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마일로 누나 왔다~”
양어깨를 짓누르던 8킬로 넘는 짐을 그냥 그대로 털썩 신발장 앞에 내려놓고, 평상시에는 잘 신지 않던 비싼 메이커 신발과 검은색 정장 마의를 벗어 던지며 그녀는 외친다. 반려인의 외침이 민망할 정도로 1~2초 정도 집에 정적이 흐른다. 그러면 그녀는 어느 반려견이 있는 다른 집과 다르게, 자신의 강아지가 늦게 나오는 게 익숙한 듯 다시 한번 외친다 “마일로 오~ 마일로~ 마이 이이로 오~” 노래 부르듯 서너 번을 더 부르면 푹 자고 있던 나이 든 강아지가 잠에서 깨서 기지개를 켜고 아주 느긋하게 총총거리며 걸어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3번째 부르는데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강아지가 있을 만한 곳을 눈으로 급하게 찾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얼굴이 일그러진다. 자신의 침대에 가서 이불이 개어지지 않은 침대에 털썩 엎드려 속삭인다. “마일로… 누나 왔다고….” 이 행동은 그녀가 3개월간 미루어왔던 폭탄에 불을 붙인 행동이었다. 폭탄이 터지기 전 실에 불을 붙이며 지지직 지지직 타는 소리와 같은 속삭임 끝에 집에 폭탄이 터져버렸다. 그녀의 얼굴은 다 일그러지고 콧물과 눈물이 터졌고 가슴은 헐떡댔고 어깨는 들썩였다. 아무도 없는 집이 쩌렁쩌렁 가득 폭탄 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와 8년간 함께 지냈던 강아지 마일로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이 되던 날이었다.
한참 울다가 그녀는 생각했다. ‘나 그동안 잘 지냈잖아. 마일로 떠난 거 이미 알고 있었잖아. 왜 안 하던 행동을 갑자기 한 거지?’ 마일로가 세상을 떠나기 7개월 전 그녀는 5번째 회사에서 퇴사했다. 그때 그녀는 결심했다. 프리랜서로 살아보자. 그리고 이날은 그녀가 약 10개월 만에 제대로 된 일을 받아서 일주일간 준비를 한 강의를 하고 온 날이었다.
마일로는 8년 전 그녀가 자신의 미래도 책임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매일 불안에 떨었던 취업 준비생 시기에 노란색 천막 밑에 유기견 행사장에서 만났다. 그 만남마저도 당시 룸메이트이자 동거인이었던 언니가 펫로스 증후군으로 너무 힘들어하자, 그러지 말고 강아지를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는 가벼운 제안에서 시작된 만남이었다. 그는 그녀가 언젠가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함께 살고 싶었던 하얗고 작은 강아지도 아니었다. 10킬로의 큰 덩치에 무늬는 얼룩덜룩 검은색 갈색 흰색이 섞여 있으며 어느 종인지도 모르겠는 그런 강아지였다. 마일로를 처음 보고 그녀가 생각한 건 ‘정말 못생겼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마일로를 키우게 된 건 언니가 마일로를 수많은 강아지 중 마음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마일로와 함께 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씻기고 옷을 사 입혀도 참 못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마일로가 어느 순간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사랑스럽고 잘생긴 강아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갈 때쯤 마일로의 몸에는 암이 3군데에 퍼져있는 상태였다. 한 달밖에 살지 못할 거라던 의사의 말에 그녀는 처음으로 일을 줄이고, 마일로를 위해서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함께한 시간을 다 합쳐도 그가 암 투병을 하던 3개월만큼 오랜 시간 함께 옆에 있어 준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한 일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픈 마일로를 옆에서 돌보면서도 그녀는 이미 찾아오지도 않은 펫로스 증후군이 두려워 여러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매일 3개의 카메라로 최소 1시간씩 영상에 담아 두기,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사진 찍기, 털 모아두기, 전문 사진관 가서 사진 찍어두기부터 시작해서 영상을 만드는 친구에게 영상 제작을 요청했고, 학교를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항상 물어볼 때마다 이리저리 핑계로 대답을 미루었던 결혼도 승낙했다. 모든 행동들이 다가올 힘듦을 예방하기 위해서 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녀가 오랜 시간 언젠가 하겠지 하며 미루어 왔던 것들을 마일로가 곧 세상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냥 결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불안이었는지, 아쉬움이 있는 후회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런 장치 덕분에 그녀는 마일로가 떠나고 나서도 무너지지 않고 바쁘게 활동하고 살아갔다. 때때로 마일로가 그리웠지만 그녀는 그의 죽음을 꽤나 잘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10년 만에 시작한 공부가 재미있었고 성적도 꽤나 잘 받았으며, 처음 해본 일에도 도전해서 공연을 하고, 일에서도 업체 측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며, 결혼식 준비도 어떠한 역경 없이 순탄하게 준비해 갔다. 주변 사람들은 역시 그녀에게 여전히 열심히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말을 해왔다. 마일로가 그녀의 곁에 없어도 그녀는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 갔고, 그녀의 세상과 미래는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침대에서 소리 내어 어린아이처럼 울었던 그녀가 자연스럽게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가슴이 진정되자 속삭인다. “3개월간 그런 적 없었는데, 나 마일로 떠난 거 인지하고 있었잖아? 왜 갑자기 마일로 부른 거지?” 혼자 중얼거리다가 그녀는 휴지를 꺼내다 코를 시원하게 풀어내고서 책상에 앉아 노트에 하나씩 적어보기로 한다. 마일로가 떠나고 나서 변한 건 무엇이지. ‘맞아. 가장 그리운 건 일 끝나고 집에 드디어 왔냐며 총총 걸어오는 그 모습이야. 반겨주는 사람이 없구나.’ ‘음… 또 배고프다고 밥그릇 긁는 애가 없구나. 마일로가 있으면 무엇을 먹어도 맛나게 느껴지는데 사람 음식 참 탐을 많이 냈어 그놈.’ ‘똥 싸야 한다며 낑낑거리면서 신호를 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 없어졌구나.’ ‘또 매번 최소 10만 원씩 사료나 배변 패드 구매 비용이 없어졌고….’ ‘또 그냥 집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누워서 자고 있는 애가 없구나….’ 7개 정도 적고 나니 더 이상 그녀의 일상에서 크게 변화된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괜스레 공허함에 그녀는 머리를 크게 굴리고 쥐어뜯으며 더 적어보려고 해도 몰라서 멈췄다. 그녀가 느끼는 이 감정은 마일로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건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서 왜 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인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니 있는 그대로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저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상의 변화 리스트를 보면서 스스로 토닥이는 일뿐이었다. “이것만 변화한 거야. 익숙해진 습관과 영역이 사라진 거잖아? 이것도 점차적으로 익숙해질 거야.”
