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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비건의 회사생활

가희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매주 월요일 점심에는 회사에서 ‘그린 먼데이’ 캠페인으로 고기 없는 저탄소 식단이 나온다. 2009년 폴 매카트니가 제안한 캠페인인 공장식 축산업 동물들의 고통과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하자는 캠페인의 이름을 따왔다. 완전한 비건식이 아닌 음식 위에 닭알이 올라가거나 계란말이 같은 반찬이 나오는 식단이어도 나는 기쁘게 식판을 내민다. “계란은 빼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회사의 ESG 부서에서 형식적이긴 해도 이런 제도나 캠페인을 만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채식 요리가 사람들의 입맛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탕비실에 가서 씻어 놓은 텀블러를 자리에 가지고 온다. 구내식당에서 먹든 밖에서 식사하든지 간에 항상 후식으로 커피나 음료를 카페에서 사 먹기 때문이다. 가끔 잘 모르는 부서원과 식사하러 같이 나가게 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텀블러는 환경 때문에 들고 나가시는 거예요?” 그렇게 물어보면 흔쾌히 대답한다. “네, 쓰레기 만들기 싫어서요.” 텀블러 쓰기는 워낙 오래된 캠페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자리 잡고 있어 생소하지 않지만, 정작 우리 부서 사람 57명 중에 밖으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면서 음료를 사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만큼 낯선 행위이기 때문에 간혹 회사 사람들이 나를 향해 ‘대단하다’, ‘멋지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왜 그렇게 말하세요? 텀블러 쓰면 좋아요.’라는 말로 응수한다. 이 대화에 자주 이어지는 말 중의 하나는 컵 씻기가 귀찮다는 말이다. 컵 씻기가 싫기 때문에 매일 일회용 컵을 소비한다는 말을 듣는다. 주로 종이컵이 사용되는 계절은 그나마 괜찮은데 기온이 올라가 더워지면 눈앞이 괴로울 정도로 몇백 년을 함께할 플라스틱 컵이 사무실 곳곳에 쌓여가는 걸 본다. 고기 없는 월요일 - 저탄소 식단 캠페인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 채식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과도한 쓰레기로 인해 우리가 처한 현실과 변해야 하는 이유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종종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저런 불편함을 떠나 가장 곤란할 때는 바로 회식 자리다. 내가 보기에 거의 매 끼니 육식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지만 언제나 저녁 회식 장소는 삼겹살집이나 곱창집으로 정한다. 하루는 곱창집에서 하는 회식 자리에 가 열심히 부추, 감자, 양파를 먹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 넉넉함에도 많이 먹는 게 미덕인 문화에서 회사 사람들은 인원수보다 훨씬 많이 음식을 시켰다. 4명이 앉은 자리에서 처음에 4인분 시켰다가 다시 한번 4인분을 시켰고 추가로 2인분을 더 시켰다. 구워진 야채만 먹고 있었던 나는 너무 많이 남겨진 소의 창자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남기면 안 되잖아요. 다 쓰레기 되는데."


   버려질 소의 창자가 쓰레기가 되어 또 환경에 영향을 끼칠 것을 생각하니 차라리 내가 먹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 환경부가 발표한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의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은 1만 5,903톤으로 우리나라는 1일 생활폐기물 발생량 총 5만 3,490톤 중 음식물(연간 약 5,725,080톤)이 전체 발생량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동물 권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환경을 지키고 싶은 두 마음이 교차하는 날(늘 언제나 그렇지만)이었다. 아예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회사생활에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행동을 하기보다 함께 부대끼며 지내면서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말을 던지고자 했었다.


   이렇게 써보니 어쩌면 내가 프로불편러 캐릭터인 것 같지만, 사실 회사생활에서 잘 지내는 편이다. 얘기하는 것보단 들어주는 편인 데다 업무 분야도 사용자 경험과 디자인 전략을 제시하는 전문성을 가진 특정한 위치에 놓여있다. 어찌 보면 다른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위계적이고 전체/집단의식 가득한 보수적인 회사에서 남들과 다른 목소리로 균열 내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회사에서 앞사람과도 옆 사람과도 비거니즘에 관해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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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


쓰고 그리는 사람,

알고 있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삶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장래희망은 무해한 웃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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