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나의 이야기
"지하철 노선도 외우기"
19살의 내가 상경하고 나서 세운 첫 번째 목표였다.
누가봐도 자연스러운 '서울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나는, 지하철역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서울사람의 첫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이 노선이 맞는지 고민하지 않고, 나는 너무 많이 타봐서 이 열차에 오르는 것이 지루하고 뻔한 일이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마치 배심원이 "당신은 어엿한 서울사람입니다."라고 판정해주는 것인 양 느껴졌다.
스마트 폰이 없었던 그 때, 기숙사에서 틈만나면 노선도를 펼쳐놓고 열심히 역 이름을 외웠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 혜화, 한성대입구, 성신여대입구, 길음, 미아, 미아삼거리, ..아니 미아삼거리, 미아..
잘 외워지고 있는거야? 스스로 쪽지시험도 봤다.
Q. 수유에서 안국을 가려면?
A. 4호선 수유역에서 미아 방면 하행선을 타고 충무로역에 내린 뒤, 3호선 을지로3가역 방면 상행선을 탄다. 약 40분 정도 걸릴 것 같음.
수능을 치르고 비워진 내 머리를 서울 지하철 노선도로 채웠고, 이 지식은 '지하철 게임'을 할 때 더욱 그 빛을 발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노선인 8호선과 9호선, 심지어 인천1호선까지 섭렵했던 나.
어떻게 그렇게 지하철 역을 잘 알아? 와 얘 진짜 지하철 박사네?
이런 칭찬들이 그 날의 내 콧대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란 내 대학 동기들은 지하철 노선을 나보다 훨씬 모르고 있었다. 그녀들은 동네를 운행하는 초록버스, 학교까지 가는 파란버스 정도만 타면 됐지, 지하철을 굳이 열심히 탈 일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서울 토박이들보다 서울을 더 잘 안다는 사실에 으쓱했지만, 진짜 서울 바이브는 버스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의 다음 목표는 버스 노선 외우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