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와 함께 영등포 근처의 주거 동네를 걸을 때였다.
과일 점포가 줄지어진 거리를 지나 옛집이 고스란히 남겨진 골목골목을 걸으니, 마치 8,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세트장을 걷는 기분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번화가에서만 살았던 내가 떠올리는 서울의 모습은 8차선 도로와 고층 건물,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빛나는 모습이 전부였는데. 낯선 서울 풍경을 보며 이 동네 엄청 예스럽다며 감탄하며 걷는 내게 옆에서 함께 걷던 서울에서 나고 자란 본투비 서울러 언니는 조용히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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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서울의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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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는데, 그 충격은 바로 여태껏 내 시선이 머무는 대로만 서울을 형상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나는 서울을 서울 그 자체로 본 적이 있었을까. 내가 만든 프리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서울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굴절시켰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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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은 나아가 내 삶 전반에 걸친 질문으로 떠올랐다. 이다지도 편파적인 시각으로 서울을 봐왔듯 내가 밟아 온 모든 삶의 여정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진 채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가 놓친 순간들은, 잃어버린 사람들은, 외면해 온 진실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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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른 채 내 삶은 합리화로 뭉뚱그려지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