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하차 태그를 몰랐던 신입생

서울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나의 이야기

by 눈눈

걱정보다 설렘이 더 컸던 서울에서 이방인으로서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누가 내 이마에 '지방에서 왔음'이라고 낙인이라도 찍어둔 것 처럼, 빨리 '촌티'를 버리고 완벽한 서울사람처럼 보여지고 싶었다.


제일 먼저 지하철 노선도를 통째로 외웠고, 다음 목표는 버스번호를 외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버스에서 내릴 때 하차 태그를 해야하는 것을 몰랐었다. 내리기 직전에 모든 승객들이 교통카드를 찍는 것을 보면서도 난 찍지 않았고, 그래서 버스를 탈 때면 늘 요금을 배로 물곤 했다. 도시의 교통 시스템 앞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다.


지하철 노선도 외우듯이 버스번호도 외웠지만, 엄청나게 많은 버스번호를 전부 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버스로 가는 습관을 들였다. 대학로, 명동, 홍대, 종로, 강남 가리지 않고 약속이 있는 곳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버스를 몇번이나 갈아타든 개의치 않고 무조건 버스를 탔다.


그렇게 버스타는 것이 익숙해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누군가가 여기서 너는 집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볼 때 "아 저는 요 앞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요~" 라고 대답하는 순간, 나는 어엿한 서울사람으로서 존재함을 느꼈다.

1. 나 서울 버스 잘 알고,

2. 여기서 우리집은 버스로 한 번에 갈 만큼 가까운 거리이고,

3. 난 서울에 산다-는 세 가지 내용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하도 버스를 타고다니다 보니 버스 번호에 숨겨진 비밀도 알게 되었다.

서울, 경기를 총 8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운행 방향에 따라 붙여진 번호들. 이제 버스 번호만 보고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서울사람이 된 것이다.

처음 가본 동네에서도 버스만으로 척척 환승해가면서 기숙사로 돌아가던 대학시절의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서울살이에 적응해갔다.


10년도 넘는 시간이 흘러 30대의 직장인이 된 지금은 돌아다닐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 지하철 정기권을 사용하고 있다. 탑승 방향을 착각해서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타고 가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여유도 잘 나지 않는다.


신호등 색깔만으로 수 많은 차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대도시의 풍경은 봐도 봐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치만 신호등 하나 없이도 무탈하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고향이 참 그립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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