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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Nov 26. 2015

퇴사여행을 떠나는 이유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고있었던 문제들이 있었다. 조금 잊을만 하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근원을 알수없는 스트레스들. 살면서 당연히 겪는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무시하고 싶었지만 더 늙기전에, 젊은 시절이 다 가기전에 건강한 맨정신으로 똑바로 서서 그 문제들과 한번 대면을 해보고 싶었다. 과연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연히 사그라들 수 있는 문제들인건지, 그렇지않다면 내가 남은 생애동안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외부환경에 적응해나가고 변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1년정도 돈을 벌지 못할수도 있지만 그 1년을 써서 남은 인생을 조금 유연하고 기분좋게 살 수 있다면 남는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럼 회사를 관두고 자유의 신분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일을 벌이기로 하고) 그럼 문제인식부터 꼼꼼이 따져봐야할 필요가 있다. 좋은 디자인의 출발은 문제의 발견에서부터니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이 두가지 뿐이랴만, 비슷한 문제들은 합치고 덜어내고 추려보면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회(Community)와 내가 주로 하는 일(Doing)이 그것이다. 사회(Community)는 거의 인간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나와 직접 의사소통을 하고 친분관계를 맺는 인간관계의 범주를 넘어서 내가 쉽게 닿을 수 없는 정치인이나 저멀리 지나가는 낯선 행인들까지도 포함되고 그들을 보는 나의 태도를 말한다. 일(Doing)은 사회와도 관련이 있고 종속되는 부분이다. 나만 좋자고 일을 하는건 아니니까. 역시 사회가 우선인거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한창 고민이 많던 학창시절엔 내가 디자인을 잘 못하고 별로 안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보니 그게아닌거다. 난 다만 디자인의 고객이 되는 이 사회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던것.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걸 알게되니, 행위자체에 몰입하는것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 분리가 되어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내가 하던일을 멈추고 변화를 선택할 시점에서 진정으로 원했던 바람들을 써보겠다.



사람들을 마음껏 좋아하고 싶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못했다. 어렸을때부터 경쟁위주의 교육이 그렇게 몰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다) 발랄하기 그지없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기우는 집안형편과 함께 급격히 어두워져갔다. 그리고 경쟁을 위한 미술입시를 하면서 미술 그 자체에 대한 동경과 흥미가 사라졌고 그때 처음 이 사회라는 곳에 큰 실망을 했었다. 어찌어찌해서 대학에 들어와서도 내게 남을 위한 여유는 없었고, 경쟁의 압박감은 입시보다는 덜했지만 관성은 여전했다. 졸업 후 직업을 선택할때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기준이 부재했기 때문에 여전히 헤맸고, 꼰대만은 되지 말아야겠다면서 발버둥쳤다. 주변사람들은 나름 활발하고 유머있고 사교성있게 봤지만 나는 진심으로 타인을 믿진 않았다. 그런 점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고치려고도 많이 노력했지만 가끔씩 꼭 정말 미운사람들이 나타나서 훼방을 놨다. 그들은 (지금도 정말 밉다 ㅋ)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보다 경력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머리숙이고 예절바른 한국인처럼 대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난 그러지 못했고 갈등에 능숙하게 대처할줄도 몰랐다. 그 사람들은 내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꼰대'라는 편견을 갖게 만들었고 나는 이 편견을 곱게 싸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한 순간에 '거봐 내 생각이 맞잖아' 하며 꺼내본다. 그 결과 내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씨 좋고 천사같은 어른(선생님,형,누나)들이거나 동갑,동생들뿐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동갑들도 돈버느라 혹은 가정/육아에 힘쓰느라고 놀아줄 시간도 없어서 거의 동생들과 논다. 한국사회에서 동생들과의 관계는 내가 꼰대가 되지 않는다면 크게 실망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어찌보면 난 권위주의에 지친걸지도 모른다.


