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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Jan 02. 2019

서른살

12월 31일에 쉬었다. 입사한지 반 년만에 처음 쓴 휴가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두 번 세 번 무너지고 있던 때였다. 나는 기분이 표정으로든 행동으로든 금방 티가 나는데, 감정 상태가 드러나는 일을 하고 있어 직장에서도 쉽지 않았다. 동료에게 실망을 준 것 같아 마음도 편치 못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맞은 연휴 첫 날 토요일에는 모임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송년회 겸 동창회를 하자며 자리를 만들었는데, 완전 자기 중심으로 지인들을 모았다. 완전 자기 중심으로. 6명이 모였는데 모두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넷은 말 몇마디 안 해본 친구들이었다. 묘한 조합이었다. 졸업한지 10년이나 지났다. 이제 '고등학교 친구'같은 인연은 새로 만나기 불가능하다. 그런데 고등학교 친구지만 안 친한 친구들이 서른이 다 돼서 만나다니. 갈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어색할 것 같았고 어색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에 그만큼 좋았던 모임도 없었다. 예술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많아서였을까. 남 얘기 듣는 훈련이 아직도 덜 된 나도 푹 빠져 들었다. 배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감정 컨트롤이 어렵고 상황에 맞게 의도대로 표현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나는 배우라는 직업이 항상 경이로웠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 일을 하면서도 수많은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한 명은 이미 꽤 이름이 알려진 배우였다. 나랑 친한 지인이 그 친구 팬이라 사진을 찍어 자랑하기도 했다.


그들도 내 이야기가 흥미로웠는지 나중에 또 보자고 했다. 이게 연말이지 싶었다.


일요일에는 집에서 쉬다가 본가에 갔다. 엄마 아빠가 좋아할줄 알았는데 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비운 상태였다. 미유랑 혼자 놀았다. 그러다 직장에서의 연휴 전 실망스러운 내 모습이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어디든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펴야겠다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일을 하고자 한 건 아니고 단지 그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싶어서. 검색해보니 집 앞에 무려 스타벅스 DT가 있었다. 이 촌동네의 발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편한 마음은 걱정만 하던 일에 손을 대는 순간 너무나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늘 이런 식이다.


월요일에는 고민에 휩싸인채로 일어났다. 속초를 갈까 말까하는 고민이었다.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밤 새고, 일출 보고 돌아오고 싶었다. 첫 휴가를 어떻게든 의미있게 써보고 싶은 맘이다. 아니면 삽십 줄에 들어서는 순간을 꾸미고 싶은 마음. 아무리해도 같이갈 친구가 안 구해져서 혼자 가려고 마음을 먹던 차였다. 페이스북에 오늘 밤에 열리는 브로콜리너마저 연말 공연의 취소표가 생겼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실 속초 여행과 브로콜리너마저 연말 공연 두 개를 두고 뭐 할래? 라고 묻는다면 속초 여행을 택했을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이 뭔가 드라마틱하잖아? 게다가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아홉 살 이후로는 콘서트에 가본 적이 없다. 전화해서 공연 표 예매했다.


공연은 좋았다. 내가 모르는 노래가 없었어. 어쩌면 나와 감정이 가장 잘 맞는 가수는 브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전좌석 스탠딩 공연이라는 게 어떤 그림인지 감이 안 잡혔는데 이제 알았다. 왜 그렇게 하는지도 알 것 같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 감정이 폭팔하네. 이래서 공연장을 찾는 걸까. 그리고 무대 조명 같은게 자꾸 눈에 띈다. 참 감각 있다. 저게 무대를 살리네.  뭐 이런 생각들을 한다. 예전에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뒤에는 모르면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서.


그리고 교회에 갔다. 부모님이 송구영신 예배에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다.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공연이 끝나고나니 마음이 애틋해져 교회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배는 늘 그렇듯 시시했다. 교회는 늘 그랬듯 나를 반기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목사님 설교 중에 서른이 됐다. 0시 2분이 돼서야 알았다. 카운트 다운도 안하다니요. 그래도 교회 어르신들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감사하다. 어쩜 나를 이렇게 반겨 주실까. 단 한 번도 그것이 꾸며진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


연휴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신정을 쇤다. 큰집에 가서 조카들도 보고, 어른들도 뵀다. 이제 내가 세뱃돈도 준다. 더이상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세뱃돈도 안 아쉽다. 그리고 집에 와선 이십대 때 몇 번이나 마주했던 출처 없는 우울과 마주했다. 아무래도 나는 쉬지않고 일을 해야하는 사람인가봐. 움직여야 하는 사람인가봐. 쉴 때 집에 있으면 십중팔구 이런 기분이 되고, 몸을 일으키기가 아주 아주 어렵다. 겨우 나와서 탄천을 조금 뛰었다. 그리고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그들은 언제 연락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내보여도 잘 받아준다. 평소에는 잘 찾지 않게 된다. 미안하게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으면 키보드를 못 잡는다. 글에는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블로그도 만들고 긴 글도 단숨에 썼네. 삼십대의 첫 날이 이렇게 저문다.


2019.1.1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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