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인생 처음으로 마주했던 큰 시련이었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이 시련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시험의 결과는 결국 내가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누군가를 잡고 탓을 할 수도, 원망을 할 수도 없었다. 나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오롯이 책임지는 것,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그 목표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세워졌느냐가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비겁한 변명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시절 나의 주위에서는 수능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신경 써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다. 집에서는 물론이었고, 명절에 친 적들을 만나도 사촌 누구는 전교에서 몇 등을 했다더라 하는 말이나, 누구는 올해 연세대를 갔더라는 말 밖엔 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철저하게 다른 경험을 해 볼 기회를 배제한 채 그냥 공부라는 것만이 인생에서 해치워야 할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오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데 너만 왜 그랬냐는 말에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결국 공부라든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이런 것들 모두가 내가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진 목표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그것은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심하지 않은 일에 전력을 투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라는 것은 결국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니까. 시험을 망친 사람의 비겁한 변명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원인도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