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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Dec 12. 2015

저성장시대

이처럼 극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불과 한 세대차이밖에 나지않는 부모님세대는 고도성장의 시대. 80년대생 이후의 젊은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저성장의 시대가 될거라 예상. 중국이야 지금도 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중이고, 일본은 저성장시대를 보낸시기가 우리보다 10~20년 앞서긴 했지만 고성장시대를 우리보다 30년이상 앞서서 보냈으니 우리보다 시간의 간극은 큰 셈이다. 우리는 그만큼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다들 난리다. 금리는 떨어지고 전세는 물량이 바닥나고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며, 집값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옛날이 좋았지 그때는 노력하면 잘살수 있던 시대였잖아라고 한숨이나 내뱉고있다 다들. 


그런데 나는 저성장 패러다임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 꼭 필요한, 입에 당장 쓰겠지만 결국 몸을 천천히 낫게 하는 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경제를 잘 이해하진 못하지만 평범한 시민(서울시민이었다가 지금은 경기도시민) 중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보고느꼈던 점들을 나열해보자면




더이상 경쟁은 미덕이 아니다.


철학자 : 기억하게.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청년 : 어째서요?
철학자 :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 남으니까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고성장시대에서는 경쟁이 미덕이었다. 경쟁하지 않는 사람은 루저고 경쟁에서 진 사람도 역시 패자가 되기때문에 누구나 각자의 승부에서 이기기위해서 서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 모든 에너지의 총합이 결국 경제성장으로 이어질수밖에 없었다. 경쟁은 인간이 한단계 성장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수단이자 조건이고 경쟁에서 이기는것이 그 사람의 강인함과 존재이유를 설명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나 역시 학창시절을 경쟁이라는 프레임안에서 보냈으며 공부를 계속해서 열심히 하게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경쟁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천천히 가는 사람에게는 안타까운 시선이 던져졌고 입신양명이라는 명제하에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은 경쟁에서 이겨서 출세하는 것 뿐이라고 모든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부모세대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젠 더이상은 지켜보기가 힘들다. GDP나 경제성장률과 같은 숫자들에게 더이상 놀아나서는 안될 것 같다. 모두가 적이 되는 꼴을 눈뜨고 보기가 어렵다. 옆을 보지못하게 막아버린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온 댓가로 한국사회전체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것을 보면 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눈에보이는 현상들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사회분위기를 어느정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여러 원인들 중 한가운데 '경쟁'이 있다. 경쟁은 더이상 미덕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우리가 택했던 경쟁방식을 부정하진 않는다. 고성장시대에서는 너무 잘 어울리는 방식이다. 그때는 그게 통했고 문제점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수혜를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끝낼때가 됐다. 경쟁을 완전히 하지 말자는것이 아니라, 일을 구하고 학교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며 차를 구입하고 가족이 살 집을 구하는데 있어서 경쟁하지말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남을 이기려고 월급을 받고 대학교를 가며 차를 사지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며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집을 구하자는 것이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라는 망언은 누가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죽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다. 




성공을 향한 맹목적인 돌진 대신, 

차근차근 탄탄하게


우리도 아름답게 살아볼 권리가 있다. 단 한 번 주어진 보석과 같은 인생인데 아름답게 사는게 누가 사치스럽다고 할까. 인생을 뒤틀리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핀잔을 굳이 주워들을 필요는 없다. 그러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그렇다면 아름답게 살아가는건 무슨 의미일까? 고급 리조트에서 비싼 음식을 먹으며 해변으로 수영하러 가는게 아름다운것일까? 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각자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그것을 해낼 때 그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아름답게 드러난다. 한국사회에서 이런말을 하면 '나는 예술가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기 딱 좋다. 자기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그것을 다른사람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예술'이라고 정의한다고 해보자. 그럼 정치가, 동네이장, 식당아줌마,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외할아버지, 벼룩시장 상인, 회사사장에게 더나은 회사를 만들기위해서 건의하는 일개사원도 예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독립적인 사고를 하고 구체화시키며 주변을 밝힐줄 알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작은 예술가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매력적인 사회가 되는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느리게 앞으로 가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빠르게 앞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어렵다. 비슷하게 흉내는 낼지 모르겠지만.




