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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Jan 17. 2019

죽음과 여행

영상을 찍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글 쓰는 것 밖에 없던 내가! 물론 편집하기도 전이고 엉망진창인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지만 무지 뿌듯하다. 이렇게 스킬셋을 확장하고 내 세계를 넓히고 더 나은 사람이 돼서 좋은 이야기들을 퍼뜨려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익순이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익순이 아저씨는 아빠의 고등학교 친구다. 오래된 친구인 만큼 아저씨가 나를 안지도 오래 됐다. 아빠 친구들을 아주 가끔 뵀는데 한번도 그 자리가 싫었던 적 없다. 어찌나 다들 유쾌하고 젠틀하신지. 그래서 난 사람들이 나이만으로 꼰대라는 단어를 말하진 않았으면 한다.


익순이 아저씨는 내가 훈련소에 있을때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주신 분이다. 동기들 중 아빠 친구의 편지를 받은 건 나 뿐이지 싶었다. 그때 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보는 아버지들과 아버지들이 보는 아들은 느낌이 다른걸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편지는 내게 깊숙이 남았다. 그래서 투병하는 아저씨를 볼때도 마음이 아팠다.

아빠는 경복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시절의 경복고는 대단했다고 한다. 들어가기 힘든만큼 졸업생들의 자부심도 세단다. 실제로 다들 존경할만한 어른이 되었고... 그 자부심이 모두를 엮은 건지 이렇게나 세월이 지나면서도 사이가 그렇게 끈끈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도 익순이 아저씨의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조문을 하고 아빠 친구들 사이에 껴 밥을 먹었다.

슬픈 분위기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수다와 농담으로 가득찼다. 전혀 쓸쓸하지 않은 장례식장이었다. 이따금씩 익순이는 그래서 병원에서 간 거냐, 그래도 이 놈이 복이 있는 놈이야, 이렇게 가득찬 걸 보면. 뭐 이런 대화들이 오고갔다. 상조회사에서 주고 간 듯 보이는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어떤 아저씨는 그걸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빠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할 나이가 되셨다.

아빠와 같이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나는 내일도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그래서 일찍 잠들어야 하는 내 상황을 떠올렸다. 엄마는 설 연휴때 여행을 한번 가라고 했다. 작년부터 너무 달려만 오지 않았니, 하면서. 너무 웃긴 농담들을 주고받는 아저씨들이었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공기가 느껴졌다.


2019.1.17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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