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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없는 개념은 관념이다

개념사전은 자신의 주관으로 개념을 재개념화 시킨 신념 사전

개념사전은 자신의 주관으로 개념을 재개념화 시킨 신념 사전 

     

기존 개념에 신념을 부과하면 새로운 개념이 탄생한다.     


세상의 모든 개념은 개념을 창조한 사람의 신념이 담겨 있다. 1부에서 살펴본 철학자들이 창조한 개념도 모두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풀어내기 위해서 기존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으니 자신의 신념이 담긴 색다른 개념을 창조해서 철학적 사유체계를 풀어내려고 노력한 것이다. 여기서는 신념이 담긴 개념사전은 철학자들만이 해야 되는 전유물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글을 쓰고 행동한다. 내 생각과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이 바뀌려면 기존에 사용하는 개념을 남다르게 재개념화 또는 재정의하거나 아니면 색다른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 개념을 바꾸면 틀에 박혀 있던 익숙함도 낮섬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당연한 세계도 당연하지 않은 세계로 다가올 수 있다. 신념 사전은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개념을 나의 관점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그동안 간과했던 삶의 소중한 의미를 반추해보는 가운데 행복을 찾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제까지는 남이 정의한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남들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다시 정의한 나의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반 작업이 바로 신념 사전 작성이다. 세상에 흩어져 떠도는 수많은 개념들이 관념의 파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념에 나의 철학과 신념을 반영해서 다시 정의해보며 의미를 재창조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권의 사전을 만드는 과정은 내 삶이 되었고, 내 삶은 곧 한 권의 사전이 된 영화 『행복한 사전』처럼 나도 내 삶의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함을 내 삶을 대변하는 개념에 담아내는 신념 사전을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지. 사전이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사전이 되는 책, 그런 책 속의 책이 바로 신념 사전이다. 김동주의 《언어유희 사전》에 보면 “지식은 정돈되어 있는 무식”(290쪽)이고 “지혜는 성공에서보다 실패에서 많이 얻는 슬기”(291쪽)라고 정의한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저자만의 신념이 반영된 개념 정의다. 

    