문화의 힘을 키워야


아마 꽤 오래전부터 문화, 문화를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디자인과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디자인을 외치고 있었던 시대였다. 지금은 아마도 창조를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정부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말 지켜져야 하고 가치있는 풍속, 유무형 문화재들, 물건들, 지역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문화를 지키고 가꾸려는 노력은 하지만 그 노력들을 움직이는 생각이 여전히 고성장시대안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천박함 때문이다. 당연히 문화는 돈을 벌어다준다. 여기 포르투갈도 경제는 무진장 어렵다고하는데 그나마 버티고있는게 관광업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문화를 좋아하고 아낀다는 점이다. 그들 스스로 즐기고 향유하는 것들을 가지고 다른나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추천하며 관광업을 발전시킨것이다. 한국인들 95프로가 입지않는 한복을 가지고 패션쇼를 하고 외국인들에게 입히고 사진촬영해주는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줄레주(타일장식)를 좋아해서 건물외벽마다 붙어있는데 그 아줄레주를 가지고 여러가지 기념품들을 마구 만들어내서 관광객들에게 판다.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자면 사람들이 나전칠기를 너무 끔찍히 사랑해서 대문에도 붙이고 집 외벽에도 붙이니까 외국인들이 놀러와서 사진찍고 좋아해주니 기념품을 더 만들어 파는것이다. 그런게 진짜 문화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걸 외국인들이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외국인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찾는건 더 바보같은 일이다.)




돈보다

건강, 가족, 행복


고성장시대는 환격의 역습을 받기 쉽다. 환경오염은 옛날 영국 산업혁명, 중국의 현재와 같이 전세계가 주목하는 고도경제발전의 시기, 개발도상국의 도심한가운데에서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들이 가지는 공통분모는 사람보다는 경제성장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장소라는 곳이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다른 특징은 근무시간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들 서울로 올라와 쪽방에서 잠을자고 허리를 피기힘든 좁은 공간에서 하루에 열시간이상 일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힘들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을까. 무엇이 그렇게 힘든 상황속에 스스로 들어가게 만들었을까. (어쩔수없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돈이다. 현재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험한일을 한국공장에서 하는 이유도 고국에서 버는 돈보다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인것처럼 60,70년대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을터. 


내가 만약 그당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두가 열심히 경쟁하고 열악한 환경도 주저없이 선택해 가족을 부양하고 내 몸 돌보는 것이 사치가 되는 그런 삶의 현장에 있었더라면. 어려운 문제다. 그렇기때문에 명확하다. 이제는 저성장시대니까. 아직도 고성장시대라면 우리 부모세대가 했던것처럼 개인의 행복과 저녁있는 삶의 추구는 사치스럽다. 나는 앞으로 달려야하고 경쟁에 이기기 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 애써야한다. 그래서 다행이라는것이다. 그래서 저성장시대를 환영한다. 이제는 아닌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고성장시대에 살면서 "나는 내 몸이 더 소중하고 좋은 환경에서 조금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살고싶어"라고 말하는건 부모에 대한 불효이자 나에게 기대를 건 사람들에 대한 배반이다. 실은 고성장만이 원인은 아닐것이다. 사람은 온데간데 없는 물질만능주의의 탓이 더 크겠지. 앞으로 만나게 될 (이미?) 저성장의 시대는 물질보다는 사람, 성공보다는 성장, 경쟁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부모세대는 자기세대와 너무 다른 변화때문에 적응이 되지않아 잔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효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고민이 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연봉이 높은 일자리를 찾기보다는좋아하는 일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데 시간을 써도 좋은 시기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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