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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건 하세요?

스윙블루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왜 비건 하세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리 인간들은 어느 순간에는 모두 한곳에 모여 식사든 간식이든 무언가를 함께 나누어 먹는데, 이번에도 변함없이 그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음...”


   하지만 나는 왜 비건을 하냐는 상대방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이미 머릿속에는 환경, 동물권 등 몇 가지 용어와 수식들이 떠오르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만다.


   “사랑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자 상대방은 잘 모르겠다는 듯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추측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최근에 만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동균 님 아내에 대한… 사랑요? 아내분 따라 비건을 하시나 보네요.”


   “아니요. 동물들 때문에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동물을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내가 했던 말들은 솔직히 말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뒤에 부연 설명들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구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 건강에 대한 이야기, 관련 다큐에 관한 이야기, 그 외에도 닭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또, 몇 가지 즉흥적인 질문들과 대답들. 비건이 아닌 사람들과의 대화는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장면이 계속 반복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하지만, 나는 왜 이토록 괴로운 감정이 드는 것일까.


   나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았다. 평소 우리가 치킨, 치느님이라고 부르는 조각난 살점들 너머에는 닭이라는 고유한 생명이 있다고, 7살 아이의 인지능력을 지닌 이 놀라운 존재는 당신에게 답례로 인사를 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상호 간 예의와 서열을 지키고, 병아리로 태어난 직후에도 수량을 구분할 수 있는 연산 개념이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닭대가리’라고 부르는 닭은 사실은 매우 영리하고 뚜렷한 의식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삼겹살과 한우, 가죽 재킷, 가방, 구두 등 모두 마찬가지다. 미소가 사랑스러운 아기 돼지. 이제 막 태어난 이 작고 어여쁜 생명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인간의 손에 붙들려 마취 없이 거세를 당한다. 아기 돼지는 이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입을 쫙 벌린 채 온몸을 비틀며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른다. 이는 인간이 돼지고기를 냄새 없이 먹기 위함이다. 그러나, 돼지가 받게 될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 채로 이빨이 뽑히고, 꼬리가 잘리고, 강제로 임신을 시키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 계속 끊임없이 주사를 찔러 넣다 보니 바늘이 들어간 자리에는 멍울(고름)이 생긴다. “돼지처럼 뚱뚱하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고기를 더 짜내기 위해 인간인 우리가 그들을 억지로 살 찌우는 것을 알고 있는가. 돼지는 그로 인해 평생 동안 관절염이라는 장애에 시달리고 고통으로 일어날 수가 없으니 좁은 우리에 갇혀 의지를 잃은 채 누워만 있는다. 돼지들은 좋아하는 진흙 대신 오물을 뒤집어쓰고, 눈병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고, 도축을 위해 12시간 이상을 굶고 물조차 마시지 못한 채, 운송 도중 태양빛으로 달궈진 뜨거운 트럭 안에서 살이 구워질 정도로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그렇게 도착한 도살장. 그곳은 이미 앞서 잘려나간 동족의 피가 흘러넘쳐 온통 땅을 적시고 있고, 돼지는 붉은 피의 냄새를 맡고 공포를 느껴 뒷걸음질 친다. 하지만, 이내 날아온 날 선 방망이질. 돼지는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을 피해 어쩔 수 없이 도살장 안으로 도망치지만 끝내 예정된 죽음을 피하진 못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실을 말하는 순간, 나는 아마도 참아왔던 울분과 함께 인간 사회가 자행하고 있는 은폐된 폭력과 잔혹성을 토해낼 것이다. 어쩌면, 현재 내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릴 만큼 말이다. 하지만 이는 곧 스스로를 향한 죄책감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거의 30년 동안이나 육식을 해왔고, 동물 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화장품 등 수많은 동물성 제품들을 써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목숨을 빼앗고 고통을 가하는데 일조했던 것일까? 눈을 감으면 처참하게 고통받다 죽어간 동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중에서 ‘소’라는 유난히 눈이 크고 순한 동물. 하지만 나는 여태껏 빵을 먹고, 크림을 좋아했고, 우유를 즐겨 마시던 소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장에서 누군가는 그 수요를 담당하는 공급자이자 대형마트와 같은 판매처가 된다. 그들은 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임신을 시키고, 젖을 짜내는 소가 마침내 지쳐 병들어 쓰러질 때까지 평생 그 짓을 반복한다. 그러고는 끝내 우유 하나 짜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 소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 한우로 만들어 시장에 판매한다.