격전의 현장에서 몸으로 건져 올린 언어와 저자의 문제의식으로 새롭게 정의한 개념에 저자의 뜨거운 신념이 담겨 있다.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 치유자는 “스타는 화려하게 시든 꽃”(38쪽)이라고 하거나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인 바탕색”(86쪽)이라고 개념화시킨다. 나뒹구는 현장에서 몸으로 건져 올린 신념을 담아 기존 개념을 재정의할 때 새로운 사유의 문이 열린다. “공감은 상처를 드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 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158쪽). 공감을 관념적 언어로 정의하지 않고 저자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공감해본 체험적 깨달음을 갖고 ‘공감은 연고이자 치료제라’는 메타포를 동원해서 정의한다. 공감에 대한 정의에 이렇게 공감해본 적이 없다. 개념에 신념을 추가한 정의(定義)는 세상을 정의(正義)롭게 만든다. 정혜신 치유자가 공감 가는 공감에 대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감 없는 정신과 의사,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냉정한 의학 기능공에서 숱한 시행착오 끝에 몸으로 깨달은 느낌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한 동안 진료실에서 사람을 환자로 대하면서 약물치료를 주로 했던 자격증 있는 의사였음을 고백한다. 자격증은 있지만 과연 내가 사람을 치유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이 들면서 진료실이 아닌 현장에서 환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면서 각성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장체험을 통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개념을 창조한다. 바로 심리적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리적 심폐 소생술이다. “심장 압박을 할 때는 두꺼운 옷을 젖히고 옷에 붙은 액세서리도 다 떼고 정확하게 가슴의 중앙 바로 그 위 맨살에 두 손을 올려놓는다. 심리적 CPR도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나’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103쪽).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총합이다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오른쪽’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의하거나 설명해보라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너무나 흔히 쓰고 있거나 습관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라서 아무런 불편함이나 의미의 혼돈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생각하는 오른쪽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에게 설명해보라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 『행복한 사전』의 초반, 사전편집부 직원들은 스카우트할 인물을 찾아다니며 던지는 질문 “ ‘오른쪽’이란 단어의 뜻을 말해 보라”였다. ‘오른쪽’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오른손이 있는 방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오른손’을 찾아보니 “오른쪽에 붙어 있는 손”으로 정의되어 있다. 결국 ‘오른쪽’은 ‘오른손’이 있는 방향이고 ‘오른손’은 ‘오른쪽’에 붙어 있는 손이라는 이야기다. ‘오른쪽’을 알기 위해 ‘오른손’을 알아야 되는데 ‘오른손‘을 찾아보니 다시 ’ 오른쪽‘에 붙어 있는 손으로 나와 결국 ’ 오른쪽‘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오른쪽의 정의는 왼쪽의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왼쪽의 정의는 다시 오른쪽의 반대라고 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동어반복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게 국어사전의 한계다. 『행복한 사전』에서도 오른쪽은 아주 흔한 말이지만 아주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로 등장한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평범한 단어도 그 의미를 정의해보라고 하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곤란함과 어려움이 있다. 영화 『행복한 사전』의 원작은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다. ‘말’은 정말 그 자체가 엄청난 망망대해다. 감정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의 다양성과 생각을 표현하는 단어의 세계를 생각하면 말은 말 달려도 만날 수 없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다. 영화 『행복한 사전』에서 누군가에게 닿기를 희망하며 내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낼 단어 하나를 찾는 사람들. 이런 이들에게 사전은 ‘진심을 싣는 배’라는 멋들어진 비유다. 말의 바다에서 만난 첫 번째 난적의 단어, 오른쪽이라는 말이다. 새로운 종이사전 ‘대도해(大渡海)’ 전체 편집 총괄을 맡은 카토 고의 오른쪽에 대한 정의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10이라는 글자의 1 옆에 있는 0”이 오른쪽이라는 것이다. 영어로 오른쪽은 right? 왼쪽은 left, 그런데 오른쪽은 우파적 성향이고 왼쪽은 좌파적 성향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른쪽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right’는 ‘옳다’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오른쪽은 옳은 것이고 왼쪽은 옳지 못하거나 틀린 것일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악수를 하고 밥을 먹기 때문에 어느새 오른쪽은 누구나 인정하고 사회적 관습으로 통용되는 당연한 옳음의 가치체계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식채널 e 동영상에 ‘비공식 세계어 사전’이라고 있다.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에 대해 저마다의 다양한 언어로 포착, 표현하는 몇 가지 사례가 나온다. 저 문이 열리면 그가 올까? 이 마음을 필리핀에서는 한마디로 킬릭(타갈로그어): 로맨틱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배 속에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기분을 뜻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는 약 6천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과 감정은 도저히 설명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전 세계 언어들은 저마다의 특성을 반영하는 고유한 단어를 개발해왔다. 예를 들면 꼭 뒤돌아선 뒤에야 떠오르는 재치 있는 말은 이디시어로  트렙 베르테르, 부정적인 정서로 폭식해서 불어난 몸무게는 독일어로 쿠머슈페크, 숲 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은 독일어로 발트아인잠카이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일본어로 고모레비라고 한다. 이처럼 “인간을 둘러싼 세계는 말없이 무언가를 들려준다. 그에 대한 응답이 인간의 언어다”라고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밖에도 최근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덴마크의 휘게는‘편안함과 아늑함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을 지칭한다. 이처럼 어떤 어휘를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사람의 생각과 삶은 물론 한 국가의 문화까지도 바뀐다. 이점을 정확히 지적한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에드워드 사피어는 “어휘는 문화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현한다.”하지 않았던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함께 모여 얘기 나누고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스웨덴어 피카서로 나누는 따뜻한 포옹처럼 마음 깊이 느끼는 아늑함을 지칭하는 네덜란드어는 헤젤리흐사랑했지만 잃어버린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의미하는 포르투칼어 사우다드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을 그리스어로 메라키라고 한다. 단어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하며 저마다의 사연과 배경을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는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총합이다”라고 말했다.   

