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내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꼭 해내고 싶은 목표중의 하나였다. 처음부터 수영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거나 엄청난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런것은 아니었다. 하면 멋있고 못해도 사는데 크게 지장없는 그런?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얹어주는 덤이나 서비스. 그런거 있잖아. 축구는 공 하나만 있어도 멋지게 공을 튕길 수 있는데 수영은 다같이 수영복챙겨서 수영장을 가야 할 수 있고, 여름에 바닷가로 놀러간다고 해도 굳이 바다에서 바른자세로 자유형을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굳이 쪽팔릴 일이 없다) 하지만 엄청나게 쪽이 팔리는 사건이 있었다.
바야흐로 8년전쯤이었다. 바로 그 엄청난 사건이란.
대학교 4학년때 1학점어치 수영수업이 있었다. 시간이나 때울겸 운좋게 한학기 수강해서 수영을 혹시라도 잘 할 수 있게되면 땡잡는거고 성적이야 원래 신경안쓰는거고 이래저래해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무리봐도 수영을 잘 하게 보이지 않던 우중충한 강사가 수업 첫날에 실력대로 조를 나누자고 했다. A,B,C조로 나눠서 실력에 맞는 수업을 하겠다는 것인데 나는 당연히 C조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강사가 잘못봤는지 나를 B조로 임명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 형은 C조가 되었기때문에 아주 조금 우쭐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런데 수업은 기초라고 알고있었던 발차기부터 알려주지 않고 처음부터 허구헌날 레일을 뺑뺑이 시키는것이었다. 그 때 난 처음 알았다. 나는 레일 이쪽부터 저쪽까지 한번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세가 잘못됐던지 호흡이 잘못됐던지 나는 수영을 하면 안되는 몸이던지 셋 중 하나일텐데 평소 운동신경만 믿고 어느정도는 하겠지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매 수업시간마다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모두들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나만 늘 죽을 고비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A조 사람들은 마치 물개나 돌고래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몸매도 나보다 형편없었고 배불뚝이에 키도 작았지만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몸은 물을 가르기에 최적화된 곡선과 적당한 부력을 가진 효율적인 몸이 되었다. C조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도 서툴고 저마다 개성있는 동작으로 웃겼지만 적어도 나만큼 숨이 차올라 얼굴이 파래지는 사람은 없었다. 25미터 구간을 세번씩 끊어서 중간중간에 허어어어엌하며 일어나는 사람이 나였다. 끝에 가서는 벽에 매달려 내 다음에 오는 사람을 '먼저 가세요 헤헤' 하며 보내는 사람도 나였다. 두세바퀴 돌다가 화장실 가는척하며 변기위에 걸터앉아서 숨을 몰아쉬며 수업시간이 몇분이라도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나였다. 어느날은 내가 수영을 하고있는데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니 수영 못하게 보이는 강사가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너는 왜 여기 B라인에 있지?'라며 나에게 물었다. 내가 알리가 있나. 당신이 보냈잖아..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A조에 있는 후배와 C조에 있는 동기형과 수업이 끝나면 '이상하게 수영하고 나면 엄청 배고프지 않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간식을 먹고 담배를 태웠다. 내 수영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형편없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는게 좋았으며 성적이 안좋게 나오더라도 고작 1학점이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 날 전까지.
종강이 한달전으로 다가왔을 때. 도무지 수영을 잘 할것 같지 않던 강사가 오늘은 수업대신 게임을 하겠다고 했다. A,B,C조를 공평하게 섞어서 두 팀으로 나눠 릴레이 경주를 하겠다는 것이다.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하자고 했지만 웬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내 실력이 들통나는건 시간문제가 될 것이고 그걸 떠나서 난 우리팀에 구멍이 될거야. 수영장 천장이 노랗게 될 즈음 팀은 나눠졌고 어느새 사람들은 순서를 짜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생각했다. 먼저 할 것이냐, 나중에 할 것이냐. 먼저 하게되면 사람들이 게임을 보는 집중력과 긴장도가 가장 높을테지? 왜냐면 아직 승부를 모르는 게임 초반일테니까. 우리팀 이기라며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을지도 몰라. 괜히 내가 들어갔다가 초반부터 승부를 가르게되면 우리팀 사람들은 나를 원망할게 뻔하지.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승부는 한쪽으로 기울수 밖에 없고 그때쯤엔 지켜보는 사람들도 시들시들해지고 얼른 끝나기를 바랄지도 몰라. 나는 어떻게든 주목도가 낮은쪽으로 가야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끝에서 세번째. 가장 끝도 아니고 승부가 예측할 수 없는 초반도 아닌 애매한 지점! 그리고 게임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처음부터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한사람 들어가고, 바톤터치해서 그 다음사람 들어가고.. 나처럼 3번에 걸쳐서 쉬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초반이라 그런가? 에이스들이 초반에 나왔으려나? 