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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3. 2021

나의 두 번째 서울

고등학교

면접 날짜를 정하고 집으로 향하다 졸업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던 .

매일 아침마다 올랐던 익숙한 오르막길과 정문  도로에 주차된 학원 차량들의 행렬을 바라보니 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8시까지 등교를 하면 11시까지 야자를 해야 했던 고등학교 3. 일주일에 두세  지금처럼 도로에 정렬한 학원 버스  하나를 타고 학원에 도착하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했고,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야반도주를 감행하면서 선생님과 추격 영화를 찍기도 했던 교문  오르막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마라톤을 달려온 수능이라는 공포스러운 목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낸 3년이었지만, 함께  전우가 있어 즐거웠던 날들이었다. (비록 당시 친구들끼리 주고받은 편지에 온갖 수능에 대한 불안함과 불평이 적힌  보면 역시 인생은 멀리서   희극이다.)

당시의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 쉬는 시간, 매점, 야자 시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교문 밖에서 한참을  있다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두세 걸음을 걸었을까. 문득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가지 의문이 마치  온몸을 누르며  밑으로 나를 집어넣는  같았다.  

만약에.

내가 지금 저기  밝힌 교실에서 열심히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고 있는 나에게 "너의 미래는 나야, 어때?"라고 말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시절의 나는 무엇이 되고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을까. 물론 눈앞의 시험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이  어떤 모습을   명의 사람을 꿈꾸고 있었던 걸까. 그게 바로 지금의 나의 모습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십여   내가 꿈꾸던 삼십 대의 나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지금의  모습은 어린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던 모습이지만,  모습이 얼마나 실망스럽든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미래의 시간까지 버리게 만드는 행위라 생각하므로. 하지만 곧바로  솔직하게 대답을 해야  거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정말 부끄럽지 않게 지내고 있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꿈의 형태만 바뀌었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거룩히 바라고 열렬히 소망한다. 허무맹랑할지라도 이상을 꿈꾸는 모습은 가장 나다운 모습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커다란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게 뭘까 고민하며 시계를 보았다. 밤이었고 9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며, 교실의 불빛은 모두 켜져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열정이었다는 것을. 체력을 핑계로, 쁨을 핑계로, 나이를 핑계로 나는  내가 하기 편한 만큼의 열정만을 쏟아부으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혼자 자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순간 엄청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학창 시절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불나방 선생님께서 이렇게 편하게 노력하면서 꿈을 이루길 바라고, 꿈이 (dream)으로 그칠 확률은 100%라며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을 내는 듯했다. 

과거로 돌아갈  없다면 내가 선택할  있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지금  순간의 내가 십여  전의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는 .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내가 현재 누구이냐가 아니라 내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 라는 . 그러니 ‘누군가 되길 열망하기보다는 ‘무언가 순수하게 열망하며  힘을 불태우던  시절의  살아가야지, 라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그제야 발걸음이 떨어졌다.

잘 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차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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