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완 May 06. 2023

대충의 미학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저는 그 책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 보고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무슨 내용일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면서도 뻔한 내용일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하려고하는 내용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대충 외국어배우기


날씨가 좋아서 대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가을이나 봄에, 한가한 시간에는 저는 외국어공부를 합니다. 괜시리 집에서 늘어지는 것이 싫고,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에서 무의미한 스크롤을 하고싶지도 않고, 야외활동도 충분히 했다면 그럴때 외국어공부는 제격입니다. 


무슨 시험의 점수를 따려거나 하는것은 아닙니다. 그저 재밌기때문에 하는데, Duolingo라는 웹사이트(또는 앱)으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최근에 시작)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볍게 만들어진 온라인 학습서비스라서 게임처럼 나름 재밌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15년말에 유럽과 남미여행을 5개월동안 할 때 시간이 남을때마다 일상생활에서 소통할 목적으로 이 듀오링고로 틈틈히 공부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오랜만에 작년 가을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공부한만큼 지금 잘하냐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꽤 하는것 같으면서도 막상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한다면 별로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것 같습니다. 슬픈일일수도 있지만 이미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했지만 능숙하게 자기소개를 못하는 경험을 미리 해봤기때문에 괜찮습니다. 외국어 회화에 그다지 재능이 없을수도 있고, 한국 공교육과 입시위주의 가르침이 잘못됐을수도 있고 비난의 화살은 여러군데 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어를 공부할때는 조금 슬픈데, (이만큼 공부했는데 왜 실력은 늘 제자리인가?) 그 외 외국어를 공부할 땐 기쁘다는 사실입니다. 공부를 조금만 했을 뿐인데 의외로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즐기기로 했습니다. 네이티브 스피커같은 허황된 꿈은 꾸지 않기로요. 외국어 공부의 최종목표는 뉴스기사를 술술 읽는다던가, 외국인을 만나서 그 언어로 소통한다던가 하는 것일텐데, 그 짐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이제 꽤 많은 언어들을 접하고 나름 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인생의 경륜이 쌓이는 나이가 되면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굴 만나도 화장실을 물어볼 수 있고 원하는 물건을 사고 대중교통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재밌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죠 ㅎㅎ 아무런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외국어를 '대충'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르투갈어를 막 공부하다보면 조금 지겨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땐 일본어로 넘어갑니다. 마치 콘솔게임기에 내장되어 있는 여러가지 게임을 바꿔가면서 플레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떻게보면 그냥 놀고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지적인 놀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즐겁게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충 운동하기


겨울동안 천변에서 러닝을 하기 힘드니까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근사한 헬스장에 3개월 등록해서 운동을 했습니다. 차로 20분정도 가야하는 거리인데 나름 괜찮았습니다. 헬스장에 도착하기까지 사용한 연료와 배출한 이산화탄소와 소요된 시간만큼 좀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게 최선일까 하며 고민하던차에 집 근처에 공공헬스장(무료)을 발견했고 나름 괜찮아보여서 봄부터는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 특히 헬스장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운동은 10일만 쉬면 그 다음에 시작하는것이 조금 번거롭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2,3일에 한번씩, 쉬지않고 꾸준하게 하는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게 지나치게 성실한 사람은 저 포함 제 근처에는 없습니다. 문제는 운동을 쉬었다가 다시 하면 근육이 결린다는 것입니다. 밤에 잘때나 낮 일상에서도 뻐근함이 느껴져서 "오늘도 좀 쉴까"하고 헬스장에 가는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막상 가면 좋은데 가기전에는 살짝 망설여지는, 그런 이중성이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운동에는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운동을 '대충'하기로 하면서 이 이중성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이전에는 한번 시작하면 "1시간정도는 채워야지" 했다면, 이제는 "살짝만 하고 오자", "약간 아쉬울 때 그만하자" 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생각으로 하니까 헬스장 가는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오히려 살짝 아쉬우니 금방 또 오고싶어지는 그런 선순환이 만들어졌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과 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