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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Apr 02. 2018

걸레라는 말

내가 생각하는 이 소동의 시작

첫 연애는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가 둘이 잘 어울리겠다며 조금 떨어진 학교에 다니던 여자애를 소개시켜줬다. 만나자마자 호감을 보였고 빠르게 서로를 연인이라고 여겼다. 눈이 크고 예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다. 다들 여자애가 아깝다고 말했다. 그만큼 여자 친구가 예쁘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말을 듣기 좋아했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세상이 그렇게나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리는 하루 종일 문자를 나눴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야자를 도망쳐 나와 영화를 보러 가거나 자습실 불빛 말고는 어떤 기척도 없는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손을 잡고 앉아있거나 했다.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웠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하고 바랐다. 어린 연애가 그렇듯이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깊은 대화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만큼 순수한 마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킨십도 늘어갔다. 어깨동무를 하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했다. 마음이 깊어가면서 자연스레 깊어진 몸의 대화였다. 하지만 여자애는 진도를 한 발 더 나간 날에는 어김없이 말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들었던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나는 너를 좋아해. 그래서 너와 입을 맞추는 게 좋아. 그런데 한 편으론 걱정돼. 내가 헤퍼 보일까 봐." 

의아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우리의 스킨십은 일방적인 게 아니었다. 서로 좋아서 하는 건데 왜 얘만 걱정을 가지고 있는 건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여자애는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스러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만난 지 6개월 정도가 지난 즈음부터 우리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불안했다. 실연의 기미도 경험한 적 없었던 나는 우습게도 첫 연애가 영원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르고 서 있는 나를 두고 여자애는 떠나갔다. 나는 교실 뒷자리에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있었다. 점심을 굶었다. 여자애에게 다시 생각해 달라는 문자를 몇 번이나 보냈다. 대답은 없었다. 


친구들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금세 알아챘다. 몇 명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나는 세 명의 남자애들에게 이 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떠나간 여자애의 이름도 말했다. 그 남자애들은 소위 말하는 노는 애들이어서 다른 학교에도 아는 친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어! 하고 놀라더니 나의 첫 여자 친구를 지칭하며 "야, 걔 걸레야." 하고 말했다. 이십 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선명한 단어다. 걸레.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무언가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을 누르며 왜냐고 물었다. 고 1 때 20대 형이 오토바이를 타고 몇 번이나 여자애를 학교로 데리러 왔단다. 그래서 소문이 났고 원래 이 동네에 있다가 떨어져 있는 학교로 전학 간 이유도 그 소문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야 저번에 불러서 술 먹이려고 했는데 안 나왔던 걔잖아."라고 다른 친구에게 거들어달라는 듯 말했다.


그게 다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불합리했다. 오토바이 타고 학교로 데리러 오는 게 소문의 근거가 될 수 없을뿐더러 정말로 많은 남자와 관계를 했다고 해서 낙인이 찍히는 게, 그것도 그 아이에게만 찍히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한번 불러서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라니. 게다가 남자애들 중에는 자신이 이 여자 저 여자와 자고 다닌다며 자랑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치켜세워지기까지 했다. 


어렸지만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여자가 그런 소문에 엮였다는 걸 느끼는 마음은 어떤 단어로도 형용하기 어려웠다. 이별에 대한 아픔은 자연스럽게 아물었지만 걸레라는 단어는 내게 흉터로 남았다. 그런 말을 하는 입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에 나오면서 점차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 들었던 남자 애들의 그런 대화, 농담 섞어하는 뒷 이야기, 하지만 사람을 때릴 수도 있는 대화가 굉장히 흔하다는 거였다. 어려서 그런 얘기를 한 게 아니었다. 성인들만 모였더라도 높은 빈도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재미로 말이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분위기가 이미 자리를 잡아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장난으로라도, 특히 아는 사람을 두고 야한 농담을 하는 게 싫었다. 그럴 때마다 첫 여자친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겐 X선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왜 너만 깨끗한 척하냐는 거였다. 누구나 다 그런 거라면서.   


그런데 그건 성욕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지극히 당연한 존중을 말하는 거였다. 진영을 떠나서 왜 누군가는 끔찍한 말을 웃으면서 하고, 누군가는 모진 돌을 무방비로 받아내고 있는 건가. 왜 오히려 당한 사람이 미안해하거나 창피해하고 있나.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이래선 안 된다고 목소리 내어 말한 적이 없었다. X선비라는 별명도 싫었고, 누군가를 성적으로 매도하는 대화는 대부분 대화에서 멈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 주변에서 첫 여자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피해가 생기면 그때는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였지 생각 없는 대화들이 쌓여서 방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분위기가 커져서 실제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조차 쉽게 허용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성폭행이나 성희롱은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다.


미투 운동을 보며, 하루에도 몇 명씩 가해자가 드러나는 걸 지켜보며 이 이해 안 되는 사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내 첫 여자 친구를 통해 이 소동의 시작을 목격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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