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과의 대담
현재 제가 도움을 주고 있는 농촌유학센터에는 중학생 3명과 초등학생 8명이 있는데, 초등학교 개학이 늦어져서 한동안 중학생 3명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오늘따라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근데 공부는 왜 해야될까?"
"음.. (당황)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서요. 그리고 좋은 대학도?"
이 대답을 듣는순간 저도 모르게 "야, 그건 너무 재미없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최종 목표가 고작 좋은 직장과 대학이라니 뭔가 억울하지 않냐면서요. 그래서 오늘은 공부하지말고 우리가 공부를 왜 해야되는지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평소 생각했던 '공부'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싶었고 요즘 한옥 리모델링을 하는 디자이너로서 공부의 무한한 확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날,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공부를 <진짜 공부>라고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다소 도발적인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솔깃해지니까요. 그리고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학창시절 공부가 재밌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기싫어 월요병을 심하게 앓았고 수요일쯤 숨통이 트이기 시작해 금요일에 살것같다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울적해졌습니다. 근데 성적은 제법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하는 방법과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을 조금 알고있었고, 경쟁이라는 환경에서 남들에게 지기 싫다는 승부욕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없었던 공부가 대학교때는 상당히 재밌었습니다. 원하는 과에 왔고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과목들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두 성적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고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과목만 열심히 해서 평점은 낮았지만 지금도 후회하진 않습니다. 최종 성적을 좋게 받기위해선 (당연하게도) 모든 과목을 빠짐없이 잘해야했지만 저는 대학교에서는 그러기 싫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동안 하기 싫은 과목까지 억지로 했으니 이제부터는 맘대로 하겠다고요 ㅎㅎ 그렇게 하니까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남들 앞에서 대학 전체평점을 이야기하면 "... 왜그랬어?"라고 질문을 받을 정도이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대충 살았던 것이 아니라 제가 무엇을 했을 때 재미있고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치열하게 탐구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냈으니까요. 그런 질적인 경험을 어떤 '숫자'로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저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 그걸로 된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그래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는 정말 재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 또는 시험을 봐야해서 하는 공부는 재미가 없을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는 이전에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며 그 대상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 점점 그 속에 빠져들면서 시간이 가는줄 몰라야하는데 '목적'이 있는 공부는 (물론 그것도 빠져들 수 있겠지만) 내가 주도권을 갖는게 아니라 빼앗긴 상태로 리딩 당하는 것입니다. 내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와 엄마 따라서 쇼핑을 갔을 때 체력소모를 비교해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지금 학교에서 하는 공부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하는 공부도 물론 공부긴 하지만, 이것은 정말 일부이고 세상에는 정말 재밌고 다양한 공부가 많으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이제 공부라면 진저리가 난다면서 모든 공부를 멀리하면 정말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 학교 공부를 잘 못하더라도 나중에 새롭게 만나게 될 공부를 위해서 너무 힘을 빼지 않았으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한데, 선생님들은 죄다 학교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되었기 때문에 그걸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하죠. 학교에서 꼴지를 하는 학생도 '나는 나중에 제대로된 진짜 공부를 할거야'하고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들의 첫 연애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런데 그 때, 공부할 대상이 없다면 그 사람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 힘들고 지지리 궁상만 떨고 있을걸"
라고 다소 억지 논리를 펼쳐 보였습니다.
첫번째 말은 제가 괜히 심술을 부렸던 게 아니라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나 엇갈림은 필연적인데 더군다나 인생 첫 이성교제는 두말할 것도 없죠. 저는 연애에 목매는 사람은 연애 대상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사춘기라 연애에 대한 (드라마가 만든) 환상에 젖어 있고 공부와 연애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도무지 그 둘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억지로 그 둘을 엮어 아이들의 관심을 높여봤습니다 ㅎㅎ 자기 전공이 확실하지 않고 뭔가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매력이 없고, 행여나 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 이불속에서 징징대기만 할 뿐이라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냐, 이왕이면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 그래야 연애도 더 잘 될 것이라고요.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래도 나름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여기서도 제가 말하는 공부는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반드시 '학교 공부'만을 가르키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실연 상태에서 어떤 취미를 발견하고 거기에 전념하는 것도 저는 공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에 관심을 능동적으로 갖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찾아보고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입하는 상태, 그것이 공부라고요. 그런 사람은 연애도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금 말한대로 새로운 취미를 갖는 것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그렇다고 태도가 반드시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건 몰입이니까요. 취미를 좀 더 확장시켜보면 직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을 꼭 바꿔야 하느냐면 그건 사람마다 다르기때문에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직업을 바꿀 가능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에 대한 관심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평균 수명이 이전보다 대폭 늘어났고 직장에서의 은퇴 시점은 점점 짧아지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직업을 바꾸는 것을 '이전 직업에서 실패했다'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의 요소로 볼 것이냐, 새로운 기회와 도전으로 받아들일 것이냐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고 저는 이제 그런 유연한 시대가 '이미'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공부하는 태도를 지니고 즐기면서, 연애도 성공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중학생들과의 이야기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