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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Mar 28. 2018

물속에서

다른 곳에서 마주한 다른 생각

취준생의 불안은 대학생의 불안과 차원이 달랐다. 소속이 없다는 게 그렇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인지 몰랐다. 여기부터는 그저 남들을 따라 하는 건 위험한 짓이었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는데 딱히 이루어놓은 것도 없으니 헤맬 수밖에 없었다. 무방비로 취업 전선 한가운데 놓인 나를 바라보니 안일하게 살아온 흔적들도 너무 뚜렷하게 보였다.


친구도 같은 기분이었는지 내게 새벽 수영을 시작하자고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댔다. 취업 내려면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과 하루를 좀 더 일찍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 곧잘 쉽게 설득돼버리고 마는 나는 그날 바로 서랍 속 깊이 처박혀있던 수영복과 물안경을 꺼냈다. 희미하게 락스 냄새가 남아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수영장에 간 기억이 거의 없었다.


수업 첫날 다섯 시에 일어나 반은 잠든 상태로 동네 스포츠 센터로 향했다. 수영장 냄새로 가득한 탈의실에 들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새로운 시작에는 크든 작든 용기가 필요했다. 나이도 웬만큼 먹었으니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창피할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새벽은 내게 공기만으로도 긴장을 줬다. 작은 웅덩이가 곳곳에 생긴 샤워장을 지나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이 어른이었고 우리와 같은 초급반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끄러운 몸짓으로 마룬 5의 음악과 선생님의 시범에 맞춰 준비운동을 했다. 그리곤 약속이라도 한 듯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한꺼번에 물로 뛰어들었다. 나도 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첫걸음을 떼곤 새벽마다 벽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하고, 숨쉬기 연습도 하고, 키판을 잡은 채 발차기 만으로 끝까지 가기도 해보고, 팔을 돌려보기도 했다. 수영은 어려운 운동이었다. 강하게 발을 차고 팔을 휘저어야 했지만 힘은 빼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뒤에서 발차기의 각도를 잡아주기도 하고 어깨를 찰싹 때리며 힘을 빼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물의 흐름을 배워갔다. 자유형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끝에서 끝까지 헤엄쳐도 숨이 차지 않았을 때는 큰 숙제를 해결한 것처럼 기뻤다. 나는 초급반에서 맨 앞에 세워지기도 했다. 선생님이 나를 콕 집어 맨 앞에 세웠다. 일렬로 늘어서서 레인을 오갔기에 앞에 서는 사람은 뒤처지는 것 없이 가야 했다. 나는 그래도 좀 하는 편에 속했다. 


그러나 수영이 잘 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의 이십 대 중반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지원서는 넣는 족족 떨어졌고 어떤 곳은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십몇 년을 살았는데 마땅히 이루어놓은 게 없었다.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것도 큰 타격이었다. 수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분명 우리 사이는 괜찮았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새에 금이 가고 말았다. 취준생의 불안 위를 덮친 실연은 생각을 뛰어넘어 아팠다. 나는 아픈 만큼 바로 이별에 수긍하지 못했다. 기대가 세워지고 무너지길 반복하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나는 조금이라도 센 감정과 마주하면 사고 회로가 걷잡을 수 없이 틀어져 버리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버거웠다.


익숙해져서인지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인지 그즈음부터 수영은 새로 배우는 운동이 아니라 생각하는 통로가 되었다. 수영을 하면 낯선 물속에 있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몸이 물에 잠김과 동시에 나도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긴다는 표현이 그렇게 정확하고 우아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마치 물이 아니라 기억이나 지식이 수영장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막막함, 슬픔, 미련 같은 것들. 그 안을 온몸으로 휘젓고 다니면 머릿속에 질서 없이 떠다니던, 감정적이기만 했던 생각들이 논리적으로 정리되곤 했다. 어떤 생각은 수영이 아니면 찾을 수 없었겠다는 기분도 들었다.


새로 찾은 생각들은 필요한 것이었으나 너무 이성적이고 사실이어서 잔인했다. 꼭 그래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쉽게 지치기 시작했다.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 물에 맥없이 가라앉고 마는 때도 많았다. 늘 맨 앞에 섰던 내가 네다섯 번째로 처져 출발하게 됐다. 갈수록 피곤을 핑계로 수업에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새벽 수영을 마친 직후의 상쾌함이나 나날이 좋아지는 체력도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아져 버렸다. 점점 날 수영장으로 이끄는 유인은 미리 내어놓은 수강료가 유일해져 갔다.


돈을 낸 만큼의 수업이 끝나고 나는 수영을 그만두었다. 평영 발차기까지 밖에 배우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연장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서 나는 취업을 했다가 직장을 관뒀고 해외로 떠났다가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기도 했고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가 떠나보내기도 했다.


수영장 탈의실 밖으로 나오면 대기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사람들은 덜 마른 머리를 한 채로 모여앉아 숨을 고르며 티비를 보았다. 그 시간에는 꼭 인간극장이 방영됐다. 대부분 나보다 어려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다 돌아가곤 했다.


같이 수영을 시작한 친구는 원래 물 공포증이 있었다고 했다. 강습을 받은 후에 바다에 놀러 가서 공포증이 없어진 걸 확인했댔다. 나는 배운 수영을 어딘가에도 써먹은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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