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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un 22. 2023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지구에게 중요한가

『종의 기원』(찰스 다윈/ 장대익)을 읽고

‘우주의 역사는 138억 년 전, 지구의 역사는 45억 7천만 년 전,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35억 년 전의 일이며,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것은 350만 년 전, 그리고 인류가 문명 생활을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이다. 138억 년의 우주 역사 속에서 인류는 불과 1만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놀라운 문명을 이룩했다’ 『과학의 역사』 (곽영직) p28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한 이후로 경과한 시간에 비한다면 우리의 세계사는 그저 시간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p6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묻는다.

‘지구 생명체는 왜 이토록 다양한가? 그리고 왜 이토록 정교한가?’ p18


지구상의 생물 중 삶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며 죽음을 고찰하는 종은 인간뿐이다. 또한, 자연 속에 살면서 종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 자연을 ‘신이 주신 선물’로 합리화하며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인간뿐이다. 여기서 인간은 엄밀히 말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슬기로운, 현명한 사람)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까지 집어삼키며, 스스로를 ‘현명한 호모(속)’으로 규정한 ‘냉혹한’ 종이다.

이런 호모 사피엔스에게 ‘너희는 자연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 일뿐이며,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자연선택과 생존투쟁의 객체일 수 있다며,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경종을 울린 책, 바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다윈의 방대한 지식과 통섭적 사고, 논리적 전개와 함께 호소력 있는 필력은 단지 요약본에 불과했다는 650쪽짜리 『종의 기원』을 생물학의 바이블, 아니 성경에 필적하는 위치로 끌어올렸다. 마지막 장을 넘겨낸 지금, ‘세상 모든 도서관이 불탈 때 단 하나의 과학책을 살릴 수 있다면, 『프린키피아』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도 아닌 이 책을 집는다’는 장대익 교수의 말은 절대 단순한 홍보성 멘트로 들리지 않는다.

과학책이기보다는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철학서에 가깝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들의 모습과 습성, 본능, 생식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분류함으로써, 수식 하나 없이도,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p282,297,304,344,614)’를 웅변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연 관찰에 심취한 다윈. 어쩌면, 일할 필요가 없기에, 호기심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오롯이 불태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 만통의 편지를 필사까지 해 두며, 필력, 인맥, 그리고 전 세계 샘플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다윈만의 능력이자 노력의 산물이다. 훗날, 노동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일당을 묻고, 책값을 정한 그의 배려는 확실히 남다른 위인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 표본을 구해 온 일화는 유명하다. 조류학자 ‘존 굴드’에게 모두 같은 종이란 사실을 듣고, 각 표본이 어느 섬에서 채취했는지 몰랐던 것에 당황한 다윈의 모습이 상상된다. 또한, 자신의 학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월리스의 논문을 받았을 때, 그 충격에 절망하는 다윈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는 다윈의 지난한 연구와 고민의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의 형식은 체계적이고 꼼꼼하다. 대부분의 장이 서론으로 가볍게 말문을 열고 본론에서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명제를 내세우며, 그리고 요약으로 정리한다. 또한, 곳곳에서 박물학자들의 견해를 제시하고 반박한다. 일부 동의하기도 하지만, 결국 ‘분류’의 임의성과 지층 간 ‘장구’한 시간 간격, 장대한 시간에 대한 인간의 짧은 시야라는 본질적 한계를 지적한다. 특히, 개별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믿음에 대하여, 이로써는 종의 다양성과 ‘변화를 통한 계승’을 설명할 수 없다며 끊임없이 반문한다.


역자 장대익 교수는 이 책을 꼭 읽어보도록 권장하며, 다독인다.

1장의 비둘기나 개의 육종 설명에 포기하지 말고, 먼저 3장(생존투쟁)과 4장(자연선택)을 읽고 나서,

시간 되면 1장(사육과 재배 하에서 발생하는 변이)과 2장(자연 상태의 변이)을 읽되,

그렇지 않다면 6장(이론의 난점)을 보고 14장(요약 및 결론)으로 바로 넘어갈 것을 제안한다. 여기에 옮긴이 서문까지 본다면 더 좋다. 이 순서가 다윈의 요약서에 대한 최소한의 요약이다. 참고로, 5장은 현대 유전자 이론으로 보면 틀린 내용이 많으므로 지나치라고 한다.


자연선택을 간단히 훑고 넘어가자.

인간이 체계적인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의 방법을 통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면, ‘하물며’ 자연이 그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p144

자연 속에서 어떤 개체들은 종종 유용한 변이를 일으키고,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생존투쟁에 놓이지만 몇몇 변이는 살아남으며, 대물림되어 자손을 남긴다.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자연선택의 원리를 기반으로, 몇몇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각자의 환경에서 나름대로 적응해 살고 있다.  


『종의 기원』을 통해, 우리에게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해질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정확히 알려져 있는 부분은 아주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p423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입증했다면, 두 세기가 지난 후 다윈은 그 지구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생각마저 앗아갔다’ p21


10장(유기체들의 지질학적 천이에 대하여)을 보며, 문득 ‘종의 멸절’이라는 관점에서 시간에 따른 인간종의 지질학적 천이를 상상해 본다.

현대의 인구수가 80억에 달하는 상황에서 환경파괴와 자원고갈, 기후위기라는 자연의 여건은 현재 인구수를 최대치로 하여, 서서히 또는 급속히 줄어들지 모르겠다.

‘종이 완전히 멸절하는 과정이 그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보다 일반적으로 더 느리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지만, 암모나이트와 같은 몇몇 경우는 전체 집단의 소멸이 놀랍도록 급작스럽게 일어나기도 한다’ p438

그렇다면, 멸절은 막을 수 있는가?

최재천 교수님이 말하는 ‘협동적 경쟁’이든,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든 뭔가 생각을 바꾸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변화하지 않는 것은 멸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p434


한편, DNA의 존재를 몰랐던 다윈은 놀라운 통섭적 사고로, 이미 그 존재를 가늠했다.

‘나는 아마도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유기체는 처음으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 어떤 하나의 원시 형태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p643


지금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싸움에서 마치 달걀이 자신의 보존을 위해 닭을 키워낸다는 식으로 DNA와 인간의 관계를 비참하게 그리는 듯하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을 인용하면, 인류는 ‘유일하게 DNA의 구조를 밝힌 종’이라는 제임스 왓슨의 말에 이어, ‘DNA의 폭거에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종’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받아들여 유기체, 즉 인간으로서의 행복에 중점을 두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겠다. 이런 삶을 살 때, 비로소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종, 속, 과, 목, 강, 문, 계.. 비록 생물 공부를 다시 해야 했지만,

책을 덮는 순간, 마치 그동안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심미안이 떠진 듯한 청량함에 한동안 전율한다.

역시 과학 4대 고전이라 할 만하고, 감히, 인류 지성사의 발단종*이라 부를 만하다.

*개체의 단순 변이에서 아종이나 종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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