게임 중반으로 가도 느린 사람은 있어도 쉬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물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조퇴하면 안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오줌이라도 흘리지 않은게 다행이다. 그런데 더 최악의 상황은 내 차례에 가까워져 오고있는데 박빙의 승부에 사람들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어느쪽이든 좀 쳐지던가 벌어지란말이야. 이 승부를 좀 식혀줄 사람!! 드디어 내 앞사람이 들어갔다. 역시나 잘한다.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속에 반환점을 돌고 이쪽으로 온다. 역시나 박빙의 승부. 오히려 우리팀 사람이 앞서서 들어오고있다. 아.. 초인적인 힘을 내보자. 이 밝은 표정의 우리팀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두려움과 미안함보다는 어떤 신성한 책임감을 느꼈다. 엄청나게 잘할필요도 없다. 중간만, 중간만 해보자. 내 오른쪽 같은 출발선에 있는 다른팀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이다. 그.. A조의 배나오고 키도작고 볼품없는데 물속으로만 들어가면 한마리의 돌고래가 되는 남자. 어짜피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불쌍한 우리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잘 모르기때문에 이길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잘 알고있었다. 중간만 하고싶다는 생각으로 앞서서 들어오는 우리팀 사람이 미처 레일끝에 닿기도 전에 나는 입수했다. 돌고래남자보다 1초라도 먼저 입수하고 싶었다. 나중에 10초가 9초가 될테고 20초가 19초 차이로 줄어들테니까. 그리고 정말 미친놈처럼 팔을 저었다. 내 몸이 부숴져도 레일 끝까지 가고싶었다. 이 수영장에서 레일 중간에 쉬는 유일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레일중간에 일어나서 우리팀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보란말인가. 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젓다가 갑자기 돌고래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얼마나 따라오고 있을까 벌써 앞질러 갔을까? 궁금해서 오른쪽을 살짝 쳐다봤는데 뭔가 첨벙첨벙 하는게 보였다. 하긴 내가 아무리 일찍가도 이렇게 금방 따라잡힐줄은 알았다. 그래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레일 끝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 모든 체력은 그곳에서 끝이났다. 반대쪽 벽에 매달려서 수영장안에 있는 모든 공기를 들이마시고 토해내고 있을 때 옆레인의 돌고래남자는 같은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거의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방금 내가 얼핏봤던 그 첨벙거림은 나와 같은방향이 아니라 반환점을 돌고 집으로 향하는 첨벙거림이라는것을. 아.. 끝났다. 난 이미 모든 체력이 바닥났고 여기 반대편 벽에 매달려있으며 돌고래남자는 집에 거의 다 왔고 저쪽사람들은 여전히 환호하고 있으며 우리쪽 사람들은.. 우리쪽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나도 물론 그들을 보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느낄 뿐. 뜨거웠던 시합은 차가운 송장이 돼버렸고 나는 지친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가야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팔을 저어봤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1/3도 못와서 나는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봤지만 소용없었다. 다시 일어났다. 모든게 끝났다. 웃음이 나왔다. 우리팀 사람들도 웃음이 나왔을까? 더이상 수영을 할 수 없어서 나는 걸어갔다. 생각보다 걷는것도 쉽지않아서 팔을 휘이 저으면서 크게 걸어갔다. 고개를 떨굴수도 없었고 정면을 바라볼수도 없어서 물과 사람들 중간쯤 애매하게 보며 걸었다. 끝에 다다르자 우리팀 다음주자가 힘없이 출발했다.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C조였던 동기형이 말했다. 참고로 동기형은 그 날 게임에서 느리고 웃긴폼이지만 끝까지 쉬지않고 완주했다. 그때 너가 먼저출발해서 코앞에서 첨벙첨벙대고 있을때 나중에 출발한 돌고래남자는 잠수해서 한번에 절반까지 갔었다고. 그때부터 이미 챙피했었다고. 동기형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2015년 11월초. 그때 그사건이 8년정도 지났다. 아직도 난 한번도 25미터를 한번에 끝까지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난 회사를 관두고 여기 포르투갈에 와있다. 어쩐일인지 포르투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달간 머물게 되었고 운동도 할겸 밥맛도 좋게할겸 헬스장을 등록했는데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평일 낮 2시에 아줌마들이 단체로 수영장에서 춤추는 시간이 지나가고 거의 텅 빈 수영장에 들어갔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얼마전에 태국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느꼈던 발차기를 다시 연습해보며, 9월에 시골에서 아이들과 수영장에 갔을 때 조금 뭔가 되던 느낌을 떠올렸다. 숨을 고르게하고 어디한번? 출발해봤다. 큰 무리없이 끝까지 도달했다. 끝까지 완주했던건 그 때도 해냈었지만 이렇게 평온하고 아름답게 완주한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기뻤다. 그리고 오늘 집에가서 그 동안 아주 친한사람에게만 얘기했던 수치스러웠던 그 날을 일기장에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성공한 갑부가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린시절을 자서전으로 내듯이.
나는 내일도 포르투 '불량'역 근처에 있는 수영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