미국의 저술가 캐빈 켈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계(또는 인공지능)는 답을 하기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이제 주어진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보다 뛰어나다.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문제에 대답하는 지식보다 그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동일한 대답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대답하는지에 따라서 대답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대답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은 지혜다. 예를 들면 사랑이 막 시작되는 단계의 연인들이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과 꽤 오랫동안 사귄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가 다른 것을 인공지능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지성으로 개발되는 지혜는 정답이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 속에 담긴 사연과 사고 속에 담긴 의도가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해내는 힘이다.



인공지능이 동경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던 일본의 아라이 노리코 교수의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계산하는 컴퓨터기이기 때문에 수학적, 확률적, 논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의미를 해석할 수 없다고 한다. 의미 독해 능력이 부족해서 결국 인공지능은 동경대학에는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일본의 상위 10% 대학은 능히 합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의미 독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점차 줄어든다는 데 있다. 의미 독해는 지식을 축적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정해진 절차를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는 알고리즘 기반 교육으로 의미 독해능력을 기를 수 없다. 인공지능을 능가하기 위한 인간지성은 이제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딜레마적 변수가 관여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숨은 의도와 그들이 지향하는 미묘한 역학적 관계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지혜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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