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중 4명은 떨어졌던 그 시절 학력고사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 과거 유행템을 통해 그 시절 문화를 소환합니다. 옛 세대가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지금 세대를 이해하듯, 요즘 세대도 '그 시절'을 알아야 비로소 세대 간 소통이 완성되지 않을까요. [역주행] 시리즈가 그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국이 '수능'으로 들썩이는 시기입니다.
1994학년도부터 시작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은 이제 30년을 훌쩍 넘긴 역사를 가졌어요. 하지만 그 이전 세대에게 대학 입시란 '학력고사'와 '본고사'라는 두 개의 거대한 산을 넘는 일이었죠.
사실상 '지식 암기력'의 승부처였다고 평가받는, 그 치열했던 경쟁 현장 속으로 역주행해 봅니다.
#대학입학 학력고사
수능 이전의 대표적인 대학 시험은 '학력고사'였습니다.
학력고사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지식과 암기 내용을 충실히 평가하는 방식이었으며, 문항은 주로 4지선다형 객관식이었죠.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시행됐는데, 보통 12월과 이듬해 1월의 추운 겨울에 치러졌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학 정원이 턱없이 부족해서 전기대 기준으로 5명 중 4명이 떨어지는 극심한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어요.
#그 시절의 시험장 앞 풍경
입시 당일, 시험장 교문 앞에는 간절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로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어머니들 모습인데요. '철썩' 달라붙으라는 의미에서 엿가락과 떡 등을 대학 교문에 붙이던 모습은 그 시절 입시의 상징적인 풍경이었죠. 수험생이 고사장에 들어가고 나면, 밖에서는 온 가족이 교문 근처에서 기도하며 자녀가 무사히 시험을 마치기를 기다렸습니다.
#대학별 '본고사'
학력고사가 국가에서 치르는 '기본 시험'이었다면, 대학이 자체 출제하는 '본고사(本考査)' 성적도 중요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 대한 주관식/논술형 심층 시험 형태였는데, 대학별로 출제 경향과 난이도가 크게 달라서 수험생들은 별도의 심화 학습을 해야 했어요.
#합격자 발표 풍경
당시는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성적표를 받고 합격자 조회가 가능한 시대가 아니었어요. 합격 여부를 대학 건물 외벽이나 교내 게시판에 붙여놓은 대자보(큰 종이 벽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죠.
수많은 수험생들이 대학 정문에 몰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다가, 명단이 붙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던 모습은 그 시절의 뜨거웠던 열기를 상징합니다.
#절박함이 낳은 어두운 단면: '대리시험'과 '부정입학'
'한 방'의 점수가 인생을 결정했던 그 시절 입시의 치열함은 때로 어두운 단면을 낳기도 했습니다. 합격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개인의 절박함이 결합하며 부정행위의 유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죠.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 대학생 금명(아이유 역)이 부잣집 딸의 대리시험 요청을 받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대리시험'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해요. 대학생이 돈을 받고 수험생 대신 학력고사를 치르거나, 심지어 현직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거액을 받고 제자에게 대리시험을 치르게 해 부정합격을 주선한 충격적인 사건까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신분증과 수험표 사진 확인 절차가 지금처럼 정교하지 않았던 허점을 노린 범죄였죠.
#입시 총점에 반영되었던 '체력장'
현재의 수능 이전 세대 입시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필수 관문이 있었으니, 바로 '체력장(대입 체력검사)'입니다. 1971년부터 1993년까지 대입 전형에 체력장 점수가 반영되었어요.
윗몸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100m 달리기, 오래달리기 등을 측정했는데, 입시 총점에 체력 점수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공부뿐 아니라 체력 단련에도 힘써야 했습니다.
◈ 디지털 인사이트
학력고사 시대, 그 시절 대학 시험은 "계층 이동"을 위한 '전쟁'이었어요. "단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된다." 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정행위의 유혹을 만들어 내기도 했던 절박한 시대였죠.
1994년 수능 도입으로 수험생들은 하나의 시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전형 요소를 통해 자신의 강점을 어필할 더 많은 기회를 얻었어요. 물론 이 역시도 사교육 심화, 교육 격차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죠. 또 빈번한 입시 제도의 개편은 수험생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시험의 이름과 평가 방식은 바뀌었지만, 명문대 입학을 향한 한국 사회의 치열한 열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것 같아요. 이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대학 입시를 단순히 개인의 진로를 넘어, 사회적 성공과 계층 상승의 핵심통로로 인식한다는 얘기일텐데요.
다가오는 수능일을 맞아 그 시절의 입시 풍경을 한번 떠올려 보고, 우리 교육이 그리고 대학 입시가 교육의 본질을 지키면서, 어떻게 배움을 평가하고 인재를 등용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디지털에듀신문 (http://www.kedu.news/)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