   이후 소는 몸의 방향을 돌릴 수도 없는 좁은 철장 속에 갇히고, 그렇게 자연과 분리되어 사육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본래 주어진 수명을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병에 든다. 쇠약하고 지친 소가 이제는 더 이상 우유를 짜내지 못하게 되자, 젖소로써 가치가 없어진 그들은 도살되고 한우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판매된다.


   ‘과연, 사람들이 진실을 원할까?’ 내가 비건이라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만 이야기한다면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고, 논비건은 비건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동물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을 비건이 아닌 친구들에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만약, 인간이 대화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서로에게 닿기 위함에 있다면, 나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에게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우리는 서로 먹는 것이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삼겹살 굽는 냄새가 자욱한 번화가의 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며, 입는 옷도, 사용하는 향수나 샴푸, 치약도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과 연결되고 싶다. 하지만, 그들에게 ‘먹는 것보다 교감하고 사랑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어.’라고 말하지 못한 진짜 내 속마음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홀로 기분 좋은, 꿈같은 상상을 해보곤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1) 봄 그리고 여름


   “너와 나는 형제자매로 태어나, 봄에는 푸른 초원이 부드럽게 펼쳐진 땅에서 양을 어루만지며 함께 뛰어놀지. 때때로 주위에 피어있는 꽃들 중 가장 예쁜 한 송이를 꺾어 양의 귀에 걸어주고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까르르 웃기도 해. 그해 여름, 그땐 우리가 태초에 기원했던 곳인 바다로 가. 그러고는 오리발과 안경만을 들고서 바다의 깊은 신비를 향해 맨몸으로 헤엄쳐 내려가는 거야. 바다는 너무나 맑고 청롱하지. 저 높은 하늘 위의 태양이 깊은 바다를 가로질러 해저 끝까지 빛을 비출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마치 엄마의 품속에 안긴 아기가 되어버린 것처럼 한껏 편안해져.”


   2) 가을 그리고 겨울


   “어느새 가을이 왔어. 다행인 건 가을도 그리 춥지는 않다는 거야. 우리는 여전히 바다를 헤엄치고 있고, 작은 물살이들과 가재, 가오리, 돌고래 등 정말 다양하고 멋진 해양생물들과 친구가 될 거야. 어쩌면 매일 마주하는 그 예쁜 돌고래에게 네가 직접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겠지. 드디어 겨울이 왔어. 겨울엔 두꺼운 슈트를 입고 서핑을 해. 여기는 4계절 내내 좋은 파도가 들어오고, 겨울은 그중에서도 가장 파도가 아름다운 계절이기 때문이지. 파도 위에 서서 올려다본 세상의 풍경. 주위의 섬들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꽁꽁 얼어있는 빙하들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하지만, 쓸쓸해 보이지는 않아. 서핑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우리는 이미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거든.”


   3) 따뜻한 집 그리고 밤


   “모닥불이 있는 집. 가족들은 불을 피우고 모두 그 앞으로 모여 앉아 다 같이 따뜻한 양송이 수프를 한 숟갈씩 떠먹고 있어. 그러자 추위는 금세 사라지고, 긴장이 풀린 우리에게 금방 졸음이 쏟아지지. 노곤함에 어느새 담요를 두르고 소파에 머리까지 기댔지만, 아직 잠들기는 일러. 가족들은 서로 기분 좋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고, 어디선가 어린 막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아닐까? 그러다가 마침내 해가 지기 시작하고 모닥불도 잠잠해질 만큼 세상이 어두워지면, 우리는 이제 잠에 들어야지. 마치 멈춰버린 것처럼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흐르고 있고, 끝내 평화가 찾아오는 늦은 밤. 우리는 거실에 놓인 보드라운 카펫 위에서 잠들어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그들을 베개 삼아 잠들어있는 돼지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 그리고 나는 아직도 깨어있는 너의 손에 깍지를 끼고서,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사랑을 느끼지. 이처럼 꺼지지 않는 따스한 온기. 난 오늘도 나의 아름다운 삶과 경이로운 지구를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려. 무엇보다 네가 내 곁에 있어줘서 행복해. 내일도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잘 자, 그럼 또 내일 아침에 만나. 안녕!”


   2022년 어느 날 동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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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블루


서핑과 포뇨를 사랑하는 비건 지향인입니다.

더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바다라는 자연을 강렬하게 체험하고 있어요.

현재는 짝꿍 양지 그리고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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