   


지식채널 동영상은 전세계 언어처럼 우리말도 비공식 세계어 사전에 기록된 사례를 소개한다. 다음 □안에 들어갈 적당한 우리말은 무엇일까.     

좋은 일이 있는 □다.

그가 내 마음을 □챘다.     

하지만 그보다 자주      

내 생각을 말해도 되나 □가 보인다.

선배가 자꾸 □준다.

조직 생활하는 사람이 영 □가 없다.     

□에 들어갈 한국의 개념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측정하는 능력. 대인관계에 있어 핵심적으로 중요한 눈치라는 단어다.     


동일한 언어라고 해도 어떤 의미로 이해하는지에 따라서 성격도 달라진다     


“언어는 삶 이상으로 고결할 수 없고, 삶 이하로 추악할 수도 없어요”(p.97). 이성복의 《불화하는 말들》에 나오는 말이다. 언어는 삶에서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의사소통을 한다.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거기서 소통이 단절될 수도 있다. 동일한 단어지만 사람마다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경우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이해받지 못한 말들의 작은 어휘집’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글에 보면 동일한 개념에 대해서도 저마다 선호도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를 들면 “프란츠에게 음악은 해방이지만 사비나에게는 야만적인 소음일 뿐이다. 프란츠에게 음악은, 도취를 위해 창안된 디오니소스적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다. 소설이나 그림을 통해서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도취되기 어렵지만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버르토크의 두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 비틀스의 노래를 들으면 취할 수 있다. 프란츠는 위대한 음악과 가벼운 음악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구별은 위선적이며 케케묵은 장난이었다. 그는 로큰롤과 모차르트를 똑같이 좋아했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해방을 뜻했다”(158쪽). 이에 비해 사비나에게 “음악은 그녀 뒤에 풀어놓은 개떼 같았다”(159쪽). 그녀에게 음악은 “문장의 부정이며 음악, 그것은 반언어다!“(160쪽). 어둠에 대해 두 사람의 이해는 상반된다. 프란츠에게 어둠은 관능의 시작이며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반면에 사비나에게 어둠은 보는 것과의 불화이자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이며, 보는 것의 거부를 의미한다. 두 사람에게 어둠이 다가오면 그 어둠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중년의 나이쯤 되면 특정한 단어가 사전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되면서 누군가에게는 ‘이해받지 못한 말들의 조그만 어휘집’이 탄생한다. 특정 개념에 대해서 주인공들이 특정 단어를 어떻게 달리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자체가 특정 개념에 대한 이해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를 통해 인간적 삶의 단면을 보여주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언어는 곧 한 사람의 삶을 보여주면서 “언어는 삶 이상으로 고결할 수 없고, 삶 이하로 추악할 수도 없다”는 이성복 시인의 주장이 일리 있는 진리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반적인 개념 정의와는 다르게 시대의 아픔을 반영하면서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단어와 관련된 애환을 담은 사전들도 있다. 《언어유희 사전》은 독설과 풍자, 유머와 위트, 속담과 명언을 동원해서 국어사전의 정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10대 눈높이로 교육 현실을 풍자하는 낱말풀이 사전인 《학교 대사전》에 따르면 ‘가치전도현상’이란 “개념을 익히려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개념을 익히는 현상(10쪽)”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을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면 그때부터 개념이 위험한 생각을 품기 시작한다. 한편 류랑도의 《회사 개념어 사전》은 동일한 개념이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회사 전문용어에 대한 저자의 체험적 시각을 담고 있는 사전이다.  《통상 관념 사전》이라는 책에 따르면 ‘바보’는 ‘보통사람보다 지능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바보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품고 있는 통상 관념, 즉 ‘통념’에 ‘통렬’한 시비를 건 새로운 개념 정의다. 바보를 지능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으로 재정의하는 순간 기존에 바보라고 생각했던 통념이 산산이 부서진다. 그리고 바보라는 개념은 나의 신념이 반영되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통념’은 주로 기존의 ‘개념’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일 때 생긴다. ‘개념’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 ‘통념’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때 ‘개념’은 재탄생하고 ‘통찰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통념’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상식은 ‘통념’으로 굳어진다. ‘통념’이 생기면 다르게 보기를 무의 시적으로 회피하고, 언제나 상식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통찰은 세상을 남과 다른 눈으로 바라볼 때 생긴다. 남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나의 신념을 추가해서 이전과 다른 정의를 내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위험한 개념이 위험한 생각을 담아낸다     


