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면접 날짜를 정하고 집으로 향하다 졸업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던 길.
매일 아침마다 올랐던 익숙한 오르막길과 정문 앞 도로에 주차된 학원 차량들의 행렬을 바라보니 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8시까지 등교를 하면 11시까지 야자를 해야 했던 고등학교 3년. 일주일에 두세 번 지금처럼 도로에 정렬한 학원 버스 중 하나를 타고 학원에 도착하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했고,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야반도주를 감행하면서 선생님과 추격 영화를 찍기도 했던 교문 앞 오르막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마라톤을 달려온 수능이라는 공포스러운 목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낸 3년이었지만, 함께 할 전우가 있어 즐거웠던 날들이었다. (비록 당시 친구들끼리 주고받은 편지에 온갖 수능에 대한 불안함과 불평이 적힌 걸 보면 역시 인생은 멀리서 볼 땐 희극이다.)
당시의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 쉬는 시간, 매점, 야자 시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교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두세 걸음을 걸었을까. 문득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의문이 마치 내 온몸을 누르며 땅 밑으로 나를 집어넣는 것 같았다.
만약에.
내가 지금 저기 불 밝힌 교실에서 열심히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고 있는 나에게 "너의 미래는 나야, 어때?"라고 말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지금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이 되고자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을까. 물론 눈앞의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 나이 때 어떤 모습을 한 한 명의 사람을 꿈꾸고 있었던 걸까. 그게 바로 지금의 나의 모습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십여 년 전 내가 꿈꾸던 삼십 대의 나의 모습은 현재의 내 모습과 꽤 거리가 멀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린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던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실망스럽든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미래의 시간까지 버리게 만드는 행위라 생각하므로. 하지만 곧바로 더 솔직하게 대답을 해야 할 거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정말 부끄럽지 않게 지내고 있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꿈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거룩히 바라고 열렬히 소망한다. 허무맹랑할지라도 이상을 꿈꾸는 모습은 가장 나다운 모습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더 커다란 걸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게 뭘까 고민하며 시계를 보았다. 밤이었고 9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며, 교실의 불빛은 모두 켜져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열정이었다는 것을. 체력을 핑계로, 바쁨을 핑계로, 나이를 핑계로 나는 딱 내가 하기 편한 만큼의 열정만을 쏟아부으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혼자 자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순간 엄청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학창 시절 내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불나방 선생님께서 이렇게 편하게 노력하면서 꿈을 이루길 바라느냐고, 꿈이 꿈(dream)으로 그칠 확률은 100%라며 정신이 번쩍 들도록 혼을 내는 듯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십여 년 전의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내가 현재 누구이냐가 아니라 내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 라는 것. 그러니 ‘누군가’가 되길 열망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순수하게 열망하며 온 힘을 불태우던 그 시절의 나로 살아가야지, 라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그제야 발걸음이 떨어졌다.
잘 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차오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