이 사건이 있었던 이후에도 그녀는 이따금씩 뜻밖의 상황과 시간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고 마일로를 부르며 울었다. 이런 식이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느끼다 울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갑자기 울어버렸다. 그녀는 그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일그러져 콧물까지 흘리며 울었다. 그러나 그것도 6개월이 지나자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고 그녀는 그전에 예언한 것처럼 마일로가 없는 삶에 점차적으로 익숙해졌다. 여전히 그녀의 울음이 어디서 오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마일로가 떠난 지 1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마일로와의 시작이 그러하듯 얼떨결에 시작된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 오레오와 슈거의 임시 보호를 시작하게 되기까지 말이다.
남자친구를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이라고 소개하는 게 어색해지지 않게 된 어느 날, 친구의 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니던 친구가 어린 강아지 사진과 함께 보낸 ‘미국 가기 전 임보가 필요한데 혹시 관심 있어?’라는 문자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응’이라고 대답했다. 한 생명을 일평생 책임지는 것은 두려웠지만, 잠시 함께하는 건 가능했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연애는 항상 ‘자주 많이’가 최고지”라고 말했던 그녀의 신념과 일정 부분 유사한 선택이었다.
두 마리의 강아지가 집에 오고 그녀의 광대는 자주 올라갔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연애 초기의 꿀 떨어지는 눈빛이 마구 살아났다. 함께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강아지들은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며 달려들어서 코를 핥아주고 얼굴을 침으로 세수를 시켜주기 시작했다. 강아지들이 더 이상 그녀를 경계하지 않고 반려인으로 인식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강아지들과 집 근처 산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강아지들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하늘 끝까지 말아 올리고, 엉덩이로 실룩실룩 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 걸 보면서, 그녀에게는 10개월간 잊고 지냈던 감각이 하나 깨어났다. 집 밖에 한 생명체를 데리고 나온 것만으로 자신이 엄청 훌륭한 일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뿌듯함 말이다. 그 감정을 인지하게 되자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일로도 참 산책을 좋아했는데. 산책할 때면 꼭 저기 풀에 가서 대변을 봤지….” 그때부터였을까? 그녀는 임보하는 두 강아지들을 바라보면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음을 짓고 난 뒤에 씁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급하게 찾아온 대소변 소식에 마음이 급해서 꽉 문을 닫아 놓지 않은 날에는, 강아지들은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아는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궁금한 사람이었다는 감각이 깨어났다. 그 감각이 깨어났을 때도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마일로는 화장실 문을 너무 꽉 닫아놓으면, 문 긁으면서 열어 달라고도 했는데….”
처음으로 강아지들이 ‘앉아’와 ‘손’을 성공한 어느 날에는 행복함과 씁쓸함의 격차가 제일 컸다. 마일로가 하반신에 마비가 와서 더 이상 다리를 못 쓸 때 간식을 직접 입에 넣어주면서 ‘손’이라고 말하면 자신의 손을 건네주었던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마일로에게 “괜찮아? 아직 기운 있어?”라고 물으면, “응, 나 아직 괜찮아”라고 소통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녀는 두 마리 강아지의 행동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마일로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그제야 잃은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잃었던 것에 대해서 감각과 감정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일로에게는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지금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거라는 것을 매번 온몸으로 말했다. 그녀가 그의 언어를 못 알아들었을 뿐. 그녀가 어린 시절에는 알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잊어버렸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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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일 년 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일로 누나’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잃었다.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계속 마일로 누나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찐하게 경험한 슬픔 아픔 괴로움 후회를 의미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