《악당의 명언》을 쓴 손호성 작가에 따르면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누군가의 아이디어는 망친다(194-195쪽)”고 하면서 “아이디어란 남의 것 대부분에 내 것 약간”(188-189쪽)이라고 정의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아이디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줄 때 나온다. 모든 창조가 참조해서 이루어지듯 모든 아이디어는 남의 것 대부분에 내 것 약간을 추가하면 된다는 발상이 아이디어에 대한 관점을 비틀고 있지 않은가.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 사전’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어용 사전》이 있다. 이 책을 쓴 박남일 작가에 따르면 “전문가는 자기 분야를 농락할 줄 아는 사람(136쪽)”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전문가에 대한 정의와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전문가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축적한 경험과 식견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용 사전》은 전문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비판적으로 관찰한 다음 내린 위험한 정의다. 예를 들면 “전산 전문가는 정보를 농락하고, 법률 전문가는 권리를 농락하고, 의료 전문가는 신체를 농락하고, 회계 전문가는 세금을 농락하고, 증권 전문가는 주식을 농락하고(136쪽)”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흔히 사람들은 공부는 기술이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악마의 백과사전》에 따르면 공부는 “부모님이 낳아준 대로 살기엔 자신에게 너무 허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반드시 도전하게 되는 처세술의 방법”(43쪽)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실 공부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안간힘이자 애쓰기다. 그런데 공부는 어느 순간부터 시험성적을 잘 받기 위한 괴로운 정신노동이나 출세를 위한 처세술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불온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생각을 잉태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불법 사전》이 있다. 이 사전에 따르면 ‘열정’을 ‘정열’의 동의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처음엔 ‘정열’이라는 단어였는데, 뒤에 위치한 열이 뜨거운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과속을 하며 정을 추월해 앞으로 달려 가버린 상태. 그러나 교통경찰도 단속 대신 박수를 쳐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뜨겁고 아름다운 단어”(166쪽). ‘열정’을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 사전적 정의보다 한결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처럼 일상적으로 쓰는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는 순간,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이전과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자기만의 신념이 반영된 개념으로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두 가지 단어를 생각날 때마다 간헐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사용하는 많은 단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해서 색다른 개념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의 저자인 코리 스탬퍼는 사전 편찬자가 되기 위한 공식적인 요건은 두 가지뿐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공인 4년제 칼리지나 대학 학위와 영어 원어민 화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사전 편찬자에게 요구되는 비공식적 요건이지만 공식적 요건보다 더 중요한 첫 번째 요건은 결코 가질 수 없고 오로지 사로잡힐 수만 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다. 두 번째 사전 편찬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거의 완벽한 침묵 속에서 전적으로 혼자서 일하는 기질이다. 세 번째는 거의 기벽 요건이다. 폭풍 속에 던져진 수플레처럼 우주가 푹 꺼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같은 책을 놓고 같은 임무를 계속하는 능력이다. 우리 모두는 비공식적인 사전 편찬자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체험적 깨달음과 주관적 신념을 담아 새롭게 정의하는 노력이 남다른 언어감각을 키워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기존 개념에 신념을 부과하면 새로운 개념이 탄생한다.     


