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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끈 경계를 부수고

유주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서른의 겨울이 왔다. 호기롭게 농대에 진학하여 무난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운 좋게도 취업을 하여 적당히 잘 살아왔다. 20대를 ‘일개’ 직원으로서 존재하며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두고 살았지만, 밥줄을 놓으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지는 고민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이를 먹어 가도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아 나는 결국 스웨덴으로 떠났다.


   60명 남짓의 우리는 20여 개의 나라로부터 떠나왔다. 단일 민족 대한민국인으로 살아온 내게,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 어떤 이론보다 더 흥미로웠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배경을 등지고 만난 우리는, 지속가능성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이슈에 대해 연구하는 우리 과에서는 모두가 비건이어야 함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비건에 맞춰져 있었다.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과 같은 일이었다. 과거의 습성과 각자의 의지와 성격에 의해 이미 비건인 친구와 비건을 지향하는 친구, 두 가지로만 분류될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비건이 되는 그 과정 속에 함께였기에, 항상 서로의 음식 선호 성향을 살폈다.


   스웨덴에서 나는 국적 측면에서 소수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첫 번째 한국인이었고, 때로는 그들의 삶의 마지막 한국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음식에 진심인 내게 스웨덴에서 소수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한국 음식을 국가대표처럼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부여해주었다. 정성을 다해 한국음식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맛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그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라고 생각했고, 꽤 즐거운 취미였다.


   어느 날이었다. 한 친구가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날의 메뉴는 수제비. 수제비는 한국의 특별한 소스 없이도 밀가루라는 만국 공통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재료로 한국의 맛을 표현할 수 있는 제법 좋은 요리였다.


   ‘오늘은 수제비를 해줘야겠다! 먼저 밀가루에 적당량의 물과 계란, 소금, 식용유를 넣어 잘 치대야지. 물은 생각보다는 좀 덜 넣는 것이 좋다. 완벽하게 치대지 않아도 괜찮다.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몇 시간 두면 촉촉하면서 쫄깃한 느낌의 반죽이 완성된다. 한국에서 가져온 마른 멸치를 넣어 국물을 우린 후에 감자를 먼저 넣고, 감자가 포슬포슬하게 익어갈 즈음 수제비를 떼야지. 그리고 양파는 넣을까 말까? 마지막 순간에 파와 호박은 꼭 넣어야지. 계란을 풀어 넣으면 떡국 같은 느낌이 날까, 국물이 괜히 지저분해질까? 혹시 간이 부족하면 소금을 넣을까, 간장을 조금 넣을까?’ 머릿속으로 요리 과정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 친구도 역시나 나처럼 비건을 지향하며 소와 돼지, 닭과 같은 고기, 참치, 연어와 같은 큰 물고기만 안 먹는 수준이었다. 아직 계란이나 작은 물고기 정도는 괜찮았었다. 그 얼마 전에도 우리는 마른 멸치를 우린 국물에 무언가와 같이 먹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자연스레 친구에게 연락하여 물어보았다. “오늘은 국물이 있는 한국식 파스타를 해볼 생각이야! 멸치육수를 만들어볼까 하는데 괜찮아?” 내가 안일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너무 기대되는걸! No problem!!’을 기대했는데… ‘역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는 않지.’


   친구는 갑작스레 엄격해진 비건 지향의 삶을 계획을 밝혔다. “내가 이번 주부터는 완전한 비건이 되기로 해서 계란도 물고기도 먹지 않을 거야. 나와 상관없이 네가 하려던 요리를 해도 괜찮아! 다만 나는 먹지 못할 것 같아.” ‘두둥!’ 이럴 수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널 위해 한식을 전파하려는 나의 소박한 기쁨은 어쩌고… ‘안 먹을 거라니, 안 먹을 거라니, 안 먹을 거라니… 네가 안 먹는 것이 나는 괜찮지 않아…’


   거세게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차분하게 레시피를 변경했다. ‘우선, 반죽에 계란을 넣지 말아야겠다. 반죽이 잘 안 치대지면 어쩌지? 멸치 대신 다시마를 써보자, 다시마로 깊은 맛이 안 나면 어떡하지? 아!! 들깨를 때려 넣자!’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스웨덴에서 자취를 하며 반죽 실력이 일취월장했던 나의 수제비는 계란 없이도 쫄깃하게 빚어졌고 들깻가루로 풍성해진 국물이 든든히 제 역할을 해냈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한 후, 이내 나는 궁금해졌다. ‘우리가 만나지 않은 고작 며칠 사이에 이 친구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큰 계기가 있었을까? 갑자기 물고기까지도 안 먹는다니 무슨 일일까?’ 친구의 대답은 의외로 별거 없었다. “그냥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도 별일 아닐 것 같아.” 별거 아니었다. 적어도 스웨덴에서 비건으로 사는 삶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비건 지향이었던’ 이 친구는 그날 이후로 정말 ‘비건’이 되었다. 친구는 음식물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한, 비건의 삶을 지켜나가며 지구에 부담이 되지 않는 생활을 여전히 잘 실천하고 있다.


   세상에는 많은 경계가 있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적 경계는 사회적으로 약속되어 있다. 20대와 30대, 2022년과 2023년, 가을과 겨울, 이번 주와 다음 주, 오늘과 내일. 오늘 열두 시까지는 오늘의 나, 열두 시 땡 하고 휴대폰의 날짜가 바뀐 그때부터는 내일의 나. 내일이 오지 않은 나의 지금을 내일이라 부를 수 없지만 비건으로의 나는 오롯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나는 이 친구를 통해 깨달았다. 몇 번이고 실패해보았지만 그래도 또 다짐해본다.


   단지 ‘비건 지향’인 나와 ‘정말 비건’인 나, 우지끈 그 경계를 부수고 다시금 한 발짝 나아가 본다.


   ‘그래, 지금부터 다시 비건이 되어 보자.’


-


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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