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다 울었던 날 feat. 김완선 <이젠 잊기로 해요>
지난 일요일 오후,
"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 해요~"
그날따라, 김완선 님의 '이젠 잊기로 해요'라는 곡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노래는 김완선 님의 곡이 리메이크되어 2016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로 나와 알게 됐는데,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늘 있는 곡이다.
집안일을 하며 한참을 흥얼거리는데 LG ThinQ 앱에서 세탁이 끝났다는 알림이 왔다. 남편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냈고, 나는 자연스럽게 침실에 빨래 건조대를 폈다. 나는 빨래들을 탁탁 털어 건조대에 널기 시작했고, 남편은 본인 셔츠와 티셔츠들을 옷걸이에 걸어 베란다 전동 건조대에 걸었다. 이유 모르게 신난 나는 핸드폰을 갖고 와서 '이젠 잊기로 해요'를 틀고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남편은 세상 딸 바보 표정(딸은 없지만)을 지으며 나를 귀여워했다.
나는 가사가 시작되는 타이밍에 맞춰 따라 불렀다.
"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해요.... 사람 없는 성당.. 이이잉... 흑흑..."
내 두 손은 얼굴을 감쌌고, 나도 나를 말릴 새가 없이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남편은 내가 평소처럼 장난치나 싶어 웃다가, 진짜 우는 걸 알아채고 놀라서 널으려고 들었던 셔츠를 내려놓고 다급하게 나를 안아주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왜! 왜 그래!"
입으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은 겨우 삼켜내고,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결국엔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설움이 복받친 듯 소리 내며 통곡했다.
"왜! 왜그래애. 가사가 슬펐어? “
"이런 (소소한) 일상이 다시 온 것 같아서 그래?"
"왜, 우리 꾸꾸 왜 그렇게 서럽게 울어 (토닥토닥)"
나는 대답은 못하고 더 크게 소리 내며 울기만 했다. 남편한테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혼자 신나 까불며 춤을 추다가.. 갑자기..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울까?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가슴속 깊이 남아있던 말들을 조금씩 토해냈다.
"안 괜찮았나 봐...... 이제야.. 이제야.. 터지나 봐.. 이제야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봐.. (계속 엉엉 운다) 나.. 암 진단받고도 꾸꾸 앞에서 이렇게까지 운 적 없잖아..(소리 내며 엉엉 운다) 그때는.. 그때는.. 내가 계속 울고 힘들어하면.. 암이 커질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냥 괜찮은 척했던 거야... 너무 무서웠어.. “
보통의 어느 날처럼 남편과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나한텐 단순히 '빨래'가 아니었고, 어쩌면 더 오래 걸렸거나 오지 않았을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웠던 마음과 긴장이 이때 풀렸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참아왔던 말은..
난 내가 진짜 괜찮은 줄 알았어. 내가 진짜 강해진 줄 알았어. 근데 그냥 살아보려고 그랬나 봐. 살기 위해 괜찮은 척했나 봐. 별 수 없으니까.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그 마음으로. 다시 지금처럼 우리가 빨래를 널다 춤을 추고 웃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야 했으니까. 그러려면 암 진단을 받기 전의 날들보다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내야 했고, 그래야 암이 커지거나 전이될까 봐 불안한 마음을 겨우 잠재울 수 있었어. 자궁적출 수술보다도 항암 치료가 더 두려웠어. 항암에 ‘항’ 자도 내 입 밖으로 꺼내기도 싫고 듣기도 싫었어. 나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어.. 그리고 이제야 마음이 좀 힘들어..
수술보다 두려웠던 항암 치료 없이 추적 관찰만 하게 되었고, 몸은 차츰 회복되어 갔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약해져만 갔다. 분명히 혼자 여러 번 잘 다녀왔던 삼성서울병원, 7월 정기검진으로 혼자 방문했을 때는 운전하며 가는 길부터 눈물이 나오질 않나.. 평소처럼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귀엽다고 웃는 남편의 모습에도 눈물이 났다. 울컥하고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2025년 3월 31일 오전 10시 17분 수술실에 들어간 나는, 자궁과 왼쪽 난소 한 개를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다.
결혼 3년 차, 35세의 나이에 자궁내막암 진단. 수술 전까지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늘을 원망하고,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도대체 뭘 했냐고 자책하는 등 수십 번 수만 번 무용한 생각들이 떠올라 스스로를 무기력하게도 만들었지만, 당시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필사적으로 모른척했다.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지내야 했다. 적어도 그런 ‘척’을 해야 했다. 수술하고 퇴원 후에도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며 몸은 조금씩 회복되었고 컨디션도 나날이 좋아져 암 진단을 받기 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자궁이 없어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 배에 생긴 4개의 수술 자국 말고는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을 수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장기를 적출했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으며, 아무렇지 않게 즐기던 음식들이 겁이 나고, 재발의 불안 속에 지낸다.
이제야, 내 마음이 내가 괜찮지 않았다고 티를 낸다. 몸은 회복되어 가지만, 내 배에 생긴 4개의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는 마음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아픈 기억이지만 이렇게 내 마음을 구석구석 살펴보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진짜로..
김완선 님의 노래처럼
'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해요'
그렇게 되겠지.
To. 남편, 꾸꾸
내가 그때 갑자기 눈물이 터졌던 이유는 말이야.
남편이 3년째 입고 있는 골반까지 내려오는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 6년 넘게 변함없이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눈빛 때문이었어. 그 순간, 암 진단을 받기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느껴지면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안도감이 들어서.. 모른척하고 감춰뒀던 감정들이 다 터져 나온 거야. 많이 고마워.
From. 꾸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