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버릴 줄 알아야 해

파리와 스타벅스

by 정두부

호스트의 이름은 앤소니로,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문자로 내게 몇 가지를 물었다. 거실 소파배드에서 자야 하는 데 괜찮냐, TV가 거실에 있어서 자기 전까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데 괜찮냐. 보통 새벽 한 시에 자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냐 등. 자신과 둘이서 같이 살게 될 것을 상기시켰다.
물론 괜찮았다. 함께 하면 할수록 좋았다. 나는 좋다고 답했고 그는 예약 요청을 승인했다. 내일모레 그의 집으로 가면 된다.


새 숙소로 옮기기까지의 이틀 동안 나는 파리에 익숙해지기로, 그리고 지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파리는 아름다웠다. 랜드마크와 우아하고 침착한 톤의 건물들, 우거진 나무들, 개성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어우러져 내가 본 어떤 곳보다 멋진 거리를 만들어냈다. 이틀 동안 노틀담과 개선문을 보거나 센 강을 걷고 사진을 찍으며 파리를 느꼈다.
여행이 끝난 저녁에는 스타벅스에 가서 글을 썼다. 노트북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인터넷이 잘 터지고, 콘센트가 있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니까.


숙소를 옮기기 전 날 밤, 앤소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리마인드를 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는 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했다. 아직은 거창한 이름인 줄 알지만 그나마 날 가장 잘 설명한다고 믿었다. 그러자 앤소니의 관심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는 잡지사의 편집장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로 스타벅스에 가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앤소니가 실망한듯 보였다. 파리까지 와서 왜 스타벅스를 가냐는 거였다. 와이파이와 콘센트도 그렇고 오래 시간 동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파리에 널리고 널린 카페들이 보이지 않냐고, 어느 카페라도 그 정도는 다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뭐라 할 일인가 싶었다.


다음 날 해 질 무렵에 앤소니의 집을 찾았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숙소 사용 방법에 대해 들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나는 거실에 짐을 풀었고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소파베드에 몸을 뉘었다. 모든 짐을 들고 이동하는 날이면 항상 지쳐 푹 쉬고 싶어진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몸에 힘을 뺐다.
그때 앤소니가 다시 방에서 나와 나가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몽마르뜨 쪽으로 가는 게 어떻냐고 했다. 보통 숙소 이용방법을 전달받고 나면 호스트의 얼굴도 보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앤소니는 게스트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겐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피곤함 따위는 제쳐두고 그를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탔다. 몽마르뜨는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역 밖으로 나오니 물랑루즈가 보였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질 때마다 사진을 찍었고, 앤소니는 기다렸다. 그렇게 천천히 몽마르뜨를 향해 걸었다. 언덕에 가까워지면서 8년 전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역으로 나와 안내 표지판을 따라 쭉 걸었었고, 계단 앞에서 팔찌를 강매당했었지. 그런데 앤소니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길로 날 안내했다.
파리의 로컬들이 찾는 길이라고 했다. 정말이었다. 돌아보니 그 많던 관광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게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이 가정집이었다. 골목골목 벽마다 멋진 그래피티가 있었다. 우아한 작품들이 많아 몇 번이고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앤소니가 앵글에 걸렸다. 그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그래피티에 관심이 있었다. 처음 마주한 벽에서 '여기 300번은 왔는데, 이건 처음 보는 거야. 새로 생겼나 보군'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가는 길에 있었던 그림들이 모두 새로 생긴 건가 싶을 정도로 그는 벽마다 멈췄다. 마치 그도 파리를 처음 찾은 사람이고, 나와 같이 여행하는 여행객인 것 같았다. 벽화보다 앤소니에게 더 관심이 갔다. 나는 벽을 찍는 그를 찍었다.

그림들이 무슨 뜻인지 내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고, 혼자서 감탄하기도 했다. 샹젤리제 노래가 나오는 오르골을 발견하고 나서는 한참동안 노래를 불렀다. 신기했다. 보통 자기가 사는 곳의 관광지에는 큰 흥미가 없지 않나?


몽마르뜨 언덕에 거의 다 올라왔다. 관광객이 다시 많아졌다. 그는 또 한 번 다른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번에는 로컬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었다. 노천 좌석에 앉아 음식과 와인을 시키고 앤소니와 마주 앉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다.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는지, 왜 혼자 파리로 왔는지. 모든 이야기를 들려줬다. 진짜 파리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내 얘기를 듣더니 그런데 왜 스타벅스에 갔냐고 되물었다. 그곳에는 진짜 파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또 꺼내는 것에 놀랐다.


"진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익숙함을 버릴 줄 알아야 해."
앤소니가 덧붙였다.


내가 스타벅스에 간 이유는 로컬 카페를 갈 용기가 안 났기 때문이다. 동양인이 카페에서 콘센트를 찾는다는 게 이 사람들에겐 무지 이상한 모습이 아닐까, 같은 걱정이 있었다. 스타벅스가 좋아서 간 거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마음 편한 곳을 찾았던 것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하면 놓치게 되는 게 정말 많았다. 많은 현지인들이 매일 찾는 카페. 노천 좌석이 모두 거리를 향해 놓여 있는 곳. 그 안에서는 분명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다. 물론 파리에서 스타벅스를 간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고 스타벅스에 진짜 파리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떠났음에도 익숙함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몸은 새로운 도시에 있더라도 기분과 생각은 고향에서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질 수도 있다. 남는 거라곤 인증샷 밖에 없는 여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앤소니의 말뜻은 그런 거였다. 그는 게스트들이 -내가 그러고 싶은 만큼- 파리를 제대로 느끼길 원했다.


몇 백 번은 봤을 거리에 나보다 더 관심을 갖는 모습에서, 단지 며칠 머물다 떠날 여행객에게 충고를 하는 모습에서 이 도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파리가 오랜 시간 동안 낭만적인 도시로 여겨질 수 있는 건 구성원들이 이를 지키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 좋은, 지금 내게 꼭 필요했던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곤 걷잡을 수 없이 이 도시가 좋아졌다. 때론 유명 관광지보다 한 명의 사람이 도시를, 나라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내일부터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익숙함은 잠시 제쳐두고 내가 찾은 도시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몽마르뜨를 내려오면서 앤소니가 말했다.

"이번 주에 내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할 예정인데, 너도 올래? 모두 토종 파리 사람들이라, 우리의 진짜 모습을 찾는데도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너무 좋지."


20170905-DSC03504.jpg
20170905-DSC03621.jpg
20170905-DSC03530.jpg
20170905-DSC03597.jpg
20170905-DSC03629.jpg
20170905-DSC03648.jpg
DSC03602.jpg
20170905-DSC03690.jpg
20170904-DSC03450.jpg 다음 날 찾은 로컬카페


매거진의 이전글에펠탑보다는 빨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