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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Mar 10. 2018

우리 집 고양이 중성화 수술 날

얼마 전 미유(우리 집 고양이다)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중성화 수술을 할 때가 되어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에 안심하고 미유를 맡기고 나왔다. 두 시간쯤 흘러 온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엄마의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마치고 들어온 엄마 표정을 보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미유에게 약을 먹이거나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너무 사나워서 도저히 약을 먹일 수가 없다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주사 값이 또 5만 원이라는 거였다. 엄마는 우리 미유는 일단 꽤나 얌전하거니와 병원이라면 약 정도는 먹일 수 있지 않냐며 혹시 ‘돈 벌려고 주사로 유도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발끈한 수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했고 결국 말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마지막 말은 내가 봐도 꽤 실례가 되는 말이긴 했지만… 나는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가 갔다. 우리 입장에선 약을 먹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곤 생각되지 않았고, 수의사 선생님께는 돈 벌려고 그러냐라는 말이 분명 기분 나빴을 거기 때문이다. 제발 병원에서 싸움만은 나지 않았으면 했지만 우리 엄마도 그 수의사 선생님도 굉장히 -생각 이상으로- 에고가 센 사람이었다. 결국 병원 한복판에서 대판 싸움이 났다. 온갖 고성이 오갔고 간호사들이 싸움을 말렸다. 나는 중간에서 미유를 품에 안은 채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굉장히 난감했다…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는 미유 밖에 없었다. 너무 불안해하는 것 같아서 얼른 집에 가서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도 내게 등 떠밀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목소리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그렇게 크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미유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미유에게 밥을 먹인 뒤 넥 카라를 씌우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본 적도 없는 정도로 미유가 날뛰었다. 병원에서 어떤 모습이었을지 뻔했다. 아직 화가 채 가시지 않은 엄마 표정에 순간적으로 미안함이 스치는 걸 나는 보았다. 첫째는 미유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하는 것에 대한 실감이었고 둘째는 수의사 선생님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미유가 이 정도였는지 몰랐고 병원에선 평상시의 모습이 얼마나 얌전한지 몰랐을 것이다. ‘고양이는 병원에 오면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모습을 보일 수 있어요’라고 말해 주었다면 조금 나았으려나… 어쨌든 20년 동안 개만 키워와서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몰랐던 우리 가족의 잘못도 분명히 있었다. 결국 실밥을 풀러 가서 두 분은 서로 '제가 잘 몰랐습니다...'하고 화해했다… 는 어떻게 보면 훈훈한 이야기다. 사진은 완전히 회복한 미유가 서랍장 아래에 들어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천하태평한 얼굴을 보면 '너 인마 왜 그랬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생각해보면 미유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이해가 안 될 수가 없다. 중성화라니... 암튼 미유는 주인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영영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갑자기 든 생각인데, 누군가 미유에 대해 물어본다면 ‘잘 모르지만 왠지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래서, 라고 할만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곤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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