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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Jul 07. 2018

장마의 제주로

예전에는 비가 오면 짙어질 낭만을 기대했었는데, 이제는 활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몰려든다. 태생적으로 습기에 취약하긴 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예외 없이 숨이 막히고 가려움증까지 올라온다. 그래도 어릴 적엔 그런 것 따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29살의 나는 비 소식이 전혀 달갑지 않다. 빗소리만으로 눈에 보일만큼 축 처지게 된다. 당연히 장마는 가장 좋아하지 않는 시기다. 장마가 오면 순식간에 체력이 떨어지고 어떤 의욕도 쉽게 꺾여버리고 마니까.


작년에 나는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선택을 하고 외국에 나가선 무엇도 이루지 못했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었다. 날고 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한 일을 해낼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매력적인 계획이라 여겼다.


하지만 실전에 들어선 순간 계획은 상상치도 못한 장애물로 뒤덮였고 나는 맥없이 무너졌다. 그 계획은, 그때서야 알았지만 외국에서 겪은 실패를 빨리 만회하고 싶어 내린 성급한 결정에 불과했다. 꽤나 힘겨웠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무너진 데다 이번에는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에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함이 몸을 감쌌다. 계속해서 부끄러움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하는 버거운 일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 물리적으로는 편한 편이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게 겸언쩍기도 하지만, 마음적으로는 확실히 고된 나날이었다.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세계일주 같은 자극적인 단어에 눈이 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이지 숨고 싶을 만큼 민망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나는 다시 직장을 찾기로 결심했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도전, 집중을 위한 강제성 같은 것들이 필요했던 게 이유였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만큼 좋은 곳에 가고 싶어 열심히 준비했다. 미묘한 시기였다. 원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점을 어필해야 했는데, 한 편으로는 끊임없이 내 부족함을 되뇌며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숨긴 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대하는 것 같았달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묘함이 균형 잡힌 돌아볾을 가능케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좋은 점과 나쁜 점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복잡하고 오묘한 시기를 지나면서 많은 일을 뒤로 미뤄놓았다. 나를 채워주던 것들을, 이를테면 여행을 가거나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프리랜서 일자리를 하나만 남겨두었기에 시간은 많았지만 정신이 온통 이 불안정을 해소하는 일에 쏠려있었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건 시작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많은 경우 물리적인 환경보다 정신적인 환경이 -두 가지가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순 없겠지만- 더 중요했다. 마치 마라톤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취업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뛰는 것이다. 어서 빨리 골인해서 나를 채워주는 것들을 다시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래야 온전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새로운 시작에 마음을 다할 수 있기도 할 테니까.


이상적인 회사의 기준을 나름대로 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렸다. 달리다 보니 몇 번의 면접을 만나게 되었으나 모두 떨어졌다. 내겐 아직 과분한 곳이었다. 그 회사에 들어가려면 더 멀리 달릴 줄 알아야 했던 것이다. 탈락이 반복될수록 나는 지쳤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룬 탓인지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도 계속됐고 마라토너의 갈증만큼 목이 말랐다. 그러나 아무리 목이 마르다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임의로 더 가까운 지점을 결승선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출발했으면 설령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도달할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취업을 결심할 때 세웠던 기준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온 힘을 다했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흐트러지지 않으며 성장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꾹 참았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전보다 잘 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말이다. 순간의 욕구를 따라가면 큰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한 덕이다. 대단한 경험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러한 시간이 흘렀고, 처음 잡았던 방향을 잃지 않고 나름 꾸준히 달린 탓에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록 기간을 두고 보는 방식으로 정해졌지만 정말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2시간씩 두 번, 총 4시간의 면접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도전할 마음이 절로 솟아나는 직무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잘 된 일이었다. 늦긴 했지만 레이스를 만족스럽게 끝마친 거니까. 물론 알고 보면 지금까지는 고작 3km 정도의 달리기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풀코스 마라톤은 아마 다음 언덕 너머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출근일이 정해지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행도 떠올렸다. 드디어 마음이 이 두 가지를 생각할 준비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목이 말랐던 탓인지 새로운 시작 전 갈증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이 문제였다. 글은 어디서든 곧장 쓰면 되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으니까. 시간은 딱 일주일이 남아있었다. 나중에 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려고도 했지만 그냥 집에 있으면 어떻게 지낼지 너무 뻔했다. 이런 시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은 다신 없을 거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 생각에 닿자마자 에어비앤비와 스카이스캐너를 켰다. 가까운 도쿄와 제주 두 곳이 눈에 들어왔고, 출근까지 텀이 짧기에 너무 새로운 곳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제주 여행을 결심했다.


장마 소식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뉴스가 날씨 얘기로 뒤덮였다.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하려던 차였기 때문에 맥이 빠졌다. 대단한 건 아니라지만 내 삶의 새로운 챕터가 열렸는데 날씨가 발목을 잡다니. 게다가 여행은 애초에 분쟁의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여행은 낯선 만큼, 일이 아닌 것도 일이 되는 만큼 삐거덕거릴 요소들이 곳곳에 기다리고 있다. 비까지 온다면 짜증만 늘어서 돌아올 게 분명하지 않은가. 친구와 가족들도 의견을 묻는 내게 같은 이유를 대며 여행을 말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헤맴의 시작이었던 1년 전의 여행을 떠올렸다. 쿠바에 있을 때도 비가 세차게 내린 날이 있었다. 마주한 적 없던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게 낯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흑인 여자가 말을 걸었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고, 여기는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 쿠바라고 말했었다. 내 마음 챙기기도 바빴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점점 회복되면서 마음에 가장 뚜렷이 새겨진 건 그 이름 모를 여자의 한마디였다. 이후로 나는 낯선 곳에 갈 때마다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위로라고 여겼다. 그리고 비가 내리던 그날은 통째로 내게 쿠바라는 이름 자체에 스며들었다.


망설임을 이겨내고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이제는 타향의 위로에 웃는 얼굴로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면 비조차 다시 낭만적으로 생각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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