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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르지오(Matrigeo)

유영하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기후생태위기를 마주한 청소년의 시선

   지구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에겐 이제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아있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 도피하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터전인 지구를 아끼며 지켜내거나. 황폐해진 2089년, 인류는 화성 이주를 도모하고 있었다. 지구의 인구는 25억 명이었지만 100만 명만이 갈 수 있었고, 그렇기에 위 두 개의 선택지는 기득권층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들같이 가난한 자들은 화성으로 향할 수 없었다. 나는 100만 명 안에 들기 위해, 실적을 더 쌓아 이복동생 수희를 화성으로 데려가기 위해 아등바등 일을 해댔고, 결국 6년 만에 화성 개발 프로젝트의 팀장 자리까지 앉게 되었다. 그리고, 화성 출발 하루 전날, 우주선에 앉아있는 나에게 수희가 찾아왔다.


   “언니, 언니도 화성으로 곧 떠나? 언니는 화성 개발 프로젝트 팀장이잖아. 그럼 우리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어?”


   천진난만한 이젠 하나뿐인 가족이 된 이복동생 수희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수희, 초봄의 길가에 핀 민들레꽃같이 억세지만 여리고, 밝지만 금방 짓밟아질 15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너도 기득권층들의 배설물에 곧 휩쓸려 이 황폐한 지구에 남겠구나. 내가 곧 너를 화성으로 데려갈게.


   “우린 꿈에서 볼 수 있을 거야. 꿈은 욕망을 투영하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희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나도 언니를 따라 화성에 갈 수 있는 거야? 근데 나는 사실 이 지구가 더 좋아. 내 애완 햄스터 호랑이가 살 수 있는 이곳이 좋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곳이 좋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희야, 전에도 말했잖아. 네가 사랑하는 것들은 널 지켜줄 수 없다고. 그리고 화성은 수희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 갈 수 있는 곳이야. 많은 사람들에게 이바지해 너의 필요를 입증해야지. 하지만 언니가 대신 필요를 입증해서 수희 너를 화성으로 데려갈 거야.”


   수희는 얼굴을 잔뜩 부풀리며 나를 장난식으로 노려보았다. 수희는 갑자기 뒤를 돌아 내게 등을 지고는 속삭였다. 언니도 똑같이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야.


   “우리 학교 선생님이 그랬어. 지구를 이 꼴로 만들고 공장을 돌리고, 매연가스를 내뿜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켤 수 있던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릴 거라고. 자기들이 한 행동은 책임을 지지도 않고 다 우리한테 떠넘겨 버린다고 말이야. 그들은 자신들이 돈이 많다는 이유로, 혹은 우리보다 아는 게 많다는 이유로 동등한 인간인 우리에게 필요성을 운운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라고 말이야.”


   그 말을 내뱉을 때 수희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고, 목소리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언니, 그러니까 가지 마. 언니도 내 애완 햄스터 호랑이 사랑하잖아. 우리가 같이 데려온 아이잖아. 햄스터뿐만 아니라 언니는 길가에서 지나치는 민들레 하나도 사랑하잖아. 그런데 언니가 어떻게 지구를 버리고 갈 수 있겠어.”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살리는 거야. 전에도 말했잖아. 지금 지구는 힘드니까 오히려 인간이 떠나버리는 게 훨씬 이로울 거라고.”

   “아니. 버리는 거야. 언니 우리는 지구 시민이잖아. 이 행성에서 나고 자랐잖아. 언니는 감당하기 버거워서 도망치는 거야.”


   행성의 푸른빛이 오염으로 회색으로 변해갈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오염이 퍼졌을 때, 엄마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신종 바이러스에 노출된 아프리카 사람들을 살리려다 전염병에 옮아 죽었다. 그때, 수희의 나이는 고작 5살이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터전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수희를 키워가며 팀장의 자리까지 아등바등 올라갔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던 행동이 지구를 두고 도피했던 것일까. 엄마의 죽음을 두고 도피하는 것이었을까.


   그때, 갑자기 이 부장이 우주선에 들이닥쳤다.


   “어, 네가 수희구나. 김 팀장, 아주 잘된 일이야. 자네 이복동생 수희 같이 가는 거 위쪽에서 허가됐어.”


   김 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희는 김 팀장을 노려보며 외쳤다.


   “전 싫어요. 지구에 남을래요. 이 꼴이 된 우리 지구를 놔두고 어떻게 제가 화성으로 떠나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싫어요. 저희 언니도 저랑 같이 지구를 소중히 여기니까 안 갈 거예요.”


   이 부장은 수희의 말이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고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김 팀장, 진짜야?”


   나는 수희의 입을 틀어막고 답했다.


   “아뇨, 그럴 리가요. 수희도 당연히 가야죠. 저희 동생이 지금 사춘기라서... 부장님이 이해 좀 해주세요.”


   수희는 틀어막은 내 왼손을 깨물고 나와 말했다.


   “아니요, 언니랑 저는 둘 다 안 가요. 저는 사춘기도 아니고요. 지구에 있는 사랑하는 우리 애완 햄스터를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사랑하는 지구를 지키고 싶을 뿐이라고요. 언니는요, 제가 10살이 되던 해부터 어떻게 하면 지구를 사랑할 수 있을지 계속 얘기해왔다고요!”


   “너 정말 왜 그래!”


   이 부장은 우리 둘을 피곤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인상을 찌푸리며 나가버렸다.


   “언니, 언니는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직도 잊은 거야? 아프리카 사람들, 살리겠다고 떠났다가 죽었잖아!”

   “그래, 그러니까 우린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잖아! 그냥 편한 데로 가자. 우리 부모님처럼 위험에 처하지 말자고. 엄마도 우리가 무탈하게 살길 바랄 거야.”

   “아니, 난 못 가. 난 엄마의 의지를 따를 거야. 그 전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지구를 지키려는 노력이라도 해볼 거야.”

   “수희야, 일단 살고 보자. 화성에 가서 살아남아야 뭐든 하지...”

   “아냐, 언니는 뭐든 하려는 게 아니야. 애초에 언니가 언니 상황에서 뭐든 하려고 했으면, 지구 보호단체에 들어갔어야지. 언닌 처음부터 끝까지 언니가 살려고 연구소에 들어간 거겠지. 근데 언니 그거 알아? 나는 언니처럼 살지 못해. 그렇게 휙 떠나버리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는 기분일 거거든.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거라면, 나는 싫어.”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 수희의 그 말이 내 마음에 쿵 내려앉았다. 나는 엄마처럼 혹은 수희처럼 지구를, 우리의 터전을 위해, 혹은 약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본 적이 있던 걸까.


   뚜르르- 뚜르르- 갑자기 이 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 팀장, 자네 동생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데 정말 갈 거지?”


   나는 네, 라는 대답이 목구멍 앞에 걸려 튀어나오지 않았다. 앞에서는 수희가 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내가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한순간의 생존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확실한 건 그건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아니요. 안 가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이 부장의 황당한 물음이 오갔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수희를 데리고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우주선 밖에는 황폐해진 지구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희야, 서진아. 너희는 엄마가 사라지더라도 늘 이 지구를, 지구에 남아있을 사람들을, 약자들을 생각해 줘. 너희의 행성, 종, 사람들을 아껴주렴. 그것이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이란다.”


   귓가에선 엄마가 내게 죽기 직전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것들이 살아 숨 쉬는 이 지구를 난 사랑할 거야. 수희는 내 말에 화답하듯 만개하는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선 혜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

유영하


연극해서 밥 벌어 먹고사는 게 꿈인 스무 살 극작과 새내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사랑 아닐까요?

우리가 나의 행성을 사랑한다면,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서로를 사랑한다면

분명히 지구는, 우리의 세계는, 더욱 아름다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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