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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Feb 27. 2018

토닉워터

할아버지는 집안의 가장 어른이었고 나는 손주 중에서도 막내였다. 가끔 부산에 내려가면 할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힌 채 애는 알아듣지도 못 할 인생 이야기를 했다. 혹은 책을 읽거나 얇고 긴 담배를 피우거나 사이다를 섞은 술을 마시거나 했다.


부산에 도착한 이튿날이면 둘이서 목욕탕에 갔다. 할아버지는 바로 탕에 뛰어드려는 나를 붙잡고 샤워장으로 데려갔다. 나는 얼굴에 무자비하게 비누칠을 하는 할아버지의 손을 매워했다. 매워요, 하지 마요 하면 그는 껄껄껄 웃었다. 내가 토라져서 저 멀리 가도 다시 올 줄 어떻게 아는 건지 할아버지는 그저 웃었다.


한 번은 이제 막 라면 끓이는 법을 배운 내가 보여주겠답시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뭐하나 하고 등 뒤로 온 할아버지는 물이 부족하다며 거의 다 끓은 물에 찬물을 부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망쳤다며 짜증냈다. 그는 미안해했다. 나도 짜증을 낸 것이 미안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내가 교복을 입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잣집에 들러 한 조각을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피자를 은박지에다 쌌다. 할아버지는 그게 비위생적이라며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모르는 사람한테 우리가 화를 내는 게 싫어서 할아버지 그러면 안 돼요,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더 미안해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웬만큼 컸을 때, 할아버지는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눕고 말았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겨우 서너 번 병원을 찾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할아버지가 약해진 뒤 나온 가장 또렷한 반응은 내가 갔던 날에 나왔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형의 장례식만큼 무겁지 않았다. 나도 엄청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인생을 채운 사람이었다.


훗날 나는 길거리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에는 팀의 조언을 듣고 노인을 집중적으로 섭외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섭외가 어렵지만 대화만 시작하면 깊은 이야기가 나왔다.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다. 한 여름날 나는 뚝섬 유원지로 인터뷰를 나가 자전거를 타다가 잠시 쉬고 있던 할아버지를 섭외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어떤 것도 결국엔 손주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손주가 생기는 게 어떤 기분이냐 물었다. 할아버지는 은퇴를 하게 되면 주변에 남는 사람은 손주가 유일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중하다고 했다. 집안의 가장 어른이지만 신기하게도 제일 어린 손자와의 대화가 최고로 즐겁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이 같아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이따금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된 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즈음부터였다. 어딘가 하나같이 작지만 선명한 후회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뚝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래도 괜찮았을 거라는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어린 날의 나를 대할 때는 할아버지도 아이 같았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집 마루에 누우면 오래된 가구 냄새가 났다. 햇빛이 들어와 적당히 따뜻했다. 한편에 자리한 작은 텔레비전에서 철 지난 외국 영화가 너무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소리로 나왔다. 창문 틈새로 아쉽지 않은 만큼의 바람이 불었다. 창문 밖에는 목욕탕 굴뚝에서 새하얀 연기가 아주 천천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걸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 좋았다. 순간이었지만 그 느낌은 내게 부산이라는 이름 자체에 스며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부산은 따스할 거라고 상상한다.


다만 문제는 그래도 아직 아픈 부분이 내 마음 한편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할아버지가 소주에 타 먹던 게 사이다가 아니라 토닉워터라는 것까지도 안다. 하지만 삶의 어떤 부분은 영영 되돌리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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