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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은 이야기

완두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나에게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말하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전쟁 때 북한에서 홀로 피난 나온 13살 나이의 어린아이였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 늘 외롭고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나는 사람이었다. 원래도 약간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최근 몇 년은 부쩍 더 심해진 치매 증상으로 인해 남의 반응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너무나 절실한 말들을 언제 어디서라도 쏟아내셨다. 그의 쌀쌀맞은 자식들은 이미 수도 없이 들었을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줄 만한 다정함과 인내심이 없었다. 그들은 무시하듯 잠자코 있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지면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버럭 성을 내기 일쑤였다. 할아버지는 “아무도 이 이야기를 몰라.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비건이 된 후에 나의 속마음은 우리 할아버지랑 약간 닮아 있었다. 동물권과 기후 위기 이면에는 매일 매 순간 죽어가는 동물들의 감각이 때때로 내 피부가 칼에 베이듯이 아프게 느껴졌고, 길었던 지난 장마에는 그 물이 내 턱밑까지 다가온 것처럼 다급하고 숨이 막혔다. 걷는 걸음마다 거리에 보이는 만연한 폭력과 죽음들은 달라진 나의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았다. 절실하고 답답하고 무서워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나는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모르고,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지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면 어떻게 될지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한다면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하고 싶었고,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혼자서만 하는 사람이 되기가 싫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그냥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손녀인 나에게 남한에 사는 우리는 천국에 살고 있는 거라고 자주 말했다. 배고파서 굶어 죽지 않아도 되고, 억울하게 죽거나 살해당할 일 없고, 북한 사람들은 우리 집 강아지 ‘후추’만도 못하게 산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혀 천국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억울하게 죽거나 살해당하는 생명들이 너무나 가까이 있었고, 가해자들 또한 너무 가깝고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내가 속한 세계의 지옥에 있었고, 다른 이들도 저마다의 지옥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은 모두 정신과에 다녔고, 나 역시도 지난 몇 년간 몸이 많이 아팠었다. 드문드문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우리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말할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식사를 하러 간 어느 식당의 손님이나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았기에 손녀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슬픔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이라 짐작하고, 아무도 듣지 않아도 계속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좋았던 일을 더 기억하고 말씀하셨으면 했다. 나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듣기가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지겨워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언젠가 할아버지한테 처음으로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아빠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듣기가 싫고, 계속 힘들었던 이야기만 하면 듣는 나도 힘들다고 짜증을 섞어 말했던 거 같다. 내가 그러든 말든 할아버지는 계속 말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날 할아버지는 가만히 있다가 “너도 내 이야기가 듣기가 싫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상대의 반응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치매노인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게 싫어서 나는 내가 느끼는 힘듦보다 즐겁고 재밌고 잘 먹고 잘 사는, 행복한 모습만을 SNS에 편집해서 올렸다. “비건인 너는 뭘 먹고 사냐?”라는 지겨운 말에 일부러 밝은 모습으로 성실히 대답해도 약간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그냥 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나는 그냥 고기 안 먹고 맛있는 밥 잘 먹고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할아버지처럼 미움받기가 싫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비건에 대한 유별나고 유난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에 기여를 할까 사실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제는 그러든 말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 즐겁게 지내는 것만 올려도 안 좋게 보거나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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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


환경 공부를 하다가 비거니즘을 알게 되고 실천한 지 5년 정도 된 완두입니다.

도자기를 만들고 수업을 하며 살고 있고, 뭔가를 만들고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결혼을 했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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