자기만의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적 깨달음의 결과를 외롭게 정의하는 고독한 과정이다.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 속애서 새로운 개념이 탄생되는 과정이 바로 위험한 생각이 잉태되는 과정이다. 위험한 생각이 잉태된 사전에는 철학자들이 창조한 개념을 집대성한 사전이 있다 예를 들면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과 이정우의 《개념 뿌리들 1과 2》은 모호하고 복잡한 철학적 개념을 저자들의 풍부한 철학적 지식과 식견으로 해당 개념은 물론 다른 개념과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전이다. 개념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이지만 그 개념을 창조했던 사람의 문제의식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이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생각을 이전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창조할 때 철학사에서 빛나는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개념은 진공관에서 탄생한 관념의 산물이 아니다.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세상으로 나와 어느 사이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누군가가 인적자원개발(Human Resources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창조했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 개념을 사용하다가 누군가 의심을 품고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과연 개발해야 될 자원인가?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은 ‘천연’과 ‘인적’의 차이이지 동일한 ‘자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천연자원처럼 개발하고 활용해야 될 대상인가?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잠시라도 생각해보면 인간은 천연자원처럼 자원으로 취급할 수 없는 고유한 속성과 본질을 지니고 있다. ‘천연’과 ‘인간’의 차이가 ‘자원’으로 묶이면서 동일한 ‘자원’의 범주로 분류되는 순간 자원과 다른 인간의 고유한 속성과 본질은 묻힐 수밖에 없다.     



인재육성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HRD라는 개념은 Human Resources Development의 약자다. 인적자원개발 또는 인력자원개발로 번역한다. HRD는 인간을 자원으로 보고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해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 숨어 있다. HRD라는 개념 속에는 인간은 자원이라는 전제와 가정이 숨어 있다(참고: 유영만 외, 2009). 사람을 자원으로 간주하고 가정하는 HRD의 철학을 바꾸지 않고 이루어지는 각종 이론과 모형, 그리고 실천 논리는 모두 자원으로서의 인간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하겠다는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HRD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라고 하지만 철학과 가정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모색되는 모든 HRD는 시대적 조류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포장과 형식의 차이만을 드러낼 뿐이다. 한 때의 유행으로 급부상하는 새로운 트렌드도 알고 보면 사람은 여전히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거나 조직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자원에 지나지 않는다. HRD에 대한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하거나 이제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HRD에 대한 개념 변경이나 새로운 개념 창조가 필요하다. 필자는 기업교육이나 인재육성 분야를 공부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용어 중의 하나가 인적자원개발로 번역되는 HRD(Human Resources Development)다. HRD를 전공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HRD를 비롯하여 HRD와  관련된 개념을 어떻게 습득하고 재개념화(reconceptualization)하거나 창조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HRD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기존의 HRD와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과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HRD 개념을 습득하거나 재개념화 시켜 새로운 HRD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HRD 개념에 따라 HRD에 대한 행동과 실천, 그리고 HRD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개념은 권력집단의 신념이 반영되는 순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바뀐다.     


