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력

by 김정완
실력(實力)
: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뜻함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했고, 알랭드 보통은 <불안>에서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원인으로 '지위'를 꼽았다. 남은 인생에서 자신의 지위가 높은곳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자신의 지위가 설령 높다고 할지라도 이 지위를 언젠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계급과 지위라는 단어에는 다소 낡은 이미지가 있긴하지만 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이 단어들을 현재의 분위기로 바꾼다면 그것은 '인정'과 '존경'이다. 높은 계급과 높은 지위를 상상해보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상은 돈이 많은 사람, 즉 부자이다. 돈이 많다는 것은 힘이 세고 지위가 높음을 뜻하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인정'이다.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고자 의대를 가기위해 여러 번의 수능시험에 도전하고, 대기업 사원이 되기 위해 입사준비에 온 에너지를 쏟아붇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반대로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불안해진다. 인정은 비록 눈에 보이지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고려했을 때 남들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란 솔직히 쉽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욕구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왜냐면 그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최고의 결과를 보여준 슈퍼스타라고 할지라도 불안의 순간은 찾아올 수 있다. 김연아도, 손흥민도, 이세돌도, 유재석도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1등의 자리에서 언젠가는 내려온다는 생각이 들거나 사람들의 박수를 더이상 듣지 못한다는 상상을 하면 더 끔찍한 불안을 느낄 수 있다. 1억을 가진 사람들은 20억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은 100억대 부자들의 그룹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고 여전히 돈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인정을 받으면 불안감은 낮아지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불안감은 높아진다


불안한 삶은 불행하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이 불안요소들을 잘 컨트롤해서 점차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인정과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위해 애쓰지만, 그렇게 하지않고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기위해 나는 이 글을 쓰고있다.


실력을 쌓는 것이 그 방법이다. 소란스럽게 남들에게 인정을 갈구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 실력을 갈고 닦는다. 실력을 쌓는 이유와 목적이 결국 남들의 인정을 받기위해서라고 해도 괜찮다. 실력과 내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많은 일들이 생기게되는데, 그것들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하며 남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헛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속이 텅 빈 채로 가짜 인정과 가짜 존경을 받으려는 얄팍함이 문제가 된다.


타인의 인정과 존경은 내 의지만으로 불러들일 수 없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타인이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것은 나의 중요한 과제를 남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운 좋게 박수갈채와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떡할것인가? 내가 Key를 잡고 내 속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잘 다루면 긍정적인 행동의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잘못 다루면 삶을 새까맣게 태워버리는 불씨와 같다.


실력이 좋다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을 쌓는 <과정>에서 불안감은 점차 낮아진다


실력이 반드시 뛰어날 필요는 없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 고백하건데 나는 어릴때부터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일만 골라서 했었다. 이기지 못할 게임은 참여하지 않았고, 결과가 패배로 예상되면 도망치거나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때 상실감과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과가 형편없어도 내가 그것을 즐겼다면, 그것으로 인해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만족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정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과정의 가치는 무엇일까.



실력을 쌓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

1. 그냥 하는 즐거움


나는 30대 후반까지 축구를 했다. 대략 10살 무렵부터 축구에 빠졌으니까 30년 가까이 꾸준히 한 셈이다. 비록 직업이 아니었더라도 청춘의 열정을 쏟아부었던 대상이 바로 축구이다. 자주하다보니 더 잘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어릴때부터 소질이 조금 있어서 나름 팀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사람쯤은 됐었다.


축구경기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수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이다. 실력이 좋으면 남들이 하지못하는 새로운 패스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그렇게하면 상대방의 허를 찌르기때문에 기세는 우리팀에게 넘어온다. 실력이 좋으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여유가 있으니 재밌는 농담도 할 수 있고, 상대방과 부딪혔을 때 손잡아 일으켜줄수도 있다. 실력이 떨어지면 우리팀에게 늘 죄송하고 상대가 압박해오면 시야가 좁아져 공은 뺐기게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축구는 즐겁지 않다. 내가 그토록 축구를 잘하고 싶었던 이유는 필드위에서 최대한 즐겁게 플레이하고 싶어서였다.


