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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Apr 01. 2019

성숙

대단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많이 배운다. 동시에 부족함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매사에 감정이 앞섰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도 잦았고 별 것 아닌 일에 흥분하는 일도 많았다. 때문에 실패는 쓸데없이 부풀려졌고 성공은 기대보다 초라해졌다. 모든 일이 탄탄한 근거와 빈틈없는 논리구조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 곳에서 나는 늘 깨지고 그만큼 배운다.


지금보다 어리고 생각은 그보다 더 어릴 적엔 부모님과의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내게 있어, 추측컨대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은 행동과 사고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가정이 즐겁고 행복할수록 하고자하는 일도 힘을 받는다.


며칠 전 함께 나간 쇼핑에서 엄마는 아들이 웃음이 많아졌다고 했다. 어설프게 어른 행세를 할 때는 사실 즐겁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척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즐겁다. 뭐든 쉽게 티나는 나의 진심을 엄마가 모를리 없었다. 엄마 목소리에는 작지만 뚜렷한 감격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내게도 다친 기억이 있다. 때로 작은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거나 걱정하는 성격은 그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디폴트가 부정적이었기에 여기저기서 어긋남이 있었다. 어긋남은 더 부정적인 시각을 갖다 줬고.


악순환을 조금씩 깨뜨리고 한층 행복한 궤도로 내 삶을 올려놓은 건 사람들이었다. 흔들릴 때 징징거림을 기꺼이 들어준 사람. 정체돼 있을 때 새로운 도전의 출발선으로 나를 등 떠밀어준 사람. 쪽팔린 모습을 눈 감아준 사람. 답답함을 티내지 않은 사람 등 셀 수없는 이들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조언자로서 곁에 있었다. 가족, 친구, 동료들이. 덕분에 저 아래에 있던 내가, 쉽게 비틀댈 게 자명했던 내가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실감한다. 한층 더 행복한 궤도로 삶이 올라왔다는 것을.


엄마가 덧붙인 말은 우리 가족이 아픈 순간이 있었고 그 아픔이 아물어감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의 상처를 여매어가며 어리디어린 아들을 키워내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대단한 사람들을 매일같이 보면서 늘 감탄하지만 막막함도 느낀다. 아직 나는 스스로 들여다보는 연습만 됐을 뿐이지 남을 감화시키는 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도 안 잡혀서다. 그러나 이제 큰 걱정은 들지 않는다. 엄마 말대로 가족이 웃음을 많이 되찾았으니까.


해가 갈수록 봄을 더 가까이 느끼는 건 나이가 들어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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