또하나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않는 낯선 사람들이다. 페이스북같이 온라인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출퇴근 길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 텔레비젼에 나오는 사람들. 내 눈엔 그들은 서로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대놓고 그러지못하지만 상관이 없거나 굳이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얼음과도 차가운 존재다. 페이스북에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비아냥거리는 조소가 거의 대부분. 그런 마이너스의 기운 역시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라는 것.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났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고 그 사건을, 그 죽은 아이들을 대하는 표정없는 어른들에게 또 실망했다. 실망하고 또 실망하고 지쳐가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점점 이대로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조금만 서로에게 따뜻하기만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다지 어려운일이 아닐텐데 왜 그렇게 서로 미워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지 한 번이라도 그런 기운이 없는 곳에서 살고싶었다. 딱히 어떤 다른 목적없이 그냥 다른 사람을 선뜻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따스함을 가져보고 싶었다. 몇달전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 출근길 계단에 어떤 젊은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난 그 여자를 쭉 봤고 무슨일인지 궁금했지만 다른사람들처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마도 다리를 삐끗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도와주러 그 여자에게 다가가서 툭 치며 괜찮냐고 물었더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쳐다보지도 않고 '아, 괜찮아요' 그 때 나를 지배하고 있던 생각이 그랬다. 실제로 그 여자는 도움을 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그런 생각을 매우 강하게 확신했고 도와주러 가지 않았다. 여자를 지나친 다음에 가끔씩 그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떤 강한 기운, 그러니까 내안에서 뿜어져나온 그런 불신의 기운이 나를 그렇게 만든거라고. 이 기운을 처치할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냥 도와주고 싶으면, 혹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따스한 유연함을 내가 감히 가져볼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고.



디자인을 계속 잘 할 수 있을까


이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는 나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자율적인 분위기에 휴가도 남들보다 조금 많이주는! 그런 괜찮은 곳이었다. 대기업처럼 연봉많이받는 대가로 부속품처럼 일해야하는 곳도 아니었고 어느정도 짬이 찰때까지는 자기생각을 일절 얘기할 수 없는 그런 위치도 아니었다. 모두가 원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고 회사의 성장곡선이 눈에 보일정도라 은근 자부심도 있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디자인을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점이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디자인작업은 점점 보수적으로 갇히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 답답해하는거야 모든 회사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구글도?) 진심으로 걱정되는 점은 내가 즐기지 못한다는것, 그리고 호기심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아니 회사를 즐기려고 다녀? 라고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할 것이다. 특히 경험이 일천한 선배님들. 그런데 좀 즐기고 싶어하면 어떤가. 즐긴다는 것이 작업을 하는둥마는둥 남들 의견 수용하지 않고 내 맘대로 하겠다는 의미도 아니고, 좀 더 의미있고 더 나은 디자인을 하고싶다는 뜻인데. 이왕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것이라면 가치있는 쪽이 훨씬 낫지 않나. 


나는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내가 디자인을 잘 못하는줄 알았다. 워낙 학교에 쟁쟁한 선후배들이 많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왠만해서는 교수님들한테 칭찬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ㅋ 3학년때는 과제를 해갔더니 교수님이 '이건 마치 1학년이 해온것 같아'라는 말까지 들었다. 나는 특히 여러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조금씩 하는걸 좋아하는데 한가지만 파는 굉장한 친구들에 비해서는 실력적으로 많이 밀릴수밖에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그래서 난 디자인을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졸업후에도 디자이너가 되기보다는 영상관련일을 하며 어떻게든 디자인을 피해가려고 했었다. 영상일은 혼자하기 힘든 팀작업이기 때문에 개인의 특출난 능력보다는 협업기술이 더 중요하고, 디자인은 어디에나 쓰이기 때문에 살짝 곁다리로 조금씩 해주면 '오~~~ 이런것도 할줄아네'라는 말을 들을수도 있고 일거양득. 그런데 2011년 아이폰3gs의 히트로 나의 생각은 바꼈고 새로열린 모바일시대에 디자이너 신분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자신감을 가지기로 했다. 낮은수준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실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늘었고, 다행히 디자인 에이전시라는 공장업계를 피해 벤처회사에 입사해서 나름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지금은 떳떳한 디자이너로서 어떤 작업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야성적이고 가장 호기심 많고 가장 디자인을 잘하는 때다. 그정도 나에 대한 믿음은 있어야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다. 객관적인 지표는 필요없다. 자신감이 밥먹여준다. 


이제 내가 바라보는 단계는 '무엇을 위해'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슈다. 첫번째 언급한 사회(Community)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은 큰 프로젝트 하나와 작은 프로젝트 몇개를 진행중이다. 큰 프로젝트는 음식문화에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인데, 예전부터 한국음식문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한꺼풀씩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일단 대상을 사랑하려고 노력중이다. 회사에서 하듯이 아웃풋을 그럴싸하게 찍어내기만 하고싶진 않다. 그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시작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과제나 전시회, 알바나 회사업무처럼 마감이 있고 진동의 발원지가 외부에 있지않고 내 스스로 울림을 시작했다는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모른다. 그 외 작은 프로젝트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소소한 일들을 하고있다. 음반앨범자켓 디자인이나, 단체 로고, 영상편집, 캐릭터그려주기같은.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들이 받고 좋아하는 모습때문. 내가 남에게 혹은 작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이 공헌감(아들러의 '미움받을용기' 참조)은 또다른 작은 행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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