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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Mar 27. 2023

미처 알지 못한

친구가 나를 불렀다. 왜? 내가 묻자 녀석이 처음 보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OO가 너 좀 보자는데?


삽시간에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모두가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친구에게 다시 물었다. 왜? 나야 모르지. 나가봐 어서. 녀석은 빨리 나가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한 채로 강의실 밖을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가 보였다. 강의실 복도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괜히 어색해졌다. 이렇게 둘이 서로를 쳐다보는 건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어색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쭈뼛거리며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꽉 쥐고 있던 종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불쑥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괜히 얼떨떨 해져 그 손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받아.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그녀가 채근하듯 말했다. 나는 선물을 처음 받아보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손을 내밀어 나리의 손에 놓인 무언가를 받아들었다. 선물을 받았으니 고맙다고 해야지.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고, 나는 그의 말에 순응하기로 했다. 고마워. 나는 뻗은 손을 부자연스럽게 유지한 채 말했다.


그 말에 나리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았지만 눈을 돌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기로 했다. 내 반응이 정답이었을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리가 비로소 입을 뗐다. 오늘 밸런타인데이야.


아, 응. 그렇다더라.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려보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 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하얘져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입을 떼면 어버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다시 흘렀고, 나리가 다시 말을 했다. 오늘 재미있게 놀아. 그러고 그녀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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