‘HRD’에서 ‘H’는 변함없이 ‘Human’이다. HRD에서 생각하는 인간관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HRD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간 사람을 향하는 HRD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접근방법이 연구되고 실천되어 왔지만 여전히 HRD는 사람중심인 것처럼 행세해온 감이 없지 않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인재 철학을 내세우면서도 기업이 어려우면 사람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경영목표 달성의 전략적 수단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수단은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한다. HRD에서 ‘R’을 ‘Resources’로 해석하는 한 인간은 여전히 인적 자원으로 개념화된다. 천연자원과 구분되는 인적 자원을 생각하는 한 인간은 고유의 존재가치와 목적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항상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오용된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의 수준이 나의 HRD에 대한 인식 수준이자 실천 능력의 한계를 규정한다. 개념은 그 사람의 생각과 실천을 대변하는 상징이다. 내가 사용하는 개념이 바로 나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개념은 인격’이라고 했다. 나의 인격은 내가 사용하는 개념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개념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 늘 사용하던 개념만 반복해서 사용하면 사용하는 개념에 담긴 철학과 문제의식, 문제에 대한 해결 대안을 모색하는 접근 논리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세계가 내가 창조할 수 있는 세계를 규제한다(Words create Worlds)고 하지 않는가. 인적자원개발을 의미했던 HRD를 Human Relationship Development로 재개념화 시켜보자. HRD에서 R의 의미가 Resources에서 Relationship으로 바뀌었다. 인간을 자원으로 개념화시켰던 전통적인 HRD는 인간을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의 약자로 이해하는 새로운 HRD로 재탄생하게 된다. 인적자원개발을 의미했던 HRD는 인간관계개발(Human Relationship Development)로 새롭게 재개념화 된다.    

  


독립적인 인간을 자원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발해서 활용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었던 전통적인 HRD는 관계중심의 인간관계개발(Human Relationship Development)로 재개념화된다. 독립적인 인간의 능력을 개발하고 활용하며 관리하는 효율과 성과중심의 HRD에서 인간관계를 개선함으로써 관계 속의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접근방법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개념이 바뀌면 개념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이를 실천하는 방식도 바뀐다. HRD의 업의 본질은 인간관계 형성 업이다. 마틴 부버도 말하지 않았던가.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고. 관계가 존재보다 앞선다. 인간관계를 줄이면 인간이 된다. 인간도 인간관계의 사회역사적 결과다. HRD에 관한 업의 본질이 바뀌어야 그 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바뀐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개념도 누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기존 개념에 자신의 주관적인 신념을 반영하는지에 따라 기존 개념이 새롭게 재탄생된다. 개념을 창조하는 것도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그보다 더 손쉬운 방법은 기존 개념은 나의 문제의식에 따라 재개념화시키는 과정에서 나의 신념을 반영하는 것이다. 누구의 신념이 반영되는지에 따라 기존 개념은 전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보면 멀쩡하던 사람이 혈압 수치 규정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고혈압 환자로 재정의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고혈압 기준을 130/80(수축기/이완기)mmHG로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정상 혈압은 120/80(수축기/이완기)mmHg으로 잡고 있다. 똑같은 사람이 미국에서는 정상 혈압으로 정의되지만 한국에서는 고혈압 환자로 정의되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한 사람이 정상일 수도 있고 비정상 또는 환자로 판명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한 가지 단어에는 특정한 권력집단의 신념이 작용해서 다른 단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각광을 받거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나만의 신념 사전을 만들자      


신념 사전은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를 나의 주관적인 신념으로 다르게 정의하는 사저이다. 단어는 그 사람의 삶을 드러낸다. 무의식 중에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에는 그 사람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 담긴 개념이다. 꼬리를 물고 정의한 국어사전의 개념 정의, 예를 들면 사랑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면 마음은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마음’을 사전에 찾아보면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라고 정의한다. 마음을 이해하려면 감정, 의지, 생각 작용, 태도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문제는 그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또다시 모르는 단어로 꼬리를 물고 정의한다. 국어사전(辭典)은 그래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죽은 사전(死典)이다. 이런 개념사전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신념 사전은 기존 개념을 나의 신념을 반영하여 제 개념화시키는 사전이다. 하루에 세 개의 단어를 선정, 나의 신념을 반영해서 새로운 개념으로 재탄생시켜보자. 예를 들면 용기를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고 정의해봐야 기운이나 기개라는 개념을 모르면 용기라는 개념은 국어사전을 통해서 영원히 알 수 없다. ‘용기’를 나의 신념을 반영해서 다시 정의해보면 “내가 살아가는 삶을 어제와 다르게 바꿔 나가는 작은 발걸음”이라고 정의한다. 신념 사전은 통념에 갇힌 나의 생각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을 나의 신념을 반영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하는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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