2010년대의 위대한 축구선수로 많은 사람들이 메시와 호날두를 꼽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 둘의 차이점은 이렇다. 메시는 자기자신과 싸워서 이겨나가며 축구 그 자체를 즐긴다면, 호날두는 필드 위 상대선수와 싸워서 이겨나가며 승리의 결과를 즐긴다. 그런 메시도 아쉬운 패배의 결과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 눈물은 졌기때문이 아니라 축구 그 자체에 대한 열정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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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6일 (워싱턴 D.C.)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알트만이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인공지능(AI)의 미래와 규제 필요성에 대해 증언하던 중, 이날 상원 법사위원회 소속 리처드 케네디 의원은 알트만 CEO에게 "돈을 많이 벌 것 같은데, 이 일로 돈이 많겠네요?"라는 다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알트만은 이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일이 즐거워서 하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실력을 쌓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

2. 배움의 즐거움


원래 공부란 즐거운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과 입시라는 경험때문에 보통 큰 오해를 하고있는데 본질적으로 공부는 즐거운 활동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억지로 해야만 했던 기억탓에 공부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는 주제를 억지로 외워야하고 이해해야 하니 재미가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너무나 궁금했던 대상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며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호감이 있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며 질문과 답을 수차례 오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공부는 말하자면 이성적 관심이 전혀없는 사람과 몇시간동안 데이트를 하는것이다.


아래 김대승 영화감독의 인터뷰처럼, 모든 일을 배움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인생은 재밌는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무대에 섰을 때 떨리고 긴장되는 이유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이제까지 준비해온것을 그저 담백하게 보여주고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이 내 발표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안과 행복을 얻어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떨림과 긴장은 조금 누그러질 수 있다. 겸손한 자세로 실수에서도 배우려는 마음가짐과 작은 성공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는 적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영화도 찍어내고 촬영장을 행복하게 만들어줄거라 생각한다.


스크린샷 2026-01-07 오후 8.34.27.png 출처 : pluiesens_film 인스타그램



실력을 쌓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

3. 작은 성공들의 성취감


위에서 말한대로 나는 질것같은 게임은 아예 참여를 거부했다. 애초에 이런저런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그 타이틀을 따지 못한거라고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온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았을 때 느끼게 될 상실감과 허탈함이 두려웠다.


이럴때는 결과에 상관없이 중간 중간에 작은 성공 포인트들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늘은 이것까지 해보는거야"라던가, "한달안에 이걸 완성해보자"이다. 고등학교 2학년때 미대입시를 위한 미술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나 스스로 세운 작은 목표는 고3 선배들을 실력으로 한명씩 따라잡는 것이었다. 나름 괘씸한(?) 목표였기때문에 비밀스럽게 나 혼자서 지켜나갔었다. 처음부터 1등이라는 목표를 잡으면 연습의 과정이 부담스러워지고 압박감을 느끼다보면 흥미가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작고 귀여운(?) 목표를 세운다면 힘든 연습의 과정은 재밌는 게임이 될 수 있다.




실력을 쌓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

4. 남을 돕는 자


약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 없다. 실력이 어느정도 쌓인 사람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실력은 남을 돕는데 사용될 수 있다. 운동을 열심히하면 자기 몸이 멋있어지고 자기 체력이 좋아질 뿐이지만, 운동하는 좋은 방법을 남에게 알려줄수도 있고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 자체가 어떤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될수도 있다. 도움을 준다고해서 반드시 무료로 봉사하라는 말은 아니다. 화폐의 교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조그마한 실력으로 그 사람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려는 마음이다. 실력이 먼저 있어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실력을 어느정도 갖추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갖고, 먼저 다가가서 "저 이런것을 할 수 있는데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말을 건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우치다 다츠루 작가는 책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남에게서 가져올 수 밖에 없다"라고 했다. (어떤 책인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이 말에는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강도짓을 하라는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교환의 중요성이 담겨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서 내가 먼저 준다" 먼저 줄 수 있는 사람은 강하고 능력있고 용기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얻게된다. 그것이 돈이든 인정이든 존경이든 뭔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을 쌓자. 단기적으로는 불안함을 해소하고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즐겁고 의미있게 살기위해서. 그것말고는 좋은 삶을 사는 다른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실력을 쌓지않고서 어떻게 100년이라는 인생을 흘러보낼 수 있단말인가. 나중에는 누구나 한줌의 차가운 흙이 된다. 그렇기때문에 남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말고 세상을 탓할 시간에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안은 돈이 많든 적든, 대기업에 다니든 말든, 결혼을 했든 이혼을 했든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온다. 불안은 인생을 갉아먹는다. 그럴땐 실력을 쌓자.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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