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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기

이서빈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기후생태위기를 마주한 청소년의 시선

   아침에 핸드폰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화장실로 향해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따뜻한 물로 세수를 마친다. 어제 빨래해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옷장에서 날씨에 맞는 옷을 골라 입는다. 기숙사에서 주는 밥을 먹고 노트북과 다양한 필기구가 있는 필통, 공책 따위를 챙겨 수업을 듣기 위해 방을 나선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밥을 먹고 가끔은 술도 마신다. 때로는 가족, 친구와 여행도 가고, 맛있는 밥도 사 먹는다.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며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지독히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이지만 나는 이러한 일상에서 옥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그저 방에 누워 숨만 쉬고 있어도 우울한 마음이 가득 차오르기도 한다. 없는 기능이 없는 핸드폰, 수도꼭지를 틀면 바로 나오는 깨끗하고 따뜻한 물, 늘 깔끔하고 새하얀 수건, 계절과 기분에 맞춰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옷, 자극적인 입맛에 맞춘 밥과 술, 싸구려 자재의 공장에서 찍어냈지만 요즘 유행에는 딱 맞는 다양한 물건. 나의 모든 일상은 평범하디 평범했지만, 내가 누리는 그 모든 것이 모두 누군가의 고통을 수반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니까, 이 모든 것은 살아가기 위해, 나의 생(生)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내 행동에 대해 변명을 해본다. 변명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말은 너무 달콤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스스로가 설득되기도 한다. 하지만 눈을 뜬 순간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모든 순간을 스스로에게 변명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밑도 끝도 없는 우울감과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최근에 우주와 그 역사에 대해 배웠다. 약 138억 년 전, 대폭발로 이 우주가 만들어져,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엄청난 우연이 중첩되며 지구가 탄생했다. 지구 내부에서도 다양하고 복잡한 움직임을 거쳐 현재가 되었다. 이 세상이 얼마나 광활하고, 내가 살아가는 지금은 얼마나 찰나의 순간일지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어쩌면 그보다도 작은, ‘그저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아 숨쉬고,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과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나는 그 순간을 ‘그저 있는’ 그런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구의 공기를 마시며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생생한 순간을 어떻게 무시하고, 남이라 하여 짓밟을 수 있을까.


   강의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과 숲에 나뭇잎 사이로 쏟아진 햇살의 따스함, 더운 날 잠깐 스쳐 가는 시원한 바람 등을 느끼고 있자면 온 자연을 가득 품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에 아주 작은 순간이라도 모든 지구상의 존재에게 떳떳하기 위해, 모두가 고통받지 않는 순간을 향해 움직이자. 나를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을 잘 돌보며, 하늘, 새싹, 바람, 바다와 함께하며, 어제와는 다른 내가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가기를. 나는 오늘도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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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빈


호기심 많고, 자연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금은 예민한 성격에 가끔은 